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7대 유망산업 '융복합소재'
한국 타이타늄 산업 경쟁력 세계 15위 수준
중국·일본에 비해 뒤처져

[한경비즈니스=조현주 기자]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제공항에서 열린 파리 에어쇼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30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초대형 여객기 보잉 787이 활주로를 떠나 수직이륙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수직이륙은 전통적으로 전투기·전투 헬리콥터나 할 수 있는 곡예에 가까운 기술이다. 대형 항공기의 곡예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타이타늄’ 덕분이었다.

타이타늄은 비강도(비중 대비 강도)가 다른 금속 소재에 비해 탁월해 최근 들어 대형 여객기 등의 랜딩기어, 날개 구조물, 배기 및 엔진 계통 등의 소재로 많이 쓰이고 있다. 1980년대 이전까지 4% 미만에 불과했던 보잉 여객기 기종의 타이타늄 중량 비율은 이제 18%까지 높아졌다.
꿈의 소재 ‘타이타늄’을 키워라
중국 타이타늄 핵심 국가로 급부상

타이타늄은 원자번호 22번의 원소로, 1795년 독일 화학자 율리우스 하인리히 클라포르트가 발견했다. 타이타늄이 산업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인데 사용 역사가 짧은 것은 그만큼 추출하기 힘든 대표적 희소금속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에 원자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초음속 전투기, 인공위성 등의 소재로 쓰이며 국가 주도로 기술 개발이 시작됐다. 현재도 미국·러시아·일본·중국 등 국가만이 타이타늄 금속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타이타늄은 항공 분야뿐만 아니라 국방·자동차·의료와 해양 플랜트, 스포츠 레저 산업에 이르기까지 연관된 산업 시장이 무궁무진한 신소재로 꼽힌다. 실제로 안경테, 골프채의 헤드, 테니스 라켓, 시계와 같은 일상 용품과 인공관절이나 뼈 같은 생체 금속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타이타늄에 대한 수요 또한 급증하고 있어 2012년 전 세계적으로 150조원에 달하던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600조원에 달해 4배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타이타늄 시장의 4대 강국으로는 중국·미국·러시아·일본 등이 꼽힌다. 우선 미국은 1980년대 이전 냉전 체제에서 국방·항공·우주산업 중심으로 러시아와 타이타늄 기술 개발에 대한 경쟁에 나섰다.

냉전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는 타이타늄을 민·군 복합 산업으로 육성해 항공기와 자동차 부품 개발 등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는 타이타늄 금속의 주요 생산국인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과 공동으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민·관 공동으로 항공·우주·선박·자동차 산업이 집적한 1조5000억원 규모의 ‘타이타늄밸리’를 조성했다. 일본은 타이타늄의 산업적 활용 가치에 주목해 자동차·발전·플랜트 등 제조업과 연계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타이타늄 소재 생산국으로, 수많은 산업체와 연구소 등 인프라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역사 또한 깊다. 중국에서 타이타늄에 대한 연구는 1954년 베이징철금속연구총원에서부터 시작됐는데, 현재는 베이징항공재료연구원·베이징항공우주대·둥베이대·상하이교통대 등에서 기존의 타이타늄 합금 이외에 타이타늄·구리계 합금, 타이타늄 기지 복합 재료 등 첨단 분야까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세계 타이타늄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또한 늦게나마 타이타늄 강국 대열에 오르기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3월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함께 발표한 대한민국 신산업 창출의 핵심 전략인 ‘미래 성장 동력-산업 엔진 종합 실천 계획안’에서도 타이타늄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 종합 실천 계획안의 ‘19대 미래 성장 동력 분야’에 융·복합 소재가 포함돼 있는데, 타이타늄 산업 육성 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타이타늄 산업발전협의회’를 발족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타이타늄 원천 소재와 항공·의료 부품 개발 및 조기 시장 창출을 위한 ‘타이타늄 산업 육성 전략’을 함께 담고 있다.

정부는 타이타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해수 담수화 설비 열교환기 부품과 발전소 증기터빈 블레이드, 고부가가치 의료용 임플란트 합금 등을 국산화하는 ‘징검다리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3170억원 규모의 국내시장을 조기 창출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고령화 시대 맞아 수요 급증

융·복합 소재 분야에는 타이타늄 이외에도 창의 소재(인체 동기형 바이오 금속 소재, 수소 저장 및 변환 소재 등), 탄소섬유 복합재, 하이퍼 플라스틱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정부가 타이타늄을 주요 투자 분야로 지목하고 있는 이유는 활용 분야가 다양해 앞으로의 성장세가 가장 기대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화의 영향으로 생체 의료용 시장이 세계적으로 커 가고 있는 추세 속에서 타이타늄의 체내 조직이나 혈액과 반응하지 않아 의료용 기기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임플란트의 핵심 소재 역시 타이타늄이다.

한국은 세계 5위에 이르는 타이타늄 수입국으로 매년 수입량이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시험·장비 구축과 기술 개발을 추진해 왔지만 원천 소재 기술 개발 노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타이타늄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극한 환경에 활용되는 특수 소재인 만큼 연구·개발에 긴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김상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융·복합 소재 가운데 타이타늄이 가장 핵심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는 주요 미래 산업을 위한 핵심 기간 소재이기 때문”이라며 “미래부와 산업부가 타이타늄을 미래 성장 동력의 융·복합 소재 분야 핵심 소재로 동시에 꼽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은 고가의 타이타늄 소재를 수입하고 기술이 부족해 저가의 스크랩으로 수출하는 무역 역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 ‘중국산업경제브리프’에 따르면 실제 한국은 세계 5위의 타이타늄 소재 수입국이면서 대외 의존도가 91% 수준에 달한다. 또 타이타늄 관련 산업 경쟁력은 세계 15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융·복합 소재 분야가 소재, 소재 부품, 가공 단계까지 합쳐진 개념인데 워낙 개발에 시간이 많이 들고 리스크가 크다”며 “특히 타이타늄은 극한 환경용으로 사용되는 소재인 만큼 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타이타늄 산업 발전도가 낮은 편이어서 기술 개발에 대한 노력과 함께 국가 차원의 인프라에 대한 지원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cho@hankyung.com

[기사 인덱스]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날개 꺾인 '수출 신화'…경제 골든 타임 놓칠라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구조조정·신성장 창업 난제 '한국만 제자리'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신성장 7대 유망 산업=1.사물인터넷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신성장 7대 유망 산업=2.가상현실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신성장 7대 유망 산업=3.스마트카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신성장 7대 유망 산업=4.헬스 케어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신성장 7대 유망 산업=5.바이오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신성장 7대 유망 산업=6.에너지 신산업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신성장 7대 유망 산업=7.융복합소재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삼성그룹=반도체의 성공 노하우 바이오에서 재현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현대차그룹=2018년까지 11조 투자…친환경차 개발 '박차'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SK그룹=에너지가 미래다' 신산업추진단 가동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LG그룹='차부품·에너지' B2B 역량 강화로 승부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선진국도 뛴다, 한국이 잘하는 ICT에 집중해야"
-[기업을 다시 뛰게 하자]"과잉 규제 풀고 융·복합 촉진 환경 만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