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인터뷰 "지금은 50년 주기 구조 전환깅 진입"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위기의 한국경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정체된 주력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사물인터넷, 스마트카, 바이오, 에너지신사업 등이 대표주자로 꼽힌다. 방향키는 제대로 잡은 셈이다.

문제는 ‘각론’이다. 목적지는 이토록 명확한 데 비해 그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여전히 미흡하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할까.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을 만나 국내 주력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신성장 산업을 준비하기 위한 세부방안을 들어봤다.
"선진국도 뛴다, 한국이 잘하는 ICT에 집중해야"
-현재 전반적인 한국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요.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전기전자, 조선, 철강, 해운 같은 주력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정도인데, 이들 대부분을 주력산업이 담당합니다.

지난 1월 수출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18.5% 감소했으며, 2월에도 12% 넘게 감소했습니다. 14개월째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데, 최장기 기록입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성장잠재력’이 3%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부진한 주력산업을 대신할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산업 구조의 공백’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주력 산업이 위기를 맞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석유화학, 전기전자, 조선, 철강 등 국내 주력 산업 대부분이 중국과 품목이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정부가 나서서 국영기업, 공기업을 중심으로 이들 산업을 키워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자본시장은 물론 노동 인력까지 컨트롤했습니다. 인건비를 억눌러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투자율을 높여온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주력 산업들이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중국과 계속 맞서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인건비 상대가 안 되니까요. 더욱이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 또한 빠른 속도로 한국을 뒤쫓아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내 주력산업을 접자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경제에서 주력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니까요.”

-중국과 같은 외부환경의 변화 외에 내부적인 요인을 짚어주신다면.
“2016년은 경제 구조, 산업 구조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는 ‘구조전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략 50~60년 주기로 이 같은 ‘구조전환기’가 나타나는데, 지금 변화의 핵심은 ‘저성장’과 ‘고령화’입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고요.

이처럼 산업 구조가 변화하는 시기에, 국내 기업들이 ‘선제적 대응’에 실패한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국내 기업들도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키워드는 당연히 오래전부터 예측하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변화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국내 기업들이 ‘변화의 방향’을 알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70년대와 80년대는 이른바 ‘공업화’ 시대였습니다. 공업화 시대의 산업 정책, 기술 정책의 중심은 공급자와 정부입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대부분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겁니다. 공급이 수요를 리드하는 게 아니라,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뒤따라가야 합니다. 정부가 아니라 ‘소비자’를 더 먼저 보고 자세히 관찰해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도 이에 따라 상당히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답습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차세대 신산업이라는 것이 대부분은 아직 시장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이 같은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주춤거립니다. 그러는 사이 변화의 타이밍을 놓쳐 세계 시장에서 한발 뒤지게 되는 거죠.”

-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적합한 ‘성장 전략’은 무엇일까요.
“공업화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성장 전략은 ‘하나부터 열까지’ 기업이 직접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것입니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제조업에 IT를 더하고, IT에 제약을 더해 전혀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시대입니다. 산업 간의 ‘융합’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대기업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사실을 대기업들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내가 못하는 부분은 남들과 손잡고 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애플과 샤오미가 하고 있는 방식이고요. 지금까지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하던 기업들이 여러 중소기업들과 ‘같이’ 일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산업 간의 융합만큼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결합 또한 핵심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들은 협업에 상당히 약합니다. 협업은 ‘갑과 갑’의 관계가 기본인데, 우리 기업들은 지금껏 해온 방식대로 ‘갑을 관계’가 익숙하니까요.”

◆ “실패 페널티 줄이고, 성공 인센티브 늘려야”

-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과 갑’의 관계로 변화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먼저 중소기업들의 성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높은 기술력을 가진 인재들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어야 결합의 시너지가 더 커질 수 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 기업들의 역동성은 낮은 편에 속합니다. 기업가정신 지수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OECD 34개국 중 22위로 하위권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보상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실패에 대한 페널티가 지나치게 큽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스타트업’ 창업을 선택했다가 한번 실패하면 인생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직장 내에서도 성과를 올려서 인정받는 것보다 사고가 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급선무인 현실입니다. 실패에 대한 페널티를 확 낮추고,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를 크게 확대해야 합니다.”

- 한국에서 가장 유망한 신성장 산업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최근 정부에서 5대 유망 신사업을 꼽았습니다. ICT융복합 산업, 에너지산업, 첨단신소재, 바이오$헬스, 고급소비재 등입니다. 이들 모두 미래지향적인 산업이고, 우리가 쫓아가야 할 방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유망 산업의 공통점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 대부분은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첨단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산업군들입니다.

이들 산업이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유망산업인지 아니면 위시리스트인지를 보다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비교우위(상대국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를 고려해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왔고 또 세계 시장에서도 잘 한다고 인정받고 있는 분야가 ICT 관련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이 신성장 산업을 육성$개발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요.
“기업들이 새로운 게임에 임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룰’을 새로 짜야 합니다.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규제 문제’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규제’가 필요한데, 현재로는 복잡한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새로운 시도조차 못하는 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코브라 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통치할 때 코브라가 너무 많아서 영국 주재원들의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은 코브라를 잡아오는 사람들에게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실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니, 이 정책은 오히려 코브라 숫자를 늘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포상금을 노리고 코브라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변화한 시대에 기존의 방식대로 ‘게임의 룰’을 적용했다가는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정책 입안자들 역시 사고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1961년 서울 출생. 198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1년 UCLA 경제학 석박사. 1991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채임연구원. 2003년 유엔개발계획(UNDP) 컨설턴트. 2007년 재정경제부 국세예규심사위원. 200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 기획재정부 관세심의위원. 2013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 1993년~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 대표이사(현)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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