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탄자니아는 벌써 대낮처럼 햇빛이 쨍쨍하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안젤라가 쾌활하게 인사하며 들어온다. 쌓여 있던 설거지를 뚝딱 10분 만에 끝내고 하루 사이
뽀얗게 먼지가 쌓인 바닥을 물걸레로 싹싹 닦는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가 반짝반짝하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사도우미 ‘다다(Dada)’.
검은 대륙 구석구석은 그녀들의 손길로 빛이 나고, 오늘도 그녀들의 얼굴엔 건강한 웃음이 넘친다.
글·사진 정소라 객원기자
[Life&into Africa] 정소라의 아프리카 속으로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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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는 원래 언니, 누나, 여동생 등 여자 형제를 부르는 말이다. 대부분 젊은 여자들이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오랜 시간 집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편하게 가족처럼 ‘다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 가사도우미라는 뜻도 생겼다. 한국에서 식당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탄자니아에서는 가사도우미를 쓰는 일이 흔하지만, TV 드라마 속 부잣집에서나 봤던 가사도우미를 직접 쓰려니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다. 빨래를 맡기고 청소를 시키는 것도 왠지 모르게 민망하게 느껴졌다.
어색한 사이도 잠시, 낯선 현지 생활 속에서 화장품 가게, 옷 수선집, 칼 갈아주는 곳 등 세세한 생활 정보를 물어보며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매처럼 가까워졌다. 툭하면 전기가 나가고 물이 나오지 않는 이곳에서 이제 안젤라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안젤라는 탄자니아 서쪽 ‘키고마(Kigoma)’ 지역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올해 나이 25세.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가사일을 거들던 중, 오빠의 소개로 아루샤 호텔에 취직해 18세 때 처음 도시로 왔다. 하지만 취직의 기쁨도 잠시. 1년 만에 호텔이 문을 닫아 다시 백수 신세가 됐다. 다시 시골로 돌아갈 수도 없고….
우리 집 ‘다다’ 안젤라의 일과는 ‘캉가(Kanga)’를 허리에 둘러매면서부터 시작된다. 화려한 무늬가 프린트된 커다란 면 보자기인 캉가는 다다들의 필수품이다. 빨래나 설거지를 하면서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으려고 앞치마처럼 쓴다. 휴대전화는 깜빡 해도 캉가는 꼭 가방에 넣고 다닌다. 쌀쌀한 날에는 어깨에 둘러 숄처럼 쓰고 더운 날에는 머리에 뒤집어써 직사광선을 막는다.
캉가는 보통 가로 1.5m, 세로 1m의 천으로 가로는 양팔을 좌우로 뻗은 길이와 비슷하고 세로는 가슴부터 무릎까지 덮을 수 있는 길이다. 굵은 무늬가 천의 테두리를 따라 프린트돼 있고 중앙에는 두껍게 그려진 커다란 꽃문양이나 기이학적 도형이 반복된다. 캉가는 허리에 둘러매거나 가슴 위로 묶어 입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포대기처럼 아이를 업을 때 쓰거나 똬리처럼 만들어 머리에 물건을 올릴 때 받치기도 하는 등 눈에 익은 모습도 보인다. 그 외에 덮개, 깔개, 걸레 등 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오죽하면 캉가를 사용하는 101가지 방법을 소개한 책까지 있을 정도다. 화려한 색감의 무늬 덕에 더러워져도 눈에 잘 안 띄고, 면으로 만들어져 세탁도 쉽고 빨리 말라 편리한 캉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은 캉가로 시작해서 캉가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화려한 전통 천을 다양한 방법으로 두르는 의복 문화는 동아프리카 전역에 펼쳐져 있는데, 19세기 중엽 탄자니아의 동쪽 섬 잔지바르에서 수입한 포르투갈산 손수건이 그 기원이다. 당시 손수건은 커다란 천에 여러 장이 함께 프린트돼 수입됐는데 상인들은 이를 한 장씩 잘라서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잔지바르 섬의 여인들은 이 천을 자르지 않고 옷으로 만들거나, 다른 무늬의 손수건끼리 이어 붙여 더 화려한 무늬로 만들었다. 이 의복이 유행하게 돼 현재까지 내려온 것이다.
