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가 '만능'이 아닌 5가지 이유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 출시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최근 모습을 드러낸 후 이곳저곳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ISA가 ‘만능통장’이 아닌 ‘무능통장’이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3월 14일 금융권에서는 일명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일제히 출시했다. 이에 발맞춰 황교안 국무총리(NH농협은행 대전중앙지점), 임종룡 금융위원장(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점), 진웅섭 금융감독원장(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등이 각각 금융사 영업점을 방문해 신탁형 ISA에 가입하는 등 분위기를 띄웠다.

3월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 같은 노력 덕분인지 ISA 출시 첫 주(3월 14~18일)의 가입계좌는 65만840(3204억 원)계좌에 달했으며, 이 중 은행이 61만7000계좌로 93.8%, 증권사는 4만1000계좌로 6.2%를 차지했다. 다만 1인당 평균 가입 금액에서는 증권사가 300만 원으로 은행(32만 원)의 10배 수준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첫날 32만2990계좌(가입 금액 1095억 원) 가입 이후 급격히 가입자 수가 떨어져 15일 11만1428계좌(535억5000만 원), 16일 8만1005계좌(528억 원), 17일 7만858계좌(555억6000만 원), 18일 7만1759계좌(490억1000만 원)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첫날 32만 계좌에 이르던 그 많던 가입자는 거품이었던 걸까. 아니면 만능통장이라 믿었던 ISA에 대한 환상이 무너졌기 때문일까. 한경 머니는 ISA가 만능이 아닌 이유 5가지를 짚어봤다.

비과세 혜택 충분한가

ISA가 관심을 끈 가장 큰 이유는 세금 혜택이다. 예전에는 상품에 따라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면 ISA라는 자산관리계좌 바구니에 금융상품을 주워 담기만 하면 손익을 통합적으로 계산해 순소득 중 200만 원(총 급여 5000만 원 이하 또는 종합소득 3500만 원 이하는 250만 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이다. 또 초과분에 대해서도 9.9% 분리과세(지방세 포함)를 허용하는 것도 장점이다.

ISA의 가입 대상은 직전 연도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는 자와 농어민이다. 신규 취업자 등은 당해 연도 소득이 있는 경우에 가입이 가능하며, 연간 2000만 원(의무 가입 기간 5년을 채울 경우 1억 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소득이 있는 15~29세 가입자(청년형), 총 급여 5000만 원 이하 근로자나 종합소득 3500만 원 이하 사업자(서민형)는 의무 가입 기간이 3년이다.
만약 5000만 원 이상 연봉자(일반형)가 매달 150만 원씩 1년에 1800만 원을 투자해 5년간 총 9000만 원을 ISA에 넣어 3%(27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쳤을 때 200만 원은 비과세가 되기 때문에 기존에 이자나 배당소득에 부과되던 세금(15.4%) 30만8000원을 감면받을 수 있는 것이고, 나머지 70만 원에 대한 9.9%(6만9300원)의 세금만 분리과세로 내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세금 혜택이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수십만 원 정도의 세금 혜택을 두고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로 명명하기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더구나 중도 인출이 허용되지 않아 3~5년인 의무 가입 기간을 못 지키고 중간에 해지하게 되면 세금 혜택을 못 받는다.

세금 혜택만 놓고 보면 2017년까지 가입하도록 돼 있는 해외 주식투자 전용 펀드의 경우 1인당 3000만 원을 한도로 10년간 비과세이며, 국내 주식형 펀드는 현재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의 벤치마크 대상이었던 영국(ISA), 캐나다(TFSA), 일본(NISA) 등은 소득 조건 등 까다로운 가입 자격이 없으며, 비과세 혜택도 거의 100%에 달한다.

