샤오미는 애플 따라 하고, GE는 스타트업 DNA 이식

혁신의 시대…'속도'가 생사 가른다
희망찬 새해가 시작됐다. 하지만 국내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새해 벽두부터 언론의 경제 관련 기사들은 한결같이 우울한 내용을 쏟아내고 있다. 금리·환율·주가·원유가 등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고 특히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주력 산업들의 소위 ‘넛 크래커(Nut-cracker)’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를 진단하며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듯이 국내 대기업의 신년사들을 살펴보면 모두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는 내용이다. 마치 입을 맞춘 듯하다. 물론 이는 백번 들어도 지당한 주장들이다. 반드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변화와 혁신에서 그 내용과 함께 관심을 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변화와 혁신의 ‘스피드’다. 속도가 내용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만큼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최고경영자(CEO)로 시스코의 성장을 주도했던 존 챔버스는 “덩치가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속도가 빠른 기업이 속도가 느린 기업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역량 사들이는데 능한 구글

챔버스의 말처럼 오늘날 세계를 주도하거나 급성장하는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속도감 있는 혁신의 방향성을 모색해 보자.

첫째, 혁신의 속도가 빠른 기업들은 외부에서 필요한 역량을 배우거나 사들이는 데 매우 능하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 하나는 자체의 역량을 활용해 성장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필요한 역량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외부 조달 방식에는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M&A), 벤치마킹 등이 있다. 혁신의 속도가 빠른 기업들은 첫째뿐만 아니라 둘째 방식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대표적인 기업은 구글이다. 구글은 ‘구글X’와 같은 연구·개발(R&D) 조직을 이용해 성장의 아이디어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다. 최근 핫이슈인 무인 자동차와 구글 글라스 등은 모두 구글X를 통해 개발됐다. 구글은 직원들이 자기 시간의 10%를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10% 룰’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5만 명이 넘는 직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글X와 같은 자체 R&D 조직을 통해 신속하게 현실화한다. 이러한 역량이 구글 성장의 배경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구글은 이러한 자체 역량만으로 오늘날의 구글이 된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애플의 iOS와 안드로이드가 양분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2005년 스타트업 기업 ‘안드로이드’를 불과 5000만 달러(약 593억 원)에 인수해 구축했다. 또한 현재 구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광고 매출이다.

구글의 광고 플랫폼은 ‘어플라이드 시맨틱스’에서 제공했다. 이 역시 2003년 구글이 1억2000만 달러(약 1424억 원)를 주고 인수한 기업이다. 현재 구글의 플레이 스토어에는 150만 개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앱)이 등록돼 있다. 이의 대부분은 다른 기업이나 개발자들이 구글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올린 것이다.

샤오미, 창업 5년 만에 세계 3위 올라

샤오미는 불과 5년여 만에 세계 3위권의 스마트폰 생산업체로 발돋움했다. 이의 성장 배경에도 외부 역량에 대한 적극적인 벤치마킹이 자리 잡고 있다. 샤오미는 ‘미유아이’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와 함께 선진 기업의 장점을 도입해 활용하는 데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심지어 신제품 발표회에서는 샤오미의 레이쥔 CEO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그대로 따라 한다. 의상도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나온다.

하지만 이는 단순하게 남을 흉내 내는 개념이 아니다. 애플이 잘하고 있는 바이럴 마케팅, 헝거 마케팅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즉, 고객들이 관심과 흥미를 극대화해 매출과 연동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실제 이러한 활동은 제품 출시 불과 수분 만에 준비된 물량을 모두 소화하는 기염을 토하게 만든다.

샤오미는 애플만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샤오미 판매의 80% 이상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다. 온라인 유통은 오프라인에 비해 유지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간다. 이는 샤오미 가격 경쟁력의 근간이 된다. 이 역시 컴퓨터 판매에 온라인 유통을 도입한 델의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또한 샤오미는 하드웨어 판매에서는 마진을 취하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 대신 샤오미 폰에 탑재된 여러 플랫폼에서 이익을 취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아마존에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하드웨어는 공짜로 제공하고 콘텐츠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킨들의 전략과 동일한 개념이다.

이렇게 선발 기업에서 성공한 전략을 벤치마킹해 신속하게 시장에 대응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샤오미 전략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은 비단 샤오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중국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다. 이미 시장의 평가를 통해 검증됐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자사 전략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랜드는 2013년 5월 신발에서 제조 일괄 유통형 브랜드(SPA)를 지향하며 ‘슈펜’을 출시했다. 이보다 앞서 이랜드는 ‘비아니’라는 브랜드로 신발 SPA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를 거울삼아 이랜드는 뉴발란스·케이스위스·엘칸토와 같은 기존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제휴해 신발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와 함께 독일의 신발 SPA 브랜드인 ‘다이크만’을 벤치마킹했다. 다이크만은 매출이 4조 원에 이르는 유럽의 인기 브랜드다.

슈펜의 ‘슈즈 라이브러리’는 다이크만을 벤치마킹한 결과다. 슈펜의 매장을 가보면 마치 도서관에 책들이 꽂혀 있듯이 다양한 신발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는 다이크만의 ‘셀프 쇼핑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신발을 구매할 때 일반적인 시스템은 필요한 사이즈를 매장 직원에게 얘기하면 가져다준다.