요즘 안젤라가 자주 걸치는 캉가는 흰색 바탕에 잔잔하게 푸른색 무늬가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밑단의 문구가 마음에 들어 샀다고 한다. 모든 캉가에는 속담이나 성경, 이슬람 교리에 나온 문장이 한 줄씩 적혀 있다. 안젤라의 캉가에는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뜻의 성경 구절이 적혀 있는데 캉가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문장이 자신의 종교와 다르면 사지 않는다고 한다.
캉가를 두르고 비눗물을 튀겨 가며 빨래를 하는 안젤라. ‘식모살이’의 슬픔이 배인 한국에서는 이 모습을 안쓰럽게 보겠지만, 이곳에서는 부러움과 선망이 가득한 눈으로 본다. 가사도우미는 현지 여성들에게 ‘최고의 직업’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도 마치기 힘든 여자 아이들은 일찍부터 집안일을 하며 자랐기 때문에 가사도우미 일이 낯설지도 않고, 영어를 할 수 있거나 외국 음식을 할 줄 알면 외국인 집에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과일 행상이나 음식점 종업원보다 많은 돈을 고정적으로 벌 수 있다.
그래서 가사도우미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다다 등급’이 있다. 외국인 집에 출퇴근하는 다다가 첫 번째이고, 그다음이 외국인 가정의 입주 다다, 맨 마지막은 현지인 가정 입주 다다다. 외국인 가정으로 출퇴근하며 일하는 다다는 식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요리도 덜하고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된다. 그리고 그녀들에겐 꿈같은 생활인 외국인이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간접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통조림 따개를 쓰거나 진공청소기를 써보고는 친구에게 뽐내며 설명해주기도 한다. 현지인 가정에서 일하면 일이 수십 배로 늘어난다. 삼시세끼 차리랴 아이 돌보랴 앉아 있을 틈이 없다. 게다가 탄자니아 사람들의 저녁식사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늦은 밤 9시이기 때문에 식사 후 뒷정리를 하고 나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된다.
다다의 월급은 보통 10만 탄자니아실링으로 한화로 약 5만 원 정도 된다. 워낙 인건비가 싼 곳이긴 하지만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는 것치고는 참 적은 돈이다. 안젤라는 이 적은 돈을 쪼개서 시골에 사는 어머니에게 부치고 전문대에 다니는 남동생의 학비를 보태는데, 그걸 또 남겨서 몽땅 꾸미는 데에 ‘올인’한다.
안젤라가 가장 큰 돈을 쓰는 곳은 헤어스타일. 시내에 있는 ‘살롱(salon)’에 가서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바꾼다. 제일 간단한 머리 땋기를 해도 2만 탄자니아실링, 무려 월급의 5분의 1을 투자해야 한다. 좀 더 멋을 부리고 싶어서 가발을 연결해 길게 땋거나 스트레이트파마를 하면 가격은 더 오른다. 게다가 미용실 액세서리 코너에서 새 머리에 어울리는 헤어 장식이나 귀걸이를 사면 한자리에서 월급의 반을 쓰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동그란 올림머리에서 땋아 내린 긴 머리로, 풍성한 파마머리에서 스트레이트 단발로. 33㎡ 남짓한 공간에 의자는 두 개뿐인데 손님은 다섯 명이나 된다. 미용사 아주머니의 손끝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이렇게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도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다 끝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본 스타일이라도 최소 3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원래 하고 있던 머리를 푸는 시간까지 합치면 시간은 더 늘어난다.
