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금융사는 한국 지점 폐쇄·사업 축소
'일시적 현상' 분석도
영국계 투자은행(IB) 바클레이즈가 1월 21일 한국 사업을 철수하고 서울 소재 은행과 증권 지점 폐쇄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공식화면서 업계가 술렁거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바클레이즈 본사는 아시아 시장에 대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한국과 대만 사업을 접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클레이즈은행은 과거에도 한 차례 한국 지점을 폐쇄한 바 있다. 1977년 국내에서 첫 영업을 시작했다가 외환 위기 직전인 1996년 2월 지점 폐쇄에 나섰다. 이후 재인가를 받아 2001년 서울지점을 재개한 지 15년 만에 다시 문을 닫게 됐다.
바클레이즈의 철수 소식은 국내에 들어온 영미권 은행의 집단 이탈 움직임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앞서 지난해 3월 영국 최대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은행이 서울지점을 매각한다고 발표하며 한국 사업 철수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RBS는 발표 당시 “7년 연속 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 부진으로 한국을 비롯해 중국·인도·홍콩·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 등에서 해외 사업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RBS 서울지점은 올해 폐쇄될 예정이다.
다른 영미권 은행들의 사정도 매한가지다. 영국 은행인 홍콩상하이은행(HSBC) 또한 한국 사업의 축소 차원에서 2013년부터 소매금융 사업을 접고 기업금융 업무만 보고 있다. 또 2014년부터 꾸준히 몸집 줄이기에 나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SC은행)은 지난해 1월 저축은행, 3월에는 캐피털 지분 전량을 일본 기업인 J트러스트에 매각했다.
또 SC은행은 한국 사업 구조를 단순화하고 핵심 사업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1일 SC금융지주를 SC은행으로 흡수 합병했다. 이에 따라 SC금융지주는 해산하고 SC은행이 금융지주의 자회사인 한국SC증권을 거느리는 체제로 바뀌게 됐다.
미국계인 한국씨티은행 또한 지난해 12월 한국씨티캐피탈 지분 전량을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매각하는 등 조직 슬림화에 돌입했다.
이처럼 영미권 은행들이 주춤한 사이 중국계 은행들이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감원 금융중심지원센터에 따르면 2015년 9월 기준으로 국내 지점을 설립한 외국계 은행은 모두 17개국, 39개 은행이다. 지점 설립 전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을 포함하면 총 23개국에서 58개 은행이 한국에 진입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7개(지점 5곳, 사무소 2곳), 5개(지점 5곳) 은행이 국내에 들어왔지만 RBS와 바클레이즈 철수가 마무리되면 영국 은행은 3개 지점으로 줄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지난해 광대은행이 본인가를 받아 올해 한국에 지점을 낼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중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 6곳(1993년 중국은행이 서울에 지점을 설립한 이후 중국·공상·교통·건설·농업은행 등 총 5개 은행이 국내에 지점을 낸 상태)이 돼 지점 수로 보면 미국과 영국계 은행을 앞지르게 된다.
이 밖에 지난해 지점 설립 인가를 얻은 외국계 은행은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인도네시아느가라은행(BNI)으로 모두 아시아계 은행이다.
국내에 들어온 중국 은행들의 성장세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중국·공상·교통·건설·농업은행 등 5개 중국계 은행 지점의 총자산 합계는 모두 65조원으로, 한 해 전의 48조1000억원보다 35% 늘었다. 작년 35% 성장…보폭 넓히는 중국계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 영업이 고속 성장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앞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위안화 특별인출권(SDR) 편입 등으로 위안화 거래 규모가 커지면 중국 은행들의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해외의 대형 IB들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비용 감축과 사업 재편을 통해 리스크 관리와 생존 전략 구축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전에도 유사한 현상이 반복된 적이 있어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영미권 은행이 국내에서 빠지고 있는 것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며 “영미권에서 아시아쪽 시장을 피하게 된 요인이 따로 생긴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캐피털·저축은행과 같은 비즈니스는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많이 접고 있는 추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영미권 은행들이 일시에 한국 사업을 철수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지금 중국 자본이 팽창하는 시기이다 보니 한국에서도 영역 넓혀 가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일본 역시 대부자본이 워낙 많이 (한국에) 들어와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딱히 중국만 두드러지게 성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 진입한 글로벌 금융사의 이탈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10년 넘게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이 자칫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 은행들은 금융 위기 이후 장기적 플랜에 따라 비용 절감, 구조조정 등의 필요가 늘어난 상황”이라며 “은행 본사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 국내에서 철수 방침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국내 금융 규제와 특별한 제도적 마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우수한 외국 금융사들을 더 지원하고 유치하기 위한 규제 완화에 더 노력을 쏟을 것이고 이를 위해 외국계 금융사들의 애로 사항을 계속 듣고 반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현주 기자 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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