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수수료 셈법 복잡…잘 쓰면 '만능' 못 쓰면 '무능' 통장

'과열 조짐' ISA, 체리 피킹 가이드
‘체리 피킹’은 마케팅 분야에서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일컫는다.

지난 3월 14일 일명 ‘만능통장’으로 일컬어지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됐다. 정부와 금융사들을 중심으로 한 통장에 예·적금에서부터 펀드·주가연계증권(ELS) 등 투자 상품까지 담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잘 활용하면 ‘만능’이지만 잘못 활용하면 ‘무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금융 상품이 등장하면 으레 그렇듯이 벌써부터 과열 조짐을 보이며 ISA의 함정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ISA의 약점을 피해 가고 똑똑한 혜택만 누리는 ‘체리 피킹 가이드’를 준비했다.

◆ 떠들썩한 마케팅 전쟁…아직은 프로모션 고객이 대부분

지난 3월 15일 찾아간 한 은행 창구. ISA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말하자 대뜸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답변이 날아온다.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싶다고 요구하니 손바닥만 한 종이 하나를 내민다. 가입 대상과 납입 한도, 가입 기간, 세제 혜택 등의 정보가 쓰여 있다.

좀 더 자세한 상품 안내를 요구하자 창구 직원은 채권형 펀드 등의 금융 상품 이름이 빼곡히 적힌 프린트 한 장을 눈앞에 내민다. 프린트에는 각 투자성향에 따라 수십여 개의 금융 상품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직원이 하나하나 짚어주지 않으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상품명 옆에는 신탁 보수, 판매 보수 등의 수수료가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써 있다. 고객에게 제공되지 않는 금융회사 내부용 자료로 소비자들은 이를 가져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창구 직원의 설명을 듣고 가입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상담을 받는 소비자도, 상담을 해야 하는 창구 직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과열 조짐' ISA, 체리 피킹 가이드
ISA는 하나의 계좌에서 예·적금, 상장지수펀드(ETF), 주가연계증권(ELS) 등 여러 금융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통합 계좌를 일컫는다. 1인 1계좌가 원칙으로 복수 가입이 불가능하다. 다만 어느 한 계좌에 투자한 다음 계좌 내에서 언제든지 상품 간 교체 매매가 가능하다.

가입 대상자는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이 있는 전 국민이다. 단 지난해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이 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면 가입할 수 없다. 지난 3월 14일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ISA 1호 가입 이벤트 현장을 찾은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1호 가입자가 되는 대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바로 이 조건 때문이다.

ISA의 의무 가입 기간은 5년이며 원금 및 이자 등의 중도 인출이 제한된다. 단 15~29세(청년형) 또는 총급여 5000만원 이하 근로자나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사업자(서민형),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자산 형성 지원을 신청해 지원금을 지급받은 자에 한해서는 의무 가입 기간이 3년이다.

납입 한도는 ISA 가입일이 속하는 당해 연도부터 5년간 매년 2000만원(총 1억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중복 세제 혜택을 방지하기 위해 재형저축과 소득공제 장기 펀드(소장펀드) 가입자는 2000만원 중 재형저축 및 소장펀드 납입액을 차감한 잔여 금액만 ISA에 납입할 수 있다.

2015년 세법 개정안에 따라 도입된 ISA는 ‘국민 재산 증진 프로젝트’로 불리기도 한다. 저성장·저금리 상황에서 근로 사업 소득자의 ‘재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ISA가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를 유도하면서도 ‘비과세’에 방점을 찍은 이유다.

ISA는 의무 가입 기간 동안 발생한 순소득 중 2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제공한다. 총급여 5000만원(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는 25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투자의 활성화’란 임무를 띠고 출범한 ISA는 출시 전부터 온갖 기대를 받으며 금융사들 간에 떠들썩한 마케팅 전쟁을 촉발했다. 은행마다 1인당 100명씩 할당량을 채우라는 지시가 떨어지는가 하면 실제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가입 의사만 표시해도 실적에 포함하겠다는 방침이 내려왔다는 은행도 적지 않다.

자동차와 다이아몬드까지 경품을 내걸고 소비자의 눈길을 유혹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증권사마다 3개월 단기로 최고 연 3~5% 수익률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선착순 판매하기도 했다. 이 같은 치열한 마케팅 총력 덕분에 ISA는 출시 사흘 만에 총 51만여 명의 가입자를 끌어들이며 총 2159억원의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밀어붙이기식 프로모션 덕분에 현재 ISA에 가입한 사람들 대부분은 ‘행원이거나 행원의 지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종로에 있는 한 은행의 상담 창구 직원은 “실제로 ISA 가입자들 대부분이 예금인데, 행원의 지인들이 복잡한 설명 없이 일단 가입하는 이가 많다”며 “직원들은 ELS에 올인해 수익형 상품에 들어간 돈은 다 행원들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부부간의 소득이 완전 공개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증권사 직원은 “ISA 프로모션으로 부부간의 실제 소득이 공개됐다”며 “더 이상 ‘비자금’이 들통 날 일이 없어져 차라리 속 시원하다”고 말했다.

맞벌이인 이들 부부는 서로의 소득을 공개하지 않은 채 지냈지만 증권사 직원인 남편에게 ISA 프로모션이 걸리면서 부부가 각각 1인 1계좌씩 개설한 것이다. 그 바람에 일반형과 서민형(총급여 5000만원 이하 또는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사업자), 청년형(청년 15~29세) 등으로 나눠지는 과정에서 소득수준이 공개된 것이다.

