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평판’이 백만 군사보다 낫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침팬지 A는 싱싱한 블루베리 열매가 열린 나무를 발견했다. A는 당연히 이런 사실을 자신이 속한 무리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밟지 않고 몰래 블루베리를 독식하다가 걸린 침팬지는 호된 대가를 치른다.

이처럼 평판이 나쁜 침팬지는 다음 기회에 받을 음식물의 배급량이 줄어들거나 아니면 배급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 등의 응징과 보복을 당한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는 사회나 침팬지 사회에서 평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원시시대 때부터 협력과 동맹에 방해가 되는 이기주의자나 무임승차자, 혹은 사기꾼들을 구별해 내는 일은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평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의 평판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 즉 명성을 얻으면 그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고 존경을 받는다. 브랜드 파워가 그만큼 강해진다는 소리다.

‘구약 성경’의 ‘열왕기’에는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아라비아반도 시바라는 곳에 사는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하고 많은 예물을 바친 뒤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신약’에도 예수에 대한 좋은 평판을 듣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장면이 많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사람들의 모든 질병과 아픈 곳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에 대한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병을 앓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는 평판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온다. 간악한 이아고의 계략에 빠진 오셀로 장군의 부관 카시오다. 카시오는 자신이 오셀로의 부인 데스데모나와 불륜에 빠졌다고 오셀로가 오해해 자신의 평판이 나빠지고 명예가 실추되는 바람에 통탄한다.

“평판! 평판! 평판! 오, 나는 내 평판을 잃었네. 불멸의 존재이자 내 일부인 평판이 사라지니 짐승과 다를 것이 없어.”

물론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부풀려지거나 축소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평판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평판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평판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은 아마도 유비일 것이다. 유비가 한때 형주에서 형주의 실권자인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표는 같은 종씨인 유비를 무척 신뢰했다.

하지만 유표가 죽고 후계자가 된 그의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해 버리자 유비는 조조를 피해 급히 도망가는 신세가 됐다. 유비의 잠재적인 능력을 직감한 조조가 이번 기회에 유비를 잡아 후환을 없애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유비가 장비·제갈량·조자룡·서서 등을 이끌고 남쪽으로 후퇴하는데 조조의 군사를 겁낸 많은 백성들이 유비에게 넘어왔다. 잘 훈련된 군사들만 데리고 죽기 살기로 도망쳐도 모자란 판국에 가재도구들을 이고 진 수만 명의 백성들이 따라나섰다.

느린 걸음이라 하루 10리를 행군하는 형편이 됐다. 피가 마를 지경이 된 신하들이 유비를 조르기 시작했다.
“어서 가서 강릉을 지켜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전멸입니다. 따르는 백성들을 떼어놓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단호했다.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백성들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법이다. 지금 천하 백성들이 나를 따르고 있다. 내가 이들을 어찌 버리고 갈 수 있겠느냐? 모두 같이 가야 한다!”

◆집단의 결속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

감복한 백성들은 ‘유황숙은 참으로 어진 군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세 사가들도 ‘위급한 상황에서도 믿음과 의리를 지켰다’고 유비를 치켜세웠다. 조조나 손권에 비해 보잘것없는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좋은 평판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자룡이 조조 군영에 단기필마로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가 아들 아두를 구해오자 아두를 집어 던지며 유비가 한 말도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다분히 평판을 의식한 말이었다.

“이 하찮은 아이 하나 때문에 나의 수족과 같은 귀한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평판을 의식한 유비의 이런 행동은 장수의 군대에 쫓겨 사랑하는 친아들과 친조카를 잃었지만 그들을 애도하기에 앞서 죽은 자신의 호위대장 전위를 위해 대성통곡했던 조조의 행동과 같은 맥락이다.

초명문가 출신의 원소와 원술 형제에 비해 보잘것없는 환관 집안 출신이었던 조조는 유능한 인재를 그러모으기 위해서는 좋은 평판이 필요했고 이를 적극 활용했다. 인재를 구하기 위해 내린 구현령(求賢令)에도 좋은 평판을 기대하는 조조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청렴결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느니 하며 한가로운 소리나 하고 있으면 대체 어디서 인재를 구한단 말인가. 초야에 묻힌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라! 나는 그런 사람을 반드시 중용할 것이다!”

진화심리학 전문가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들, 즉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피하거나 추방하는 것이 그 집단의 결속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또한 타인이나 집단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 원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필자는 그런 행동의 이유가 어떠하든 간에 사람들이 평판을 잃을까봐 카시오처럼 두려워하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기는 하지만 평판을 얻기 위해 유비나 조조처럼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과정이 우리 이웃과 사회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간다.

‘헛된 명성’이 아니라 너와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는 그런 사회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 침팬지 A나 간악한 이아고 같은 자들만 넘쳐나서야 되겠는가.

김진국 칼럼니스트(‘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