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LG생활건강, ‘샐러리맨의 신화’ 부회장 2명 배출해

LG화학은 LG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그만큼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남이 미처 안 하는 것을 선택하라”,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개발해 기반을 닦아라” 등은 구 창업회장의 살아생전 남긴 어록이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LG화학은 오늘날 경쟁사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다. 2009년부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생산하기 시작, 불과 10년도 안 돼 세계 1위로 올라섰다. 2015년 전지 부문은 매출 3조1503억원, 영업이익 5억원을 기록했다. 중국 난징공장 투자와 막대한 연구·개발(R&D)로 영업이익이 줄었지만 매출은 직전 연도에 비해 10.4% 증가했다.

최근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내비건트리서치가 발간한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제조 기업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LG화학이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제조사 국제 경쟁력 평가에서도 2013년에 이어 또다시 1위에 올랐다.

LG화학은 현재 20여 곳의 세계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국내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포드, 중국 상하이자동차, 프랑스 르노,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자회사 아우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20여 개 완성차 업체들을 전기차 배터리 공급처로 확보했다.

이처럼 LG화학은 국내 1위 화학 기업으로서 석유화학 분야뿐만 아니라 정보 전자 소재, 이차전지 분야에서도 강한 첨단 복합 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지난해 초 기존 사업본부(석유화학·정보전자소재·전지) 체제에서 3개 사업본부(기초소재·정보전자소재·전지)와 1개 사업부문(재료사업부문)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정신이 깃든 LG화학
‘샐러리맨의 신화’ 고 성재갑 회장
오늘날 LG화학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우뚝 서기까지 견인차 역할을 해낸 인물이 많다.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이는 바로 고 성재갑 LG석유화학 전 회장이다. 2009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한 성 전 회장은 국내 화학 산업의 ‘역사’이자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경남 의령 출신의 성 전 회장은 부산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1963년 LG화학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에 입사했다. 이후 1978년 럭키 이사를 거쳐 럭키석유화학 사장, LG화학 대표, LG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5년 LG석유화학 회장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화학 분야에서만 꼬박 42년을 몸 바쳐 일한 LG그룹의 정통 ‘LG맨’이었다.

그는 전문 경영인으로서 1970년대 가공 산업 위주였던 국내 화학 산업의 체질을 석유화학 원료 산업으로 개선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대에는 생명과학, 1990년대에는 정보 전자 소재 등으로 화학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LG석유화학 대표이사에 취임한 1989년 여수의 나프타분해공장(NCC) 건설을 직접 지휘해 3년이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된 공사를 불과 1년 6개월 만에 완공하는 저력을 보였다.

1949년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화공학과를 나온 김반석 LG화학 고문 역시 LG화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다. 2001년 LG석유화학 대표를 지낸 김 고문은 2006년 LG화학 대표에 올랐다. 이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다.

김 고문은 그룹 차원의 신성장 사업 비전에 맞춰 이차전지 사업을 견실하게 추진했다.‘차별화된 소재와 솔루션으로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세계적 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한 김 의장은 액정표시장치(LCD)용 유리 기판 사업을 추진하는 등 미래 신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는 평을 듣는다.

김 고문 재임 시절 LG화학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몰아닥친 최악의 경영 환경 속에서도 2008년 순익 1조원 달성에 이어 2009년 영업이익 2조원을 돌파하는 등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김 고문은 2012년 12월 서울대 화공학과 후배인 박진수 당시 석유화학사업본부장(사장)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현장감각·전문지식 겸비한 박진수 부회장
현장 감각과 전문 지식을 겸비한 정통 화학맨으로 불리는 박진수 부회장은 1977년 LG화학의 전신인 럭키에 입사했다. 여천 스티렌수지 공장장(상무), 특수수지 사업부장(상무) 등을 거쳐 2005년 옛 LG석유화학 대표이사를 지냈고 2012년 LG화학 사장에 이어 2014년 부회장에 올랐다.

LG석유화학 대표 재임 기간 동안 NCC를 아시아 톱 3 규모로 성장시켰고 비스페놀-A(BPA) 사업에 뛰어들어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갖춘 사업으로 육성했다. LG화학에 몸담는 동안에는 고기능성 소재인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사업에 집중해 세계 1위로 키워내기도 했다.

1952년생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박 부회장은 ‘현장 중심형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전남 여수공장 생산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PS 생산 라인을 새 공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박 부회장은 몇 주간 현장을 지켰다.

당시 일본인 기술 고문이 재가동까지 6개월이 걸린다고 했지만 박 부회장은 그의 예상을 깨고 3주 만에 공장을 정상화했다.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정신이 깃든 LG화학
LG화학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 3명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기초소재사업본부장인 손옥동 부사장, 배터리 연구소장인 김명환 부사장, LG생활건강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으로 LG화학 CFO로 부임한 정호영 부사장이 주인공이다.

1982년 입사한 손옥동 신임 사장은 중국 닝보 소재 용싱 법인장, PVC사업부장 및 ABS사업부장 등 기초 소재 분야의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이를 통해 ABS 사업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기초소재사업본부장에 부임,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PVC·가소제 사업을 흑자 전환시키고 영업이익을 직전 연도보다 2배 정도 키우는 등 수익성을 개선했다. 1958년생으로 부산대를 나와 캐나다 맥길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배터리 연구소장으로 재직해 온 김명환 신임 사장은 이차전지 사업 초기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957년생인 김 사장은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화학공학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애크런대에서 고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 리튬이온 전지 양산을 통해 전지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1961년생인 정호영 신임 사장은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84년 입사했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생활건강 CFO 등 LG그룹 재경 분야의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전략적 성과 및 리스크 관리를 통해 지속적인 성과 창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다.

