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LCD 빼곤 중국에 시장 넘겨줘
'1% 성장 시대 온다' 경고 목소리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지 올해로 20년째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강도 높은 요구로 기업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고 일자리를 잃은 국민들은 ‘레드오션’ 창업 전선에 뛰어들거나 길거리로 내몰렸다.

한때 ‘인터넷 산업’이 새로운 환상으로 떠올랐지만 이내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들은 ‘버블’로 끝을 봤다.

그리고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전후해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지 9년째를 맞았다. 남유럽의 경제대란으로 유로존이 휘청거렸고 최근에는 셰일가스가 몰고 온 유가 급락으로 세계경제 지형이 바뀌고 있다.

격랑 속을 항해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제’는 새로운 도전과 응전에 나서야 하는 형국이다.

50대 싱크탱크 전문가 설문… ‘주력 산업 위기’ 88%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 날개 꺾인 '수출 신화'…경제 골든 타임 놓칠라
한국 경제가 힘을 잃어 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2.6%다. 잠재성장률인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만이 아니다. 2012년 이후를 놓고 보면 2014년(3.3%)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3%를 밑돌고 있다. 세계경제 역사에서 유례없는 성장 신화를 써내려 오던 한국이 수년째 2%대 성장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위기다. 한국의 경제·산업을 진단·연구하는 하는 전문가 집단도 위기론을 제기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신뢰도 있는 경제·산업 분야 싱크탱크 상위 50개 기관의 전문가 50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가 한국의 주력 산업이 ‘위기(31명, 62%)’ 또는 ‘심각한 위기(13명, 26%)’라고 진단했다. 6명(12%)의 전문가가 ‘보통’이라고 답했고 위기가 아니라고 응답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주력 산업이 위기에 빠진 원인에 대해선 기업의 경쟁력 저하(18명, 35.5%)와 혁신 정체(15명, 29.4%),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9명, 17.6%) 등을 꼽았다. 주력 산업의 노후화(3명, 5.9%), 환율 등 외부 리스크(1명, 2%), 중국의 성장 둔화(1명, 2%) 등을 지목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의 수출·매출·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다”며 “중국의 추격을 받는 상황에서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세계 주요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위기 이후 국내 제조업체들의 연구·개발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진해 단기간에 경쟁력을 만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동안 한국 수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선·플랜트·철강 등의 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 산업을 벤치마킹하며 따라가는 전략을 구사해 급성장했던 주요 산업이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한계에 부닥쳤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수출 비율이 가장 큰 중국의 경제성장 역시 둔화되면서 한국의 주요 산업이 극도의 침체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또한 주력 산업에서 경쟁하는 일본 기업의 부활과 중국 기업들의 맹추격은 한국 제조업의 설 자리를 더욱 좁히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의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노동·자본 등 생산요소를 모두 활용했을 때 물가를 올리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2020년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출과 제조업 성장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감한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민간 경제 연구 기관을 중심으로 2%대 저성장 시대의 고착화를 예측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016년 경제성장률을 민간에서 가장 낮은 2.5%로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성장률을 2.8%로 예상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6%를 전망하고 있다.

중국 ‘기술’ 일본 ‘가격’에 치인 역넛크래커 처지

정부 출연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성장률을 사실상 2%대로 조정했다. 정부 관련 연구소 중 2%대 저성장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곳은 KDI가 처음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각각 3.3%, 3.2%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도 대체로 2%대 성장을 전망한다. 삼성증권과 현대증권은 2.9%, NH투자증권은 2.6%, 한국투자증권은 2.5%로 봤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의 전망은 더 암울하다. 노무라는 2.5%, 모건스탠리·씨티그룹·UBS는 모두 2.4% 성장을 내다봤다.

무디스의 스테펜 딕 부사장은 “한국의 수출 기여도는 점점 줄어들어 마이너스까지 갈 수 있다”며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면 한국은 2016년 2.5%, 2017년 2.8%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망치는 서로 다르지만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외부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잠시 살아나는 듯 하던 미국 경제가 다시 꺾일 조짐을 보이고 유럽은 여전히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버팀목이던 중국마저 흔들리면서 한국 경제는 ‘퍼펙트 스톰’ 위기를 맞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경제에서 예전과 같은 성장 요인은 더 이상 없다고 봐야 한다”며 “장기 침체 리스크가 다가오고 있는데, 향후 5년 내에는 인구구조상의 변화 등으로 성장률이 1% 중반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주력 산업의 미래에 대한 위기 경고는 이미 11년 전인 2005년부터 제기돼 왔다. 당시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2015년 산업 발전 비전과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 경제가 더 이상 4%대 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중속성장(中速成長) 시대’에 진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 낀 이른바 ‘넛크래커론’을 제기하며 단순 가공무역 중심의 역할 모델에서 과감히 탈피해 새로운 글로벌 산업구조에서 보다 역동적이고 다변화된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제안도 들어있다.