이 기나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건 역시 ‘수다’다. 아프리카 미용실의 수다 주제도 ‘연애 상담’이 1순위. 안젤라가 남자친구를 못 만난 지 일주일이나 됐다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안젤라의 남자친구는 사파리 운전사로, 탄자니아 남자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세렝게티 성수기인 요즘, 매일 사파리를 가느라 바빠 데이트 할 시간도 없단다. 남자친구 대신 친구들을 만나거나 집에서 DVD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얼마 전엔 한국 드라마인 ‘주몽’을 봤다고 한다. 그들의 로망인 길게 쭉 뻗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주인공에 대해 한창 설명하던 안젤라, 드라마에선 반짝이는 예쁜 원피스를 입던데 내게 왜 ‘한국 옷’을 안 입느냐고 묻는다. “그 드라마는 2000년도 더 전에 있던 일을 보여주는 거야”라고 하니, “농담하지 마”라며 미용실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아마 한국의 어느 부족은 아직도 말을 타고 왕관을 쓰고 다닌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여인들의 수다로 시끌벅적한 현지 미용실. 이곳에는 한국의 미용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천장에 붙어 있는 커다란 거울. 한국에서는 머리를 하고 나면 뒷모습만 체크하지만 여기에서는 정수리에 땋아진 모양이나 올림머리의 모양도 확인한다. 미용사들도 머리를 땋는 틈틈이 거울을 올려다보며 방향과 모양을 확인한다.
실제 머리를 땋고 나니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두피가 아프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피를 가렸던 머리카락이 정리돼 직접 두피에 바람이 닿아 훨씬 시원했다. “근데 이거 어떻게 감아?”라고 안젤라에게 물어보니 샴푸로 감고 드라이기로 말리면 된다고 한다. 진짜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니 말리는 데에 10분도 안 걸린단다. 나중에 머리를 말려보니 30분 동안 드라이기와 씨름을 해도 여전히 축축했다. 알고 보니 땋은 머리를 일반적인 방법으로 감고 말릴 수 있는 건 유전학적으로 건조한 모발을 가지고 태어난 흑인들뿐이었다.
살롱을 나와 매니큐어, 헤어컨디셔너, 귀걸이, 가발, 향수 등 여자들을 위한 모든 것을 파는 종합 상점에 들어가니 종업원이 안젤라와 똑같은 ‘초커 목걸이’를 하고 있다. 목에 착 달라붙는 스타일의 이 목걸이는 요즘 아루샤에서 가장 핫한 액세서리다. 탄자니아는 물론 아프리카 전역에서 인기가 높은 미국 유명 가수 ‘리한나’가 하고 나와 유행이 시작됐다고 한다. 국경 없는 유행의 비밀은 ‘TV 드라마’다. 탄자니아에서는 ‘TV 시청’만이 거의 유일한 문화생활이다. 탄자니아는 아직 자체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케냐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드라마를 수입해 틀어주는데 이런 드라마를 통해서 빠른 속도로 유행이 퍼진다. 안젤라는 ‘버버리’나 ‘비비안웨스트우드’ 같은 브랜드 이름은 모르지만 비슷한 모양의 가방을 케냐 드라마에 나온 거라며 들고 다닌다.
쇼핑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새로 산 탐스러운 가발을 들고 화려한 골드 귀걸이를 한 번 더 쳐다보는 안젤라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안젤라는 직접 돈을 주고 머리를 해본 것도 혼자 입을 옷을 사본 것도 몇 년 안 됐다고 한다. 일을 하기 전에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머리를 땋았고 옷은 어머니와 함께 입었다. 안젤라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일을 못 구하고 하루 종일 멍하니 살았을 때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젠 옷가게를 차리고 싶다는 작은 꿈도 생겼다.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안젤라, 척박한 아프리카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1. 안젤라의 캉가엔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뜻의 성경 구절이 적혀 있다.
2. 캉가를 둘러매어 치마처럼 활용한 여인.
3. 짐을 머리에 올릴때 동그랗게 말아 똬리처럼 쓰는 캉가.
4. 캉가를 옷처럼 둘러 입은 여인.
5. 화려한 오렌지색의 캉가, 그냥 두르기만 해도 멋있다.
6. 캉가를 포대기처럼 사용해 아이를 업은 여인.
7. 캉가를 사용하는 101가지 방법을 설명한 책.
8. 전통 천 ‘캉가’를 두르고 거리를 걷는 여인들.
9. 거리에서 팔고 있는 DVD. 한국 드라마인 ‘아이리스’와
‘주몽’이 눈에 띈다.
10. 수다를 떨며 짧은 머리를 땋느라 분주한 현지 미용실.
11. 현지 미용실에선 천장에 달린 거울로 머리를 확인한다.
12. 신중하게 가발을 고르고 있는 안젤라.
13. 현지 미용실에서 머리를 땋고 나니 두피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