한편 전지사업본부장에는 LG이노텍 대표이사 출신인 이웅범 사장이 임명됐다. 이 사장은 1983년 입사 후 LG전자 레코딩 미디어 사업부장, 휴대폰생산담당, LG이노텍 부품소재사업본부장 등 주로 생산 분야에서 성과를 나타냈다. 1957년생으로 한양대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현재 LG화학을 이끌어 가는 임원은 2015년 9월 말 기준 총 93명으로, 이 중 학력이 확인된 45명의 15.6%(7명)가 서울대 화학공학과 학부 출신이었다. 최종 출신 대학별로는 서울대와 카이스트가 각각 6명(13.3%)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고려대 5명(11.1%), 한양대 3명(6.7%), 성균관대·부산대·일리노이대·애크런대·맥길대 등이 각각 2명(4.4%)이었다.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정신이 깃든 LG화학
‘미다스의 손’ 차석용 부회장
LG화학으로부터 2001년 분사한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을 빼놓고 LG생활건강의 역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차 부회장은 그만큼 독보적이다. 손대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해 11년 연속 성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LG생활건강은 2015년 결산 결과 사상 최초로 매출 5조원을 돌파했다고 지난 1월 26일 밝혔다. 매출은 전년 대비 13.9% 늘어난 5조3285억원으로 집계됐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6841억원, 4704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모두 직전 연도에 비해 33.9%, 32.7%씩 증가했다.

특히 럭셔리 화장품은 60% 성장했다. 고수익성 럭셔리 화장품의 비율 확대로 화장품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2.0% 포인트 오른 15.9%를 기록했다. 럭셔리 화장품 라인 중 한방 화장품 ‘후’의 성장세는 주목할 만하다. ‘후’의 매출은 국내 면세점뿐만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의 높은 인기로 전년보다 88% 성장한 8081억원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화장품·음료 3개 사업 부문이 서로 맞물리면서 수익을 창출한다. 오늘날 이런 사업 구조를 만든 주인공은 바로 차 부회장이다. 차 부회장은 2005년 취임 후 꾸준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런 세 축을 만들었다. 그래서 “LG생활건강의 역사는 차 부회장 취임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5년 당시만 해도 LG생활건강의 사업은 생활용품(67.6%)과 화장품(32.4%) 둘로 나뉘었다. 2007년 차 부회장이 코카콜라음료를 사들이고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 2011년 해태음료 등을 잇달아 인수하자 마침내 ‘생활용품·화장품·음료’로 구성된 3개 사업부의 진용을 갖추게 됐다.

1953년생으로 경기고와 뉴욕주립대 경영학과, 코넬대 경영학석사, 인디애나대 로스쿨 출신인 차 부회장은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듯이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 지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며 “기존 생활용품과 화장품 사업 사이에는 교차점이 한 개뿐이지만 음료 사업의 추가로 교차점이 세 개로 늘어나면서 회사 전체에 활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정신이 깃든 LG화학
화학에서 독립한 생명과학·하우시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차 부회장의 경영 철학은 최근 임원 인사에서도 나타났다. 이정애 럭셔리화장품 사업부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것. LG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부사장이 LG생활건강에서 탄생하게 됐다.

이 신임 부사장은 2011년 생활용품사업부장 선임 이후 차별적인 마케팅으로 어려운 사업 환경을 뚝심 있게 헤쳐 왔다. 1963년생으로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부사장은 퍼스널 케어 제품의 프리미엄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생활용품 시장의 일등 지위를 확고하게 강화한 성과를 인정받아 LG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부사장이 됐다.

LG생활건강은 올해부터 음료 사업을 포함해 총 5개 사업부 체제로 운영된다. 화장품 사업이 프리미엄 화장품과 럭셔리 화장품으로 나뉘고 생활용품 사업은 퍼스널 케어와 홈 케어로 세분화됐다.

2002년 독립한 LG생명과학은 2011년 정일재 사장 취임 이후 대사질환·백신·바이오 의약품 등 3대 시장 선도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1959년생으로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사장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90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LG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LG경제연구원 부사장을 거쳐 2006년 LG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LG유플러스 PM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정 사장이 이끄는 LG생명과학은 현재 40% 수준인 해외 사업 비율을 60% 이상으로 높이고 매출액 대비 20% 이상인 800억원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세포 보호제 등의 혁신 신약 개발과 6가 혼합 백신, 소아마비·폐렴 백신 등 차세대 백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승진한 김명진 LG생명과학 부사장(1959년생)은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연구개발부문장 겸 생산부문장을 겸임하고 있다. 카이스트 화학공학 석사, 미국 클락슨대 화학공학 박사인 김 부사장은 회사 내 대표적인 연구·개발통으로 현재 3대 시장 선도 핵심 사업의 연구·개발(R&D)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9년 분사한 LG하우시스에도 서울대 화학공학 출신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3년부터 LG하우시스를 이끌고 있는 오장수(1954년생) 사장과 LG하우시스 연구소장을 역임하고 2014년 자동차소재부품사업부장을 맡아 2015년 승진한 민경집(1958년생) 부사장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현기 기자 henr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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