구체적인 산업별 비전도 함께 제시됐다. ▷세계 2강 반도체 국가 ▷세계 3위 디지털 전자 강국 ▷글로벌 자동차 4강 ▷조선 산업의 글로벌 리더(초고속 초대형선) ▷철강 생산 세계 5위 초일류 철강 산업 구현 ▷글로벌 석유화학 5위 ▷첨단 기계 산업 항공 선진국 G8(주요 8개국) 진입 등이다.

당시 산자부는 이런 발표를 하면서 “2015년에 다시 꺼내 보면 아마 상당 부분 틀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도하는 이유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6년 현재 한국의 산업은 11년 전 그렸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경제성장률은 3%에도 못 미치고 성장 속도는 중속이 아니라 저속으로 떨어졌다.

중국의 ‘가격’과 일본의 ‘기술’에 끼인 넛크래커는 중국의 ‘기술’과 일본의 ‘가격’에 치인 ‘역넛크래커’로 달라졌다.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해운·석유화학 등 한국을 대표하던 주요 산업은 저성장과 저유가에 발목을 잡힌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력 산업을 이끌어 온 대기업들이 흔들리고 관련 종소기업도 휘청거린다. 산업 전체가 붕괴 위기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고용 창출은 겉돌고 기업 부채는 쌓여만 간다.

수치로 나타난 산업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국내 산업의 7대 문제점과 시사점’ 보고서를 살펴보면 전체 수출 대비 10대 주력 산업의 수출 비율은 1980년 55.9%에서 2014년 86.3%로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산업 구성을 살펴보면 정보기술(IT)·수송기계·기계·철강·화학 관련 산업으로 큰 변화가 없다. 2010년 이후 시기별 ‘30대 품목’에서 바뀐 것은 3개에 불과하다.

30대 수출 품목, 수십년째 그대로

게다가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27.0%, 일본의 23.3%, 독일의 22.3% 정도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세계 수출 시장점유율은 2010년 이후 3%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이는 주요 경쟁국인 중국(12.4%)·독일(7.7%)·일본(3.6%)에 뒤처지는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2000년 이후 10대 산업 구성을 살펴봐도 IT·수송기계·기계·철강제품·화학 등 달라진 것이 없다”며 “30대 수출 품목도 2010년 이후 인쇄회로·원동기·철강관 등을 제외하고는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정 산업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이들이 부진하면 경제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신성장 동력이 될 산업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 지표는 더 처참하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수출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4개월 동안 한 차례도 반등하지 못한 채 줄곧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8.5%나 급락했다. 6년 5개월 만의 최대 감소 폭이다. 1월 수출액은 367억 달러로 지난해 월간 수출액이 가장 많았던 3월의 468억 달러와 비교하면 100억 달러 정도 줄어든 것이다.

수출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저유가와 중국 경제성장 둔화로 요약된다. 유가는 지난해 1월 45.8달러에서 올해 1월 26.9달러로 ‘반 토막 수준’이 됐다. 석유 관련 제품의 단가도 따라서 곤두박질했다.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 날개 꺾인 '수출 신화'…경제 골든 타임 놓칠라
1월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제품에서만 16억 달러의 수출 감소분이 생겼다. 지난해 수출 전체를 살펴보면 유가 하락 영향분만 빼면 연간 수출 감소율은 마이너스 7.9%에서 마이너스 2.9%로 줄어든다. 저유가 기조가 수출에 가장 큰 악재인 것이다.

여기에 수출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악화가 수출 하락세를 더욱 부채질했다. 2015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5년 만에 7% 선이 붕괴되며 6.9%를 기록했다. 중국이 내수 자급률을 계속 높이고 있어 한중일 3국간에 유기적으로 형성됐던 글로벌 밸류 체인(국제 분업)도 약해지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주력 산업 ‘휘청’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조선·해운·건설·석유화학 업종은 아직도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철강업에서 한국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5.92%로 4개국(미국·중국·일본·한국) 중 가장 높았지만 2014년엔 3.96%로 하락해 미국(6.55%)과 일본(5.27%)을 밑돌았다.

자동차 산업은 영업이익률이 2010년 7.54%에서 2014년 3.77%로 감소해 미국(8.84%)과 일본(5.91%)보다 낮았다. 전기전자와 화학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가운데 일본이 한국을 앞질렀다.

해운업에서 한국의 매출 증가율은 2010년 40.08%에서 2014년 마이너스 16.53%로 크게 후퇴해 4개국 중 최하위였다. 특히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의 해운업 매출 증가율은 2011년을 기점으로 성장세로 돌아선 데 비해 한국은 2012년 이후 줄곧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 가는 모양새다.

