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심사와 자본 적정성 관리의 전문성 강화 시급

“올해는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등으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리스크 관리가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시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1월 7일 금융위에서 열린 ‘2016년 리스크 점검 회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금융위는 이어 1월 14일 열린 ‘2016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도 올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금융 안정(리스크 관리)’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기 둔화로 대외적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그만큼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도 늘어났다. 가계 부채와 금융 산업의 수익성 악화는 물론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기업 대출 부실화 등 위험 요소도 산재해 있다.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발등의 불’로 다가온 은행 리스크 관리
늘어나는 부실기업…BIS 비율 하락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올해 금융권 특히 은행에 대한 금융 당국의 감독 규정이 강화됐고 금융시장 환경 또한 이전과 다른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오래전부터 리스크 관리에 대한 금융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러한 규제가 실제로 시행되는 시점이 바로 2016년”이라고 말했다.

임 연구위원은 “올해는 금융시장 환경의 변곡점에 해당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양적 완화를 실시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지난 7~8년간 위기 이후 체제에 익숙해졌는데, 지난해부터 다시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이 환경적으로 변곡점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보니 리스크 관리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국내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부실채권이 늘어났고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수가 급증하면서 대손충당금 부담 또한 불어났기 때문이다. 대손충당금은 금융회사가 대출 이후 예상되는 상환 불이행에 대비해 미리 적립금으로 쌓아 놓는 금액을 말한다. 돈을 빌려준 기업이 부실해지면 떼일 수 있어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은행들은 대출 부실의 위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비율의 충당금을 적립해야 한다. 대손충당금을 설정한 후 거래처의 부도 등으로 채권에 대한 대손이 발생하면 해당 채권과 대손충당금을 상계하고 대손충당금이 부족할 때는 그 부족액을 대손상각으로 처리하게 된다.

철저한 심사 평가를 통한 신용 리스크 관리로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은행들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제적 자산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2분기 14.09%에서 3분기 13.99%로 하락(은행권 평균)했다. 원화 가치 하락과 은행 대출 급증 등의 요인으로 4분기에도 자기자본비율이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떨어진 자기자본비율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금융권의 ‘발등의 불’이 된 셈이다.

금융 당국의 은행권 리스크 관리에 대한 감독 기준도 강화됐다. 감독 당국이 은행의 리스크 관리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추가 자본 확충을 요구할 수 있는 ‘필라2(Pillar 2)’ 제도가 지난 1월 1일 신규 도입됐다. 또 현행 은행의 자본 적정성과 잠재 위험성 관리 상황을 자율 공시하는 ‘필라3’ 제도는 더 강화된다.

금융위, 5개 ‘시스템적 중요 은행’ 지정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본 적정성 규제(주요국 중앙은행과 금융 감독 당국 대표들로 구성된 바젤위원회에서 정하는 은행의 재무 건전성 관리 제도) 가운데 하나인 ‘필라2’는 감독 당국이 은행 및 은행 지주사의 내재 리스크 및 리스크 관리 수준에 따라 차별적 감독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다.

올해 새로 도입된 필라2는 필라1에서 점검했던 신용·시장·운영 리스크 이외에 금리·유동성·평판 리스크 등도 함께 살펴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적용된 필라1은 모든 은행에 획일적으로 적용된 규제였다. 하지만 필라2 제도는 감독 당국이 개별 은행의 리스크 관리 상황을 점검해 차별적으로 은행에 따라 추가 자본 요구를 내릴 수 있게 됐다”며 “다른 은행에선 받지 않는 자본 확충 제재를 받게 되면 특정 은행의 평판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필라2 규제에 대한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2008년 BIS 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는 ‘필라1’ 제도만 도입했었다. 당시 ‘필라2’는 불확실한 국내외 금융시장 여건을 반영해 도입하지 않았다. ‘필라3’는 필라1과 함께 2008년에 도입됐지만 국제 기준에 비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부터는 자본 적정성에 관한 정보에 ▷연체 자산 정의 ▷대손충당금 산정 방법 ▷자산 유동화 관련 회계 정책 ▷신용 위험 경감을 위한 상계 정책 ▷담보물 평가 관리 정책 등의 항목이 은행연합회의 ‘금융업 경영 통일 공시 기준’에 추가돼 매 분기 공시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부터 규모가 크고 다른 금융회사의 연계성이 높은 ‘중요 은행’의 자본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2일 매년 ‘시스템적 중요 은행(D-SIB)’을 선정하고 은행 경기에 대응하기 위한 완충 자본을 부과하는 내용을 주된 골자로 하는 ‘은행업 감독 규정 일부 개정 규정’을 고시했다. D-SIB는 파산할 경우 국가 금융 환경에 큰 혼란을 불러올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은행 및 지주회사를 말한다.

