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시대’ 4세 경영체제 개막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1896년 창업해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의 ‘4세 경영 시대’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국내 대기업 중 첫 4세 경영 체제다.

박정원 (주)두산 회장이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는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 3세 중 맏이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두산가(家)의 장손이다.
두산그룹, 눈길 끈 ‘사우디 방식’ 경영 승계
박용만 회장은 지난 3월 2일 열린 (주)두산 이사회에서 사의를 밝히고 차기 이사회 의장으로 박정원 회장을 천거했다.

박용만 회장은 “오래전부터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생각해 왔다”며 “등기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두산은 지주회사인 (주)두산 이사회 의장이 그룹 회장직을 수행해 왔다.

이에 따라 박정원 회장은 오는 3월 25일 열리는 (주)두산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의장 선임 절차를 거쳐 그룹 회장으로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박정원 회장은 (주)두산 보통주 133만7013주(6.29%)와 우선주 1만5881주(0.29%)를 보유해 오너 일가 가운데 최대 주주다.

소탈하지만 ‘승부사’ 기질 지녀

4세 경영의 선두 주자로 두산그룹을 맡게 된 박정원 회장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마쳤다.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글로넷BG)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31년간 줄곧 ‘두산맨’으로 일해 왔다.

입사 후 두산산업 뉴욕지사, 동양맥주 과장, 두산 관리본부 전무, 두산 상사BG 대표, 두산건설 부회장 등을 맡으면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2012년 (주)두산 회장직에 올랐고 현재 두산건설 회장과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겸임하고 있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정원 회장은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는 한편 그룹 내 신성장 동력 발굴과 인재 육성에 크게 기여해 왔다. 1999년 (주)두산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후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하게 정리해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리기도 했다.

(주)두산 회장직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그룹의 주요 신사업 추진을 진두지휘했다. 진출 2년 만에 수주 5870여억원을 올리며 그룹 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한 연료전지 사업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2015년 면세점 사업 진출에 핵심 역할을 한 사람도 박정원 회장이다.

박 회장은 ‘현장 경영’을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1월엔 민간투자 사업으로 참여한 신분당선 연장 구간(정자~광교)에 임직원들과 함께 시승해 직접 사전 점검에 나섰다. 또한 평소 임직원들과 격의 없이 식사를 함께한다. 서울 을지로6가 두산타워 주변 식당가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본부장급 회식을 할 때 본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한 사람씩 발언 기회를 준 뒤 주의 깊게 듣는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눈길 끈 ‘사우디 방식’ 경영 승계
3세대에서 4세대로…사실상 3년이 임기

두산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형제간 우애를 기반으로 한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승계 방식과 비슷해 눈길을 끈다. 집안 내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회장직을 수행한 뒤 한 세대가 끝나면 그다음 세대로 회장 자리를 넘기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전통이 이어졌다.

두산그룹의 ‘형제 경영’은 1981년부터 시작됐다. 박승직 창업자와 박두병 초대 회장에 이은 두산의 3세대 장자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47세였던 박 명예회장은 회장을 맡은 이후 17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이어 형제 순서대로 고 박용오 회장(1997~2004년), 박용성 회장(2005년), 박용현 회장(2009~2012년), 박용만 회장(2012~2016년)이 그룹 회장직을 맡아 왔다. 박두병 초대 회장의 막내아들이자 박용만 회장의 동생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선친에게 물려받은 지분으로 무역업을 시작해 자연스럽게 승계 구도에서 제외됐다.

재계 관계자는 “2012년에 박용만 회장의 임기가 직전 회장인 박용현 회장처럼 3년으로 정해졌는데 지난해 그룹 경영 상황이 악화된 데다 박용성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마저 맞물려 승계를 미뤄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두산의 ‘3세 경영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박용만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직은 유지하면서 두산그룹의 인재 양성 강화 등을 위해 설립한 두산리더십기구(DLI) 회장으로도 취임할 예정이다. 지난해 연임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도 그대로 유지한다. 대한상의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박 회장은 지난해 3월 재선임됐다.

지난해 859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두산인프라코어는 알짜 사업부인 공작기계 사업부문을 사모 펀드(PEF)인 MBK파트너스에 1조1308억원에 매각하기로 3월 2일 결정했다.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