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악화로 승진 폭 최소화 영향, 여성 비율 높인 SK·롯데 ‘주목’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큰 변화는 없었다. 한경비즈니스가 국내 30대 그룹과 주요 금융권 9곳의 여성 임원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여성 임원 231명)에 비해 13명 늘어난 244명으로 조사돼 5.3%의 증가 폭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조사에서 여성 임원이 전년(여성 임원 176명)보다 31.3%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다. 글로벌 경기 악화로 실적이 부진한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임원 승진 인사 폭을 줄인 결과가 여성 임원 발탁에도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우선 국내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그룹은 지난해 28명을 대거 발탁해 여성 임원이 78명으로 늘었지만 올해는 오히려 5명이 줄어든 73명으로 조사됐다. 6.3%나 감소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여성 임원이 지난해에 비해 3명 줄었고 다른 계열사의 여성 임원 자리도 2개가 사라졌다.

그룹 전체적으로 20%가 넘는 임원 감축과 2009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로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여성 임원의 감소 폭이 큰 수치는 아니지만 최근 몇 년간 삼성그룹 내에 불어왔던 ‘여풍’이 다소 사그라진 분위기다.

이러한 분위기는 다른 그룹에서도 나타났다. GS(3명→2명), 한진(7명→6명), 한화(4명→3명), 신세계(11명→9명), 금호아시아나(2명→1명), 동부(2명→1명), OCI(3명→1명), 효성(4명→3명), 미래에셋(9명→8명) 등 9개 그룹에서 여성 임원의 수가 줄어들었다.

재계 2위 현대차는 지난해와 같은 9명의 여성 임원 체제를 유지했고 LG(15명), 포스코(6명), KT(8명), 두산(7명), 현대(2명) 등의 5개 그룹들도 여성 임원의 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LS·대우조선해양·대림·S-Oil·대우건설·동국제강·영풍 등의 7개 그룹은 여성 임원이 전무했다.

반면 SK·롯데·CJ·현대백화점·코오롱 등 5개 그룹은 여성 임원을 대폭 늘렸다. 특히 롯데는 지난해 5명의 신규 여성 임원을 늘린 데 이어 올해도 6명의 여성 임원을 더 추가했다.

지난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과 그의 차녀 장선윤 롯데재단 상무(현 롯데호텔 해외사업 개발담당 상무)가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현장에서 뛰는 3명의 여성 임원이 새로 등장한 것이지만 올해는 오너가와 상관없는 현장 여성 임원이 전진 배치됐다. 롯데는 앞으로 여성 임원 비율을 전체 임원의 30%까지 높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임원 직급별 분석' 한풀 꺾인 '여풍'…13명 증가에 그쳐
금융권은 하나금융만 2명 증가

SK의 여성 임원은 지난해 13명에서 올해 17명으로 4명이 늘어났다. CJ도 3명이 늘어 13명의 여성 임원이 이름을 올렸다. 현대백화점과 코오롱도 각각 2명씩 여성 임원이 늘어나 11명과 6명의 여성 임원이 근무 중이다.

금융권은 적긴 하지만 약간의 여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부분의 여성 임원을 줄인 금융그룹들이 올해에는 여성 임원의 수를 조금씩 늘린 것이다. 신한·우리·하나·KB·NH 등 금융그룹 5곳을 조사한 결과 2015년에 비해 여성 임원이 4명 늘어났다.

하나금융그룹이 여성 임원 2명이 더 늘어 총 4명의 여성 임원이 구성됐고 신한·우리금융그룹은 각각 1명의 여성 임원이 늘어 4명, 3명이 근무 중이다. 하지만 NH금융그룹은 여성들에게 유독 차가운 금융그룹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임원 자리에 여성이 오른 적이 없었고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한경비즈니스는 국내 30대 기업과 주요 금융권의 여성 임원 현황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하기 위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243명의 여성 임원을 직급별로 분류해 분석했다.