깡통계좌 속출? 불완전판매 어쩌나

중소기업에서 경리 업무를 맡고 있는 박 모 과장에게 어느 날 노란 서류봉투가 날아 왔다. 며칠 전에 같이 술을 먹은 거래은행 담당자가 ISA 상품가입신청서를 뭉텅이로 보내온 것이다. 서류봉투에는 은행거래신청서, 필수 개인정보 수집·이용동의서, 본인확인서, 투자자정보 확인서, 국세 증명발급 등 민원신청서, 근로소득 지급확인서 등이 들어 있었으며, 형광펜으로 서명할 공란 등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서류와 함께 보낸 메모지에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복사해 보내 달라고 적혀 있었으며, 통장비밀번호, 이용자비밀번호, 인감도 함께 요구했다.

모 시중은행에 다니는 김 모 계장은 ISA 출시 전부터 자신에게 할당된 일일 10~30건의 ISA 사전 계약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부모와 가족은 물론 거래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전 예약을 독촉했다. 하지만 은행 문이 열린 이후 상품 계약을 할 수 있는 오후 4시까지 ISA 가입자 유치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1만 원짜리 깡통계좌다. 자신의 지인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한 뒤 해당 계좌에 자신이 1만 원 씩 입금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것이다.

ISA 출시 전부터 금융권은 이미 ISA 영업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상품 출시 첫날 32만여 명에 이르는 가입자는 상당 부분 1만 원짜리 깡통계좌일 것이라는 게 은행 관계자의 귀띔.
그도 그럴 것이 첫날에 가입한 32만2990계좌의 96.7%가 은행을 통해 가입했는데 은행의 전국 지점 수가 7000여 개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점포당 45개의 계좌를 가입시킨 꼴이 된다. ISA 계약을 위해 30분 이상 처리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수치였던 것이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상품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1인당 100명씩 가입하라는 식으로 위에서 오더가 내려오니 지인의 이름만 빌려 자신의 돈으로 계좌를 만든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라며 “사실 ISA 유치 건수에 성과평가지표(KPI)를 들이대니까 금융실명제 위반 등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ISA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고지하지 않고 상품에 덜컥 가입시키거나 사실상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깡통통장이 속출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에서는 뒷짐을 지고 차후 미스터리 쇼핑과 현장 점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2월 26일 성명서를 통해 “과도한 보상을 내걸고 직원들에게 강제 할당량까지 배정하며 ISA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거는 금융 회사들의 행태는 불완전판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노조는 “ISA의 본질은 만능통장이 아니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 상품”이라며 “그럼에도 ISA를 안정적인 고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인 것처럼 포장하는 행태는 금융소비자를 기만하는 일이다”라고 성토했다.
ISA가 '만능'이 아닌 5가지 이유
불완전한 신탁형, 불안한 일임형

ISA가 출시된 이후에도 가입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은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일임형에 앞서 출시된 신탁형 ISA에 대한 낯설음 때문이다.

지난 3월 14일 일제히 출시된 ISA는 국내 13개 은행, 19개 증권사, 1개 보험사에서 상품이 나왔다. 출시 첫 주 가입자들의 대다수(99.4%)는 신탁형 ISA에 가입했다. 문제는 신탁형의 경우 투자자가 ISA 계좌에 편입되는 상품의 종목 및 수량까지 모두 스스로 지정해야 하며, 금융기관에서는 정형화된 모델포트폴리오(MP)를 제공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비전문가인 고객으로서는 답답할 뿐이다.

신탁형의 경우 수수료 측면에서는 저렴하다. 일임형이 계좌 순자산의 0.1~1.0% 수준인 데 비해 0.0~0.7% 수준인 신탁형은 관리비용 측면에서는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예·적금 외에 주식이나 채권 상품 등을 담고 싶어도 비전문가로서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번에 일부 증권사에서 내놓은 일임형 ISA의 경우 다수의 고객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했다. 통상 일임형을 다루는 금융사에서는 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형 등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춰 상품군을 달리하고 있는데 시장에서 검증되지 못한 상품군에 대해 다소 불안해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은행권에서 이르면 4월경에 일임형 ISA 상품을 내놓기 때문에 그때까지 ISA 가입을 미루고 관망하겠다는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준비 안 된 인프라, 재앙 오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ISA에 대비한 금융권의 준비 상황이 딱 그렇다. 신탁형 ISA 출시를 앞두고, 뒤늦게 은행에 투자일임형 라이선스를 내주기로 한 대목부터가 그렇다.