◆ 일임형, 수익률 공개되는 3개월 뒤 가입이 유리

이처럼 뜨거운 마케팅 열기와 달리 은행이나 증권사 현장 창구에 썰렁한 기운이 감도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증권사의 창구 직원은 “관심은 많은데 실제 가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며 “아직은 출시 이틀밖에 안 됐기 때문에 기존의 프로모션 고객 외에 창구에서 가입하는 고객의 수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다.

이는 ISA의 상품 구조가 워낙 다양하고 수수료가 복잡하다 보니 그에 따른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ISA는 투자 상품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판매로 인해 손실을 볼 수도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현재 ISA는 국내 13개 은행, 19개 증권사와 보험사 1개사에서 판매 중이다. ISA는 신탁형과 일임형 등 2가지가 있다.

일임형 ISA는 고객들이 모든 자산 관리 결정을 회사에 맡기는 것이고 신탁형 ISA는 가입자들이 자신의 펀드를 직접 선택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신탁형은 가입 절차도 번거롭고 소비자가 직접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당하다.

반면 초보자들은 일임형을 선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단, 이때 가입자가 맡긴 돈을 금융회사가 운용해 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운용 보수 격인 수수료(계좌 순자산의 0.1~1.0%)가 신탁형(순자산의 0~0.3%)보다 높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일임형 ISA는 증권사 13곳에서만 판매 중이다. 은행의 일임형 ISA 판매는 자산 관리 사업을 위한 관련 자격을 취득한 4월 말께 시작될 예정이다.

신탁형·일임형 ISA 모두 기본 수수료는 연 0.1% 수준이지만 신탁형 ISA 수수료를 무료로 책정한 곳도 있다. 현대증권·KDB대우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증권사들의 신탁형 운용 수수료는 연 0~0.3%, 일임형 수수료는 0.1~1.0%에 분포하고 있다. 투자 위험도가 높을수록 수수료도 높아진다.

일임형 ISA를 운용 중인 13개 증권사에 포함된 투자 상품은 모두 108개로, 대부분은 위험 중립형에 맞춘 것이다. 공격형(고위험군) 상품으로 갈수록 더 높은 수수료가 적용된다. 증권사들은 특정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임형 ISA를 운용하는 곳들은 연간 3~7% 정도의 수익을 목표로 잡고 있다.

위험 중립형 상품은 채권과 RP, 하이브리드 펀드의 비중이 높다. 이와 비교해 안정형 상품은 연간 3~4% 수익률에 맞춰 설계됐다.

일임형 ISA는 기대 수익률이 높지만 반대로 손실 가능성도 크다. 증권 업계의 경험과 노하우, 운용 능력 등이 최후의 승부처가 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일임형 ISA는 특히 당장 가입을 서두르기보다 3개월 뒤, 길게는 6개월 뒤까지 지켜보는 것이 좋다. 앞으로 3개월 후부터 각 금융사의 ISA 수익률이 매달 공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증권 업계 한 관계자는 “넓은 네트워크를 갖춘 은행과 운용에 전문성을 갖춘 증권사가 같이 있는 곳들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신탁형 ISA로 투자 상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 ‘비과세’다. 예금과 적금만으로 ISA를 이용했을 때에는 절세 효과가 크지 않다. ISA는 순소득에 기반해 과세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0.1~1.0%의 계좌 수수료를 감안한다면 크게 매력적이지 못하다.

이 때문에 ISA에 예금과 적금만으로 상품을 구성하는 것보다 펀드·파생 상품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 파생 결합 상품이 ‘효과’ 크지만 수수료도 올라가

이때 실질적으로 매매 차익이 비과세인 국내 주식형 펀드는 굳이 ISA에 담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가장 이익을 볼 수 있는 투자 상품은 ELS, 파생결합증권(DLS), ETF 같은 파생 결합 상품이다. 하지만 파생 결합 상품과 같은 고위험군의 투자 상품으로 갈수록 계좌 수수료에 더해 운용 보수 수수료 등이 더해지기 때문에 이를 잘 따져봐야 한다.
'과열 조짐' ISA, 체리 피킹 가이드
특히 ISA는 이들 상품을 각각 운용하는 것보다 ‘한 바구니’에 담았다는 점에서 절세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예금(이자)과 펀드(이자·배당·매매차익), 파생결합증권(배당소득)을 각각 투자했다고 하자. 이자 수익 50만원, 펀드 수익 마이너스 50만원, 파생결합증권 수익 350만원일 때, 과세 기준은 이자 수익과 파생결합증권 수익을 더한 400만원에 15.4%의 세금이 매겨지는 것이다.

이와 비교해 이 상품들이 ISA에 묶여 있다고 가정하면 계좌 내 통합 과세를 통해 50(이자)-50(펀드)+350(파생결합증권)을 통해 과세 기준 35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350만원 중 200만원은 비과세 혜택을 받고 초과분인 150만원에 대해 9%의 분리과세를 받을 수 있다.

ISA 투자 상품으로 해외 주식형 펀드도 관심사다. 하지만 먼저 따져볼 것이 있다. 지난 2월 해외 주식 투자 전용 펀드 비과세 특례가 통과되면서 2월 29일부터 비과세 해외 주식 투자 펀드 상품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 자금에 여유가 있는 소비자라면 두 가지 상품에 모두 가입하는 것을 권한다. 그만큼 비과세 혜택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매달 10만~30만원씩 하나의 상품에만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소비자라면 자신의 투자성향을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다. ISA와 비교해 비과세 해외 주식 투자 펀드는 납입 한도가 1인당 3000만원으로 큰 데다 해외 주식 매매차익·평가차익·환차익에 대해 10년간 비과세다.

공격적인 투자성향의 사람에게 유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5년 뒤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추구하는 성향이라면 ISA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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