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rtist]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여행하는 작가 남경민
남경민의 작품 가격은 현재 100호(162×130cm) 기준 2300만 원(2010년 1300만 원) 정도인데, 작가적 역량과 화단의 좋은 평가에 비해 다소 낮게 형성된 편이다.

남경민 작가의 실내 풍경 시리즈 중에 2013년 작품 ‘풍경을 향유하다’를 보자. 100호 크기 캔버스 두 개를 세워 붙여 3m에 육박하는 대형 화면은 사방의 큰 창문으로 시원하면서도 단아한 실내 분위기가 일품이다. 이곳은 실제로 임금의 거실이자 생활공간이던 창덕궁 경훈각을 묘사한 것이다.

먼저 정면 상단엔 비단에 그려져 부착된 청전 이상범(1897~ 1972년)의 ‘삼선관파도’ 벽화가 자리 잡았다. 전통적인 산수화풍에 뛰어난 표현 기법과 화려한 화면 구성 등을 그대로 옮겨 생동감이 넘친다. 거실엔 향로가 놓인 중앙의 의자를 사이에 두고, 좀 전까지 나른한 음률이 흘러나왔을 법한 축음기와 멋스러운 촛대가 놓인 탁자가 좌우로 배치됐다. 대청마루 너머엔 봄꽃 화려한 정원이 시원하게 열렸다. 이곳을 거닐고만 있어도 임금의 시름이 한달음에 날아갈 것만 같다. 모든 상황은 장소 말고는 모두 남 작가가 설정한 페이크(fake)다.

그가 작품으로 전하려는 것은 ‘내적인 사유와 성찰, 기쁨과 희망적 메시지, 일상으로부터의 여행’ 등으로 요약된다. 남 작가는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한 명상을 즐긴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다. 그림은 이성과 감성의 무한하고 반복적인 교감으로 탄생한다. 그의 작품이야말로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의 파편과 시간의 퍼즐이 필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는 충만한 감수성은 아주 세심하면서도 미묘한 색감의 차이로 감정선을 조율한 결과다.

“제 작품에 있어서 색채는 곧 생명과 같아요. 원하는 색채를 쓰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죠. 특히 퍼플, 핑크, 레드를 좋아하는데, 가령 바이올렛을 칠하면서 ‘나의 열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에 곧 빠져들며 행복한 충만감에 휩싸이곤 합니다. 단순히 그 색채를 칠하면서라기보다는 그 색채와 다른 색채가 면과 면으로 만나면서 의외의 조화로움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겁니다. 작가로서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세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남 작가의 말처럼 그림의 여러 역할 중에 카타르시스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에게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작업실 이사를 준비하던 2012년 한여름의 어느 날, 이사 비용을 견적내기 위해 이삿짐센터 대표가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대표는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작업실을 둘러보던 그 대표는 이젤 위의 작업 중인 작품을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훔치는가 싶더니만, 급기야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남 작가 역시 아무런 말없이 그녀가 좀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작품은 같은 해 12월 학고재화랑 전시에 출품하려고 준비 중이었던 작품이다. 여하튼 감정을 추스른 그녀는 결혼 이후 십수 년 동안 남편과 작은 이삿짐 운반 회사를 운영하며, 삶에 대한 의미나 특별한 감동 없이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작품을 보며 잊고 있던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다시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에선 더위에 지쳐 있던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행복한 미소가 한 가득이었다. 남 작가는 이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에게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인가를 되새기게 된단다.

그림은 엄청난 감성 노동의 산물이다. 주파수가 제대로 맞아야 방송도 제대로 들을 수 있듯, 그 작품의 감성선과 잘 맞닿는 감상자를 만나게 되면 또 다른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남 작가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명작을 남긴 그 옛날 대가들의 작업실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우리는 주로 친숙하게 알고 있던 화가들의 작업실을 남 작가의 상상 속 재구성을 통해 엿보게 된다. 그런 내용이 정리된 그림들이 ‘아틀리에’와 ‘서재’ 시리즈다.

흔히 서재 시리즈는 작품 ‘화가의 서재3-마네에서 몬드리안까지’처럼 화가들의 사연을 담은 책들이나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던 소재 혹은 기물들을 등장시킨다. 주로 기둥과 기둥 사이는 아름다운 아치형 라인의 벽면을 살려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또한 화면 전체엔 작가가 특히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바이올렛의 꽃잎 색깔이 주조를 이룬다. 그리고 반쯤 열린 판도라 상자에서 나온 나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시간의 베틀로 안내하게 된다. 이렇듯 남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선 소소한 것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된다.