분석은 각 그룹에서 제출한 자료와 본지 취재·확인된 내용을 토대로 회장·부회장·사장·부사장·전무·상무(상무보·상무대우 포함)·이사(이사대우·전문위원·부행장보·본부장) 등 7개의 직급을 나눠 나이·학교·전공 등을 살펴봤고 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부회장-회장 순서로 정리했다. 비공개 정보와 직급제를 없앤 SK그룹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사 : 평균 나이 49.3세…유학파가 대세

국내 30대 기업 및 9곳의 금융권에 종사하고 있는 이사급 여성 임원은 지난해(43명)와 비슷한 수준인 42명이다. 이런 현상은 올해 30대 기업과 주요 금융권들 대부분이 임원 승진 규모를 최소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삼성전자의 이사급 임원의 감소다. 지난해 삼성전자 이사급 여성 임원 중 6명이 임원 명단에서 사라지며 이사급 여성 임원이 18명으로 줄어들었다.

여성 이사들의 평균나이는 49.3세로 조사됐다. 지난해 여성 이사들의 평균나이 48.9세와 비교하면 0.4세 높아진 셈이다.

출신 대학을 살펴보면 해외 유학파가 총 15명으로 주를 이뤘다. 조지아공과대와 존스홉킨스대 출신이 2명씩 있었고 메인대·노스웨스턴대·뉴욕대·런던비즈니스스쿨·보스턴대·크랜필드·파리12대·헬싱키대·매사추세츠공과대·코네티컷대 등에서 졸업한 유학파들이 1명씩 이름을 올렸다.

국내 대학 중에는 포항공대 출신이 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연세대 3명, 카이스트 2명, 숙명여대 2명 등으로 조사됐다. 반면 비중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 서울대와 이화여대 출신은 각 1명씩뿐이었지만 동구여상·서울여상·울산여상·해성국제컨벤션고 등을 나온 고졸 출신의 임원도 4명이나 됐다.

전공 학과 중에는 상경계열 출신이 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뒤를 이어 공과대·이공계·IT대 등의 순서로 조사됐다.

상무 : 전체 여성 임원 중 62%…삼성서 10명 줄어

상무는 전체 여성 임원 243명 중 151명으로 62%를 차지했다. 지난해 155명에서 4명이 줄어들었다. 특히 삼성그룹에서 여성 상무급 임원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57명의 여성 임원이 상무급으로 포진하고 있었지만 올해는 47명으로 10명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 내 임원 그룹 중 상무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여성 임원 73명 중 47명이 상무급이다. 이는 다른 그룹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롯데·포스코·한화·현대백화점 등의 그룹은 여성 임원 모두가 상무급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여성 임원들이 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상무급의 평균연령은 49.5세다. 상무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연세대다. 23명에 달했다. 뒤를 이어 이화여대 22명, 서울대가 14명으로 두 자릿수 상무급 인원을 배출했다. 다음으로는 카이스트 8명, 고려대·한국외국어대에서 각각 7명의 상무급 임원이 나왔다.

전공 학과는 상경계열이 압도적으로 많다. 42명의 상무들이 상경계열 출신이다. 전통적으로 여성 고위 임원들은 상경계열이 강세를 보이는데, 상무급 여성 임원 역시 그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는 모습이다.
'여성임원 직급별 분석' 한풀 꺾인 '여풍'…13명 증가에 그쳐
전무 : 작년보다 5명 줄어든 10명

국내 30대 그룹과 9곳의 금융사들의 여성 임원 중 전무 비율은 1%가 채 안 된다. 좀 더 정확히 수치를 내면 전체 243명의 여성 임원 중 전무는 10명뿐이니 0.04%다. 여성으로서 전무 직함을 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셈이다. 더욱이 지난해 15개의 여성 임원 전무 자리가 있었지만 올해 다섯 자리가 사라졌다.

현재 여성 전무는 ▷삼성그룹 하혜승·김봉옥·윤심·이인재 ▷한진 조현민 ▷KT 송희경·차재연·전경혜 ▷현대 정지이 ▷하나금융그룹 김덕자 등 총 10명이다. 한진과 현대그룹은 그마저도 오너 일가다. 한진은 2014년 전무로 승진한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그룹 내에서 홀로 전무를 맡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있다. 정 전무는 2006년 전무로 승진한 이후 지금까지 전무직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 전무의 평균나이는 51.1세다.

