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강세 잡으려 유동성 대폭 늘릴 듯…'제2차 통화 전쟁' 예고

최근 일본 주가가 급락하고 국채(10년) 수익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 증권시장이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보다 더 적극적 통화정책인 ‘헬리콥터 머니’로 대응하겠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올 들어 2월 12일까지 일본 주가(닛케이225)는 21.4%나 폭락했다. 주가가 이처럼 급락한 것은 경제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앞서간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08년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했다. 통화정책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과감했다. 연방기금 금리를 거의 0%까지 인하했고 이도 모자라 비정상적 통화정책인 양적 완화를 통해 3조 달러 이상 본원통화를 늘렸다.

이에 따라 2011년 8월까지 달러 가치가 하락했다. 상대적으로 엔화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2007년 하반기에 123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이 2012년 1월에는 76엔까지 하락했다.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의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켰다.

일본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 2%’를 내세우고 미국보다 돈을 더 많이 풀면서 대응했다. 2013년과 2014년 일본의 본원통화 증가율은 각각 46%와 37%에 이르렀다. 미국은 각각 39%와 6%였다. 지난해 미국의 본원통화 증가율은 2%였지만 일본은 25%로 훨씬 높았다.

덫에 빠진 일본 경제…회복 불투명

2013년 이후 미국보다 일본이 돈을 더 많이 풀다 보니 엔화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8월에는 엔·달러 환율이 125엔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풍부한 유동성과 엔화 가치 하락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2015년 8월 ‘닛케이225’는 2만809로 2012년 말(1만395)에 비해 2배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의 주가가 0.3% 올랐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상승률이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일본 경제가 아직도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것이다. 1994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100이라고 했을 때(1994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일본 중앙은행이 GDP를 수정했는데 통계가 1994년부터 발표됐기 때문이다) 2011년 2분기는 94로 오히려 6%나 감소했다. 그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지난해 4분기에는 101이었다. 21년간 경제가 명목 기준으로 1% 성장한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만 보더라도 일본 경제의 회복 속도가 느리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 2분기에서 지난해 4분기까지 한국과 미국의 실질 GDP가 각각 24%와 10%씩 증가했지만 일본 GDP는 겨우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러한 경제 상황에 비해 주가가 너무 빨리 올랐다. 일본 주가는 장기적으로 명목 GDP에 3분기 정도 선행(상관계수 0.67)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변동해 왔다.

하지만 주가와 명목 GDP 장기 관계를 분석해 보면 2015년 2분기 말에는 주가가 명목 GDP를 43% 정도 과대평가했다. 3분기부터 주가가 하락하면서 그 괴리가 4분기 말에는 32%로 줄었지만 주가의 경기 과대평가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올 들어 주가가 급락하고 있는데, 이는 과도한 유동성으로 생긴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주가 하락과 함께 2월 9일부터 일본의 국채(10년) 수익률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 일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지금까지는 볼 수 없던 현상이다.

피셔 방정식(명목금리=실질금리+예상물가상승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명목 금리인 국채 수익률에는 향후 기대되는 실질 경제성장률 혹은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다.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앞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의 심화를 의미한다.

세계, 다시 돈 풀기 나서나

수요 측면에서 일본 GDP 구성 내용을 봐도 일본 경제가 앞으로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선 GDP의 57%를 차지하고 있는 가계 소비가 인구의 고령화 때문에 거의 정체 상태에 있다.

돈의 대부분은 노인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인들이 미래의 의료 및 복지 부담에 대비하기 위해 이 돈을 은행에 맡겨 놓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8%인 소비세율을 2017년 4월 10%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그 이후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일본 기업도 투자를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 일본 GDP에서 설비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7년 15% 정도였지만 2009년 이후에는 13%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수출 증대를 통해 수요를 촉진하는 정책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엔·달러 환율이 최근 114엔대까지 떨어졌다. 일본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서 얻은 돈으로 해외 증권에 투자했는데,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개인이 해외에 투자한 자금의 일부를 환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엔화 가치 상승을 방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의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한 마이너스 금리를 더 확대하고 나아가 개인의 은행 예금에 대해서도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할 수 있다. 이때도 앞서 살펴본 소비와 투자의 구조적 문제로 내수가 회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양적 완화(현재 연간 80조 엔 공급) 규모를 대폭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헬리콥터 머니’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머지않아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이 중앙은행이 돈을 시장에 공급하는 모습을 일본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2차 ‘통화 전쟁’을 야기할 전망이다. 1차 통화 전쟁은 2008년 미국, 2012년 일본, 2015년 유로존과 중국 순서로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일본이 헬리콥터 머니를 통해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면 제조업 중심으로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미국이 뒤따를 것으로 판단된다. 그 뒤 유럽중앙은행도 양적 완화 규모를 더 늘릴 전망이다. 또한 기업과 은행의 부실을 처리해야 할 중국도 선진국들의 통화 전쟁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가 다시 돈을 풀면 일본을 포함해 세계의 주가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경제 펀더멘털의 뒷받침 없는 주가 상승은 최근 일본 주가가 보여준 것처럼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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