또한 작가적 상상력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구현된 옛 화가들의 작업실이지만, 남 작가 자신의 ‘개인적 소망’도 몇몇 소재를 빌어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남 작가가 즐겨 등장시키는 소재 중 백합은 ‘회화의 진정성과 순수함’, 스노볼은 다양한 ‘여행의 추억’, 붓과 물감은 ‘화가의 자존감’, 병에 든 날개는 ‘꿈을 펼치지 못한 예술가들의 영혼이자 희망’, 해골은 ‘죽음과 숙명적인 조우 또는 유한성’, 나비 떼는 ‘현실과 이상을 이어주고 메신저’ 등으로 볼 수 있다. 남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이 기물들은 화가로서의 자아성찰을 넘어 관객과의 폭넓은 교감에 이르게 해주는 키워드인 셈이다.

2~8m 대작으로 호평
[Life& artist]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여행하는 작가 남경민
“제 그림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합니다. 마치 서양의 화가 작업실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듯, 고흐와 현재 생존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듯이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보면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선대 대가들의 화방 풍경은 저만의 상상 속에서 오히려 더욱 자유로웠지요. 그래서 보고자 하는 풍경은 거울과 캔버스의 틀을 통해, 창밖의 풍경을 통해, 가려진 커튼과 열린 문틈 사이에 그려 넣게 됩니다. 그것들은 서로 그림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는 또 다른 풍경이 됩니다.”

남 작가만큼 스토리텔링이 탄탄한 경우도 드물다. 표현 기법의 시각적 효과나 요란한 오브제의 비주얼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인내와 시간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프로 근성이 그의 경쟁력이다. 실제로 그의 남다른 의지는 화단에서 좋은 평가로 이어진다. 이미 30대에 국내 굴지의 메이저급 화랑인 갤러리현대의 전속 작가를 지냈으며, 사립미술관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사비나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도 치렀다. 그것도 2~8m에 이르는 대작들을 많이 선보였다는 점은 그의 남다른 작가적 역량을 가늠하게 되는 대목이다.

또한 대중적인 공감대를 얻게 된 대형 아트 프로젝트에도 여러 번 참여했다. 2006년 이후부터 거의 매해 국내 최대의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에 참여했고, 2010년부터는 홍콩아트페어도 수차례 출품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이화익갤러리를 통해 아부다비아트페어에 대형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유망 작가를 선정하는 것으로 이름난 송은미술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구글아트프로젝트 페인팅 작가로도 선정됐다. 이어서 미국 정부의 아트인앰버시프로그램 작가로 뽑혀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에 3년 전시되며, 해외 주요 VIP 인사들에게 작품이 소개된 것은 남경민의 작가적 위상이 매우 긍정적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작품의 가치는 작가적 역량으로 좌우된다. 아무리 완성도가 높고 훌륭한 작품이라도 그 작가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에 따라 유동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좀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남 작가의 작품처럼 오랜 시간 순수 노동력을 요하는 작품일수록 자주 개인전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작품 위주의 수십 점을 3~4년 간격으로 비중 있는 개인전과 여러 주요 기획전에서 전시한 남 작가의 경우 그 작가적 열정을 높이 살 만하다고 하겠다.
[Life& artist]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여행하는 작가 남경민
남경민 작가는…
남경민 작가는 덕성여대 예술대학 학부와 동 대학원의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2014 풍경 속에 머물다’(사비나미술관), ‘2010 풍경을 거닐다’(갤러리현대 강남), ‘2006 남경민전’(영은미술관) 등 9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6 송은미술대상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4 한국현대회화 33인전’ (서울 강동아트센터), ‘2013 house&home: 나를 찾다’(제주도립미술관), ‘코리아 투모로우’(서울 예술의전당), ‘2012 회화의 예술’(서울 학고재) 등 주목할 만한 기획전에 참여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영은미술관, 송은문화재단, 제주도립미술관, BMW 서울, 로얄&컴퍼니㈜ 등이 있다.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동국대 평생교육원 주임교수 및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