이에 비해 다이크만은 고객이 직접 필요한 사이즈를 찾아 신어보게 해 기다리는 불편을 해소했다. 또한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별도로 모아 판매하듯이 최근의 인기가 많은 제품을 별도로 진열한다. 이처럼 다이크만을 벤치마킹한 전략을 토대로 기존 편집 숍 중심의 브랜드들과 차별화를 도모하고 있다.

둘째,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기업들은 스타트업의 민첩성을 가진 양손잡이형 조직을 추구한다. 즉, 한손은 기존 사업 중심으로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또 다른 한손으로는 스타트업처럼 혁신적인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술 경영의 창시자인 윌리엄 밀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양손잡이 조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타트업 기업의 생명은 스피드다. 조직이 작고 가벼운 만큼 신속하게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가장 큰 무기다.

예를 들면 최근의 트렌드 중 하나가 ‘핀테크’다. 2013~2014년 두 해 동안 국내에 설립된 핀테크 관련 창업 기업 수는 200개 정도다. 2015년 한 해 동안에만 400개 가까운 관련 기업이 창립됐다. 폭발적으로 이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추정하건대 이 중 기존의 금융 기업에서 설립한 기업의 수는 매우 미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기업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이 오래되고 클수록 변화는 어렵다. 조직의 이해관계도 다르고 복잡한 프로세스에 의해 움직인다. 또한 의사 결정의 단계도 여러 단계로 구성된다. 이러한 점들이 속도를 내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많은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기업의 DNA를 이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GE는 한때 1등, 2등이 아니면 모두 없애버리는 규모의 경제를 지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기업보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크라우드 펀딩 도입한 소니

그 일환으로 2012년 ‘패스트 워크(Fast Works)’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는 제품 개발 프로세스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재빠르게 제품화하고 고객의 피드백을 수용하는 과정을 거쳐 제품을 수정하는 프로세스다. 이는 제품의 개발 속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고객의 요구를 즉각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GE는 이 방식을 통해 가스터빈의 개발 기간을 종래의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성과를 올렸고 3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이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4년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퍼스트 빌드(First Build)’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운영 방식은 패스트 워크와 동일하지만 참여 구성원의 범위와 접근 방식에서는 차이가 난다. 패스트 워크가 내부 구성원 중심이라면 퍼스트 빌드는 외부 일반인이 참여하는 방식에 역점을 둔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일반인까지 참여해 폭넓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또한 소량생산을 통해 신속하게 시장 반응에 대응한다. 그리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신속하게 GE의 생산 체계 내에서 큰 규모로 확장해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

소니도 경쟁사에 의해 시장 내의 위상을 많이 잃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15년 7월 ‘퍼스트 플라이트(First Flight)’라는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는 제품 개발에 대한 의사 결정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고객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즉,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면 고객들이 투자 형태로 참여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새롭게 개발할 수 있다. 2015년 9월 출시된 웨어러블 기기 ‘웨나’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셋째, 급변하는 환경에서 빠르게 변신하는 기업은 고객과 소통하는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다. 북미 최대의 드론 생산 업체이자 개인용 드론의 원조 격인 ‘3D 로보틱스’는 무인 비행기에 대한 개인 블로그에서 출발했다. 이것이 2007년 드론 제작과 관련한 커뮤니티 ‘DIY 드론’으로 성장했고 하나의 기업 형태로 발전했다.

이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모여 드론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교환됐다.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팀을 구성해 회로를 설계하고 각종 시스템을 만드는 협동 작업도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설계된 회로와 부품들은 중국·대만·캐나다 등으로 보내져 생산됐다. 배송 받은 부품들은 함께 모여 조립됐다. 점점 커뮤니티 회원들의 주문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회사까지 창업하게 된다.

자라, 전 세계 매장 실시간 분석

의류 SPA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자라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전 세계 매장의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공동 개발했다. 이러한 데이터를 토대로 진열 상품 수와 매출 간 포화 지점을 분석해 매장별 재고 투입량을 본사에서 실시간으로 조절한다.

그뿐만 아니라 디자인·생산·배송에도 반영, 소량주문·적시운송 등으로 무재고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2주에 한 번꼴로 1만 개가 넘는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시장 중 하나인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며 급성장하는 기업이 있다. 대표 게임인 ‘캔디 크러시 사가’는 2013년부터 모바일 게임 순위 3위권 안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2014년 3월 뉴욕 증시 상장 당시의 기업 가치는 70억 달러(약 8조3265억 원)를 넘었다. 영국의 킹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다. 이 회사의 성공 비결 역시 고객과의 소통이다. 2003년 창립 이후 게임 사용자들의 선호 기기의 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게임 플랫폼을 전환했다.

또한 사용자들의 연령별·성별·직업별·소득별로 분류하고 각 집단의 특성이나 행동 양식을 분석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고객과의 라이프타임 파트너 개념을 도입해 몇 번 방문하고 떠나는 고객이 아닌, 평생 함께하는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이상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 살펴봤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말이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 잘나가는 기업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혁신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쟁사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는 남보다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강성호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