은행권에서는 뒤늦게 전문 인력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ISA 출시를 불과 몇 주 앞둔 2월 28일 ISA 판매를 위한 필수 자격증인 파생상품투자 권유 자문인력 특별시험에 은행원 1만 명이 몰린 것이나, 은행들이 최근까지도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에서 자산 배분 전략 모델포트폴리오를 운용해본 일임형 ISA 운용역 경력직 채용을 서두르는 모습에서는 조급함마저 엿보인다.

은행권에 따르면 투자자산을 판매, 운용관리하려면 투자자산 운용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시중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관련 전문 인력은 전체 인력의 1~2%대에 머물고 있다.

펀드 상품을 권유하기 위해서는 파생펀드·부동산펀드·증권펀드 투자상담사 3종 자격증을 보유하고 파생상품 투자상담사 자격증까지 갖춰야 하지만 은행 리테일 지점에서 일반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 가운데 이 같은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고객이 지점을 방문해 투자일임형 상품에 가입하고자 할 경우 금융사에서는 5등급 위험도 수준에 따라 10개의 모델포트폴리오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원금 손실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전문 인력의 자문이 필수적이지만 대다수 은행의 준비되지 않은 인프라는 고객들의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다.

검증 못한 수익성, 가입 시기 늦춰라

전문가들에 따르면 ISA의 절세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3~4% 이상의 수익이 확보돼야 한다. 수수료(0.1~1.0%) 등 ISA 운용 비용을 감안했을 때는 적어도 4% 이상의 수익을 내야 수수료가 비과세 혜택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3월 14일 국내 13개 은행, 19개 증권사, 1개 보험사가 ISA 상품을 출시한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안정형으로 타행 예금 상품(은행의 경우 특판 자행예금을 편입 못함)과 채권형을 중심으로 한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적극투자형으로는 ELS, 파생결합사채(ELB) 등을 상품군에 포진시켰다.

우리은행은 은행권에서 가장 많은 금융사와 예금 상품 편입 협약을 맺어 시중은행 4곳과 저축은행 5곳의 예금 상품을 고를 수 있게 했으며, 신한은행 ELS의 경우 5년 만기 ISA 편입에 맞춰 만기를 1년 6개월에서 4년 6개월까지 다양화한 것이 특징이다. NH농협은행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농·축협의 정기예탁금(1년제)을 상품군에 넣었다.

증권사에서는 19곳에서 총 108개의 일임형 모델포트폴리오를 출시했는데 성향별로는 초저위험 13개, 저위험 25개, 중위험 26개, 고위험 27개, 초고위험 17개로 균형을 맞췄다. 국내와 해외 주식의 비중이 20~30% 전후인 중위험 모델포트폴리오들이 주류를 이룬다.

원금 보장이 되는 환매조건부채권(RP,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확정금리를 보태어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과 MMF 등을 저위험군에 놓고, 여기에 더해 ELS, 글로벌 채권이나 주식, 헤지펀드 등을 담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사의 ISA 구애에도 불구하고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건 검증되지 못한 수익성 때문이다. 투자수익률, 시장 평판, 수수료, 상품 포트폴리오 구성의 적정성 등을 따져봐야 하지만 사실상 현재로서는 비교 대상이 없어 불확실한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넣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특히 상품 가입을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르면 4월경부터 시중은행도 일임형 ISA 상품을 내놓을 계획인 데다가 그 시점부터 온라인 가입 및 종목 변경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6월 14일에는 각 운용사가 수익률을 공개해야 하는 만큼 이를 참조해 ISA에 가입해도 늦지 않다는 조언이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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