화학 업종에선 미국의 매출원가율이 약 30%대로 낮은 수준이지만 한국·일본·중국의 매출 원가율은 60%가 넘는 등 효율성이 낮은 비용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은 자동차 업종에서 가장 높은 매출원가 구조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전기전자·해운에서도 중국과 유사하게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연구·개발(R&D) 투자를 더욱 늘리고 제품을 고부가가치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한 컨트롤타워 확립, 신성장 동력 육성 관련 법 제도의 정비 등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신성장 동력을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기존 산업은 경쟁력 제고 노력을 지속하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구조조정 지원 등을 통해 산업의 경쟁 기반을 조속히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존 성공 방정식 벗어나야 산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스스로 노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의 이 라틴어 격언이 한국 경제에 꼭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부터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 켐차이나의 스위스 종자 기업 신젠타 인수가 대표적이다. 인수 금액은 463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 기업의 해외 M&A 사상 최대 규모다.

칭다오 하이얼그룹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부문을 54억 달러에 사들였고 홍콩 기업 허치슨왐포아는 영국의 이동통신사 O2를 인수했다. 애플과 구글도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유망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들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미래 준비에 쫓기는 상황이다. ‘패스트 팔로워(새로운 제품,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 전략으로 성공한 업종들은 이미 후발 주자인 중국으로부터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분석을 보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주력 산업은 철강·정유(2003년 추월당함), 석유화학(2004년), 자동차·조선해양(2009년), 스마트폰(2014년)순으로 중국에 세계 시장점유율을 추월당하고 있다.

한국의 주력 제조업 중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분야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정도다. 그나마도 근소한 차이다. 반도체는 중국이 전 세계 최대 시장으로 수요 측면에서 주도권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과감한 투자로 차세대 분야에서 기술 추격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디스플레이에선 2008~2013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이 한국은 5.6% 수준인데 비해 중국은 29.0%에 달한다. 수년 내 저가 치킨게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과 한국의 기술을 답습하던 중국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2014년 선진 기업의 기술을 도입하면서 성장을 시작한 중국 고속철도는 중국의 놀라운 기술 점프 속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래 신산업으로 불리는 스마트카, 사물인터넷, 융합 바이오, 융합 소재 등에서도 한국의 지위는 불안하기만 하다. 산업연구원이 분석한 한중일 3국의 업종별 경쟁력을 살펴보면, 중국은 현재 열세인 분야가 많지만 10년 후에는 모든 업종에서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은 미래형 자동차인 스마트카에서 한국을 추월하고 일본에 근접한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예전의 성공 방정식(대기업 집중, 수출 중심, 정부 주도)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질성장률이 떨어지고 고용 창출의 핵심인 중소·벤처기업의 생존율도 하락하고 있다.

주력 산업인 제조업이 기술 프런티어(기술 경계)를 넘어 선도적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쟁력과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위기가 구조적인 원인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땜질식 단기 처방 대신 산업 정책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모두 8차례 열었다.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경제·산업 분야의 가장 중요한 회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수출진흥회의를 확대 개편한 형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회의에서 수출이 주된 의제로 오른 것은 지난해 7월 한 차례뿐이었다. 그나마 이때 나온 대책도 무역금융 확대, 판로 지원 등 이미 발표된 내용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주요 안건으로 올라왔던 서비스업 규제 완화, 기업 투자 활성화 대책 등은 이익 단체의 반발과 국회의 벽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 날개 꺾인 '수출 신화'…경제 골든 타임 놓칠라
한때 세계 10위권에 들었던 국내 대표적 중견 조선사인 경남 통영 ‘신아SB(신아에스비)’가 조선업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말 결국 파산을 신청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골든 타임 흘러간다’…정부·정치권 현실 인식 의문

선제적인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제도의 정비도 시급하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업종 전환, M&A 등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이 생존의 위기에 몰렸는데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현실 인식도 가다듬어야 하겠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치권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은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지만 온갖 조건을 걸어 놓아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30년까지 최대 69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보고 정부가 발의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3년 반이 지나도록 답보 상태다. 근로시간을 단축해 청년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늘려 주자는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개혁법 개정안’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흔히 얘기하는 ‘쟁점 법안’에 대해선 정부와 여당이 꼼짝할 수 없도록 만든 ‘국회선진화법’ 또한 ‘날치기 법안 통과’를 막겠다는 본래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19대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 근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 악법이다.

여기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이제는 글로벌 밸류 체인이 성숙 단계에 이르면서 세계의 기업들은 일하기 좋은 나라에 투자하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정부 규제를 비롯한 절차상의 문제, 공정 경쟁의 부재, 노조 등의 문제로 해외 자본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한국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이러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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