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해 보험료 깎아 주고 사기 패턴도 찾아내고
보험 산업은 성격상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많아 변화에 둔감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만 1300조원 규모의 이 거대한 산업은 최근 2~3년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빅 데이터다.몇몇 기업이 빅 데이터 분석으로 뛰어난 성과를 냈고 이에 자극 받은 다른 기업들이 이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흐름에 뒤처져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도 있다.
이를 선도하는 것은 자동차보험이다. 지금까지는 운전자의 나이, 성별, 운전 경력, 주행거리 등 10여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보험 등급을 산정하고 보험료를 결정해 왔다. 최근 들어 여기에 운전자의 운전 습관, 신용 정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정보 등 1000여 개의 요소를 활용해 보다 정교하게 등급을 산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보다 합리적으로 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어 보험금을 낮추면서도 보험 지불금을 대폭 축소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자동차보험 전문 업체 프로그레시브는 스냅샷(Snapshot)이라는 장치를 차에 장착해 운전자가 언제, 얼마나, 어떻게 운전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측정해 보험사에 전송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고 있다.
특히 안전 운전을 하는 사람들의 보험료를 깎아 주는데, 이는 사고 이력이 없으면 보험료가 낮아지는 현재의 정책이 발전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보다 정교한 모형으로 사고 위험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려는 이러한 노력들은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그렇다면 이들이 최근에 들어서야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데이터의 폭발적 증가와 계산 용량의 현격한 발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해 주어진 사진에 있는 물체를 비행기·사과·곰 등의 범주로 분류하는 이미지 인식 문제를 살펴보자. 재미있는 게임 정도로 보이는 이것은 사실 인공 시각(machine vision)의 대표적인 문제로, 공장자동화와 의료 진단 및 자동차 안전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자동차 회사들은 보행자와 자전거를 인식하고 차를 자동으로 멈춰 사고를 방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컴퓨터의 분류 능력을 보면 2010년 72%에 불과하던 정확도는 2012년 84%로 증가했고 2014년에는 인간의 능력과 동등한 93%에 도달했다. 이러한 능력의 향상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알고리즘의 개발이 그 주요 원인이다. 며칠 걸리던 보험료 산정 순식간에
자동차보험은 최근 몇 년간 자동차 및 운전자에 관련된 데이터가 폭증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최근 사고 위험을 예측하는 모형의 정확도가 현저하게 개선됐다. 이러한 발전의 바탕은 바로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다.
즉,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나이, 운전 경력 등의 다양한 요소를 바꿔 가면서 모형으로부터 사고 위험을 예측해야 하는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작업에는 수일이 소요됐다.
문제는 보험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분석가가 이러한 계산을 요청하고 그 결과를 검토해 이를 수정하고 다시 계산을 요청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품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바꿔 설계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컴퓨터 처리 속도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현재는 이러한 과정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즉 분석가가 다양한 요소를 변화시켜 그 결과를 바로 살펴볼 수 있고 그 결과 보다 빠른 시간에 보다 정교한 상품을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컴퓨터의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미국 보험 전문 업체 가이코(Geico)에서는 전화로 보험을 판매하면서 고객에게 보험료를 즉시 알려주는 것이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에 주목했다. 문제는 컴퓨터의 처리 속도다. 사용자의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확한 보험료를 산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해결책으로 미국의 모든 인구 및 가정에 대해 모든 보험 상품의 보험료를 계산해 이를 저장해 놓은 후 상담 때 그 결과를 이용했다. 이 계산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60시간. 이 회사에서는 이를 매주 반복해 보험 상품과 고객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회사의 보험 판매가 현격히 증가했다.
자동차보험에서의 이러한 성공은 다른 업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상업용 건물과 주택 보험 업계에서는 건물에 다양한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건물의 위험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큰 기회는 건강보험에 있다. 미국에서만 3600조원이라는 막대한 시장에서 빅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건강보험은 개인이 선택하지 않고 환자에 대한 데이터에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아직까지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환자 보호 및 부담 적정 보호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의 시행으로 전자 의료 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의 활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빅 데이터 기술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졌다.
즉, 환자의 질병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선제적으로 접근하려는 방향으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자동차보험의 사례처럼 환자의 다양한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건강의 위험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했을 때의 결과를 모형을 통해 예측해 치료 및 예방의 관점에서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내부 사기·횡령으로 4000조원 사라져
예를 들어 프레미스 헬스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미국에서 고용주 기반의 건강보험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전국에 500여 개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집중하는 영역은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PCMH : Patient centered medical home)로, 현재 약 50개의 전문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PCMH의 핵심은 환자의 증상이 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생활 습관을 바꿔 이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막대한 비용을 절약하고 고귀한 생명까지도 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환자의 의료 기록 및 데이터를 환자와 의료진에게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 모형을 구축해 구체적인 치료법과 예방책을 도출하려는 것이다.
빅 데이터는 또한 보험 사기를 잡아내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다. 사기 및 금융 범죄의 규모는 8경원이 넘는 세계 재정의 10~1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기업의 수익이 1조원이라고 할 때 1000억원이 넘는 돈이 범죄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중 내부 사기와 횡령으로 추산되는 금액은 약 4000조원에 달한다. 기업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아 이를 비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빅 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이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위장 교통사고를 살펴보자. 최근 한 보험사는 보유한 데이터 전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사실을 알아냈다. 즉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서로 무관해 보이는 교통사고들이 모두 한 명의 교통경찰에 의해 접수됐다는 것이다.
이를 정밀하게 조사해 보험 사기단을 적발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패턴을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살펴보는 방법으로 찾아내려는 것이 현재 업계의 방향이다.
업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분야의 벤처 산업을 살펴보는 것이다. 미국 조사 기업 벤처스캐너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보험 업계의 벤처기업은 13종류, 465개가 존재하며 총투자금은 4조원이 넘는다.
이를 살펴보면 자동차·건강·자산 등의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 보험 상품의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보험사를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등이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보험 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앞에 언급된 새로운 기술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확보하며 모형을 개발하는 등 그 시작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빅 데이터 기술의 효과가 보다 분명해지면 결국 이런 대규모의 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만이 경쟁력이 있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몇 개만이 살아남게 되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 즉, 현재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기업 중에서 중소기업은 승자독식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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