여성 전무의 최종 학력은 웰즐리대·펜실베이니아대·컬럼비아대·파리제6대 등 해외 유학파가 4명, 서울대가 2명, 카이스트 1명, 충남대 1명, 성균관대 1명, 부산여상 1명 등이다. 부산여상을 졸업한 김덕자 하나금융그룹 전무는 고졸 출신임에도 전무에까지 올라 주목을 받았다.

전공으로는 역시 상경계열이 6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 중 경영학과 출신이 4명을 차지했다. 즉, 전무를 달기 위해서는 경영자로서의 전문성이 중요시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사장 : LG, 첫 공채 출신 여성 부사장 탄생

올해 여성 부사장은 총 9명이다. 지난해보다 1명 더 늘었다. 올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 2명이 승진했고 지난해 부사장으로 있던 1명이 자리를 떠났다. 삼성은 심수옥 전 부사장을 대신해 김유미 삼성SDI 전무를 부사장 자리에 올렸다.

김 부사장은 소형 전지부터 중대형까지 포괄하는 SDI 최고의 전지 개발 전문가로, 소형 및 자동차 전지 수주 확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부사장 한 자리를 차지한 여성은 LG생활건강의 이정애 부사장이다. 생활용품 시장 1등의 지위를 확고히 한 성과를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사장은 LG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부사장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소속 이영희 부사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부사장직을 유지했다.

그런가 하면 붙박이 여성 부사장 3인방도 있다. 바로 오너가 여성들이다.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딸)과 박혜원 두산매거진 부사장(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딸), 송광자 효성 부사장(조석래 효성 회장 아내)이다.

실제로 경영 일선에 나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정유경 부사장, 박혜원 부사장과 달리 송광자 부사장은 임원 명단에 이름만 올라 있는 상태다.

또한 CJ에는 민희경 CJ 부사장이 있다.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부사장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부에서 영입된 인재라는 점이다. 김미형 금호아시아나항공 부사장은 임원이 된 지 10여 년이 된 고참 임원이다.

20대에 고 박성용 명예회장에 의해 발탁돼 법률고문을 맡았고 2002년부터 부사장을 맡아 왔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54.4세다. 지난해 평균연령 53.1세에서 1.3세 높아졌다. 이는 거의 변동이 없는 부사장 직급의 여성 임원들이 해가 바뀌며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기 때문이다.

부사장들의 최종 학력을 살펴보면 상당히 한정적이다. 대부분이 해외 유학파 출신이 아니면 서울대나 이화여대 출신이다. 이번에 부사장으로 승진한 김유미 부사장은 충남대를 졸업했다.

사장 :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사장으로 승진

올해는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30대 그룹 여성 사장단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5명이었던 여성 사장들이 4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사장 명단에 올랐던 배선경 SK 사장을 비롯해 조화준 KT캐피탈 사장의 이름이 올해는 사라졌다.

대신 올해 ‘부’자를 떼고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여성 사장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 명단에 있던 삼성그룹의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 신미남 두산퓨얼셀 사장은 그대로 직함을 유지했다. 이 때문인지 여성 사장단의 평균나이는 50세로 지난해 53.8세에 비해 무려 4세 가까이 줄었다.

이들의 최종 학력은 연세대 출신인 이부진 사장을 제외하고는 3명 모두 해외 유학파 출신이다. 우선 이서현 사장은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했고 신미남 사장은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정유경 사장은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를 나왔다.

회장·부회장 : 4명 모두 오너 일가

여성 임원 243명 중 부회장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뿐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인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부재 속에서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최근 건강 문제를 이유로 미국에 머무르며 2개월째 요양에 집중하고 있다.

여성 회장 자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년간 4인뿐이었던 여성 회장 자리에 한 명이 빠지게 된 것이다. 바로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다. 최 회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동생인 조수호 한진해운 전 회장의 부인이다.

하지만 지난해 최 회장이 운영해 오던 한진해운이 위기를 맞자 한진해운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던 한진해운 잔여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회사 이름도 유수홀딩스로 바꿔 한진그룹에서 독립했다. 이 때문에 30대 그룹에서 최 회장의 이름이 빠지게 된 것이다.

다른 여성 회장들은 변함이 없다. 3명 모두 오너 일가인 이들은 이명희 신세계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이다. 이들 여성 회장 3인의 평균나이는 66.7세다. 이들은 이화여대(이명희·현정은 2명)·상명여대(1명)를 졸업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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