금융안정위원회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2012년부터 글로벌 금융회사 파산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 회원국에 D-SIB를 선정하도록 권고해 왔다. 글로벌 은행을 대상으로 ‘국제적인 시스템적 중요 은행’을 선정하는 바젤위원회가 국가별로 자국 내 시스템적 중요 은행을 선정해 추가 자본을 부과할 것을 권고한 데 따른 조치다.

금융위는 이 같은 권고에 따라 지난해 말 하나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KB금융지주·NH농협금융지주·우리은행을 대상 은행으로 선정했다(지주에 소속된 은행인 하나은행·신한은행·KB국민은행·NH농협은행도 포함된다).

금융위는 시스템적 중요 은행에 대해 올해부터 추가 자본 1% 적립 의무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적 중요 은행으로 선정된 시중 5개 은행들은 올해부터 매년 0.25%씩 총 4년 간 추가 자본을 적립해 2019년까지 총자본비율 1%를 추가해야 한다.

이처럼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가 부각되고 금융 당국의 감독 체계가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해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올 들어 금융시장의 위험이 급증하는 가운데 위험관리 강화 및 이를 위한 전문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실제 (필라2, D-SIB 등과 같이) 올해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제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어 “최근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데 금융회사들은 일단 감독 당국의 요구를 충족하면 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이제 시중은행도 글로벌 금융시장이, 한국의 금융시장이 어디로 가는지 잘 간파하면서 차별화된 리스크 관리 전략을 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용어 풀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스위스 바젤의 국제결제은행이 제시한 은행 자산 건전성 지표로 위험 가중 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뜻한다. 대출 등 자산이 늘어나는 만큼 자기자본을 늘려 리스크를 관리하라는 취지에서 국제결제은행의 은행감독규제위원회(바젤위원회)에서 정한 기준이다.
바젤 자본 적정성 규제의 근간을 이루는 3개축이 필라1·2·3이다.
필라1 리스크의 범위와 인식 기준에 맞춰 선정한 BIS 자기자본비율이 최소 수준(8%)을 유지하도록 하는 의무.
필라2 필라1로 볼 수 없는 리스크 범위 및 리스크 관리 상황에 대해 감독 당국이 점검하고 합당한 감독 조치를 부과하는 제도. 은행은 필라1에 속한 리스크인 신용·시장·운영 리스크 외에도 금리·유동성·신용편중·평판 리스크 등도 인식해야 하며 금융 당국은 은행의 리스크 관리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추가 자본 요구 등의 감독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
필라3 은행의 자본 적정성 및 리스크 관리 상황을 자율 공시해 시장으로부터 평가 받게 하는 공시 제도.

조현주 기자 cho@hankyung.com

[기사 인덱스]
-은행 리스크 관리 실태 보고서
-"NH농협은행, 올해 초 리스크 관리 전문가 밀려나"
-(인터뷰)"전 행원이 리스크 관리 능력 갖춰야 한다"
-'발등의 불'로 다가온 은행 리스크 관리
-한국은 순환보직 '맹점' 외국은 수십 년 베테랑
-한계 기업 구조조정이 사활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