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7대 유망 산업 (2) '가상현실(VR)'
페이스북 VR 기기 예약 판매, 첫날 3개월 치 팔려

일상이 된 '가상현실'…1500억 달러 시장
커다란 고글을 뒤집어쓰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낯선 주방, 피로 얼룩진 싱크대가 눈에 들어온다. 멀지 않은 곳에 사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 그 사이 한 여성이 손에는 칼을 들고 낯선 남자를 덮친다.

2015년 11월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에서 공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게임 ‘키친’이다. 분명 ‘가상현실’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데, 호러 영화 버금가는 소리와 입체 영상에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극한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게임 포기’를 선언하는 이들이 속출했을 정도다.

가상현실이 현실이 되고 있다. 게임, 영화, 공연을 넘어 교육, 마케팅, 의료분야까지 활용 범위 또한 무궁무진하다. 2016년은 가상현실이 일상생활 속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오는 ‘대중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은 가상현실 대중화 원년

VR은 컴퓨터 그래픽 등을 통해 현실이 아닌 환경을 현실처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와 비교해 증강현실(AR)은 실제 세계를 기반으로 가상의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해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집안의 거실에 앉아 축구 게임을 즐기면 가상현실이지만, 축구 경기를 실제로 관람하는 와중에 선수들 옆으로 지난 경기기록이 보여진다면 이는 증강현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AR은 VR의 일부로 인식됐지만, 최근 들어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VR과 구분돼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VR이든 AR이든 핵심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체험의 확장’이다.

VR의 역사는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비디오 게임 업체들을 중심으로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이 가상현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엔 닌텐도 등의 게임 업체들이 비디오 게임에 적용을 위해 VR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몇몇 제품이 출시되기도 했지만, 대중의 주목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엉성한 그래픽 연출이 현실감을 주기에 부족했을 뿐 아니라, VR기기 또한 지나치게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도 대중의 외면을 받은 이유가 됐다.

지금 VR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배경은 이와 무관치 않다. 먼저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에 가까운 가상현실을 창조하는 게 가능해졌다. VR기기 또한 예전과 비교해 상당히 작아지고 가벼워졌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내려갔다. 이런 두 가지 장애요인이 해결되면서 보다 대중화된 VR기기가 본격적으로 출시되고 있는 시점이다.

VR에 대중의 시선이 다시 쏠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주춤했던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지털캐피탈은 VR·AR 관련 시장이 2020년엔 1500억달러(약 182조2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중 VR은 300억달러(약 36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장기적으로는 AR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더 높게 본 것이다.

VR시장이 부각되면서 관련 업체에 대한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다. IT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전세계 VR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은 1억달러(약 1215억원)에 달한다. 2012년 이후 VR기업에 흘러들어간 벤처캐피탈 자금만 14억6000만 달러(1조7739억원)으로 파악된다.

◆ 높은 인기 구가하는 VR기기, 황금열쇠는 ‘킬러 콘텐츠’

지난 1월 7일,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VR기기 전문업체 오큘러스는 ‘오큘러스 리프트 CV1’의 예약판매를 전 세계 20개국에서 동시에 실시했다. 이 VR기기 한 대의 가격은 599달러(약 72만원). 당초 300~350달러(36만~42만원)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책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기는 예약판매를 실시한지 하루만에 3개월치 물량이 동이 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공식 출시는 오는 3월 28일이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를 필두로 HTC, 소니 등도 앞다투어 VR기기를 선보이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HTC는 게임 플랫폼인 밸브와 합작해 ‘바이브’를 선보이고 지난 2월 29일부터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오는 4월 공식 출시 예정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인 소니는 연내에 플레이스테이션 VR을 선보일 계획이다. 구글은 VR사업부를 신설하고, 연내 출시를 목표로 VR기기를 개발 중이다.

현재 VR·AR에 활용할 수 있는 기기는 500달러(약 60만원)가 넘는 고가의 헤드셋에서부터 소비자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통해 영상을 재생하는 형태, 그리고 특별한 헤드셋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사용하는 형태까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구글의 ‘카드보드’는 25달러(약 3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골판지 고글 형태로 간단하게 조립한 뒤 스마트폰을 끼워 VR기기로 사용할 수 있다. 향후 VR기기는 점차 세분화 되는 과정을 거쳐 다양한 사용자층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하드웨어’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한 VR 열기는 서서히 ‘소프트웨어’로 옮겨 붙기 시작했다. 엄지원 코리아에셋증권 연구원은 “VR이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킬러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얼리 어답터’들을 중심으로 VR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활용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화돼야 VR기기가 더욱 대중화 될 수 있고, VR 산업 역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진단이다.

VR 콘텐츠에서 가장 먼저 뜨거워지기 시작한 분야는 역시 게임, 영화, 공연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다. 현재 출시돼 있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는 VR기기들은 게임기나 PC, 스마트폰과 연동해 사용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게임 업체에서 VR 콘텐츠 개발에 대한 움직임이 빠르다. 국내에서는 한빛소프트, 조이시티 등 중견 게임 개발사들이 VR 콘텐츠 게임을 개발 중이다.

영화와의 결합도 활발하다. 지난 1월 21일부터 31일까지 미국 유타주에서 열린 독립영화제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모두 31편의 VR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인기 가수의 콘서트를 360도 VR 영상으로 즐길 수 있는 VR콘서트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미 2PM, 비스트 등 한류가수들의 공연 실황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영화와 공연 등을 포함한 VR 콘텐츠 시장에 가장 활발하게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은 이동통신사들이다. KT는 지난 1월 가상현실 콘텐츠 전문기업인 AVA 엔터테인먼트와 제휴를 맺고 VR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모바일 IPTV 서비스인 '올레tv 모바일'을 통해 360도 VR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외 관광지 영상, 아티스트들의 공연 영상, 연예인들의 피트니스 영상 등 약 30 편의 콘텐츠를 VR로 즐길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VR 콘텐츠 전문 업체인 무버, 베레스트 등과 손잡고 지난 2월 4일부터 ‘LTE비디오포털’에 360도 VR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의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인 ‘옥수수’를 통해 이달 중 360도 VR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다.

현대원 한국VR산업협회장은 “VR 콘텐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과 결합할 수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무한하다”며 “특히 국내에는 컴퓨터그래픽 전문가를 포함해 인력 인프라가 좋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