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이동체 연구개발 진흥법안’ 국회 계류 중…해외는 이미 활발히 연구 진행}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지난 2월 14일 시험 운행 중이던 자율주행차가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사상자가 없는 가벼운 접촉 사고였다. 하지만 제조사(구글)가 자율주행차의 과실을 인정한 첫 사고여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탑재한 무인(無人)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와 관련한 법규와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신기술과 법제도 간의 시간적 간극은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고 해당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CONOPOLITICS] 갈 길 먼 인공지능 산업 법안
법규와 제도의 정비는 크게 법 개념 정립, 진흥법, 규제법으로 나뉜다. 개념 정립 법안으로는 2015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있다.

2014년 10월 김희정 새누리당(부산 연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자율 주행 자동차를 ‘운전자 또는 승객의 조작 없이 자동차 스스로 운행이 가능한 자동차’로 정의한다. 또한 시험·연구 목적의 임시 운행도 허가한다.

진흥법안으로는 배덕광 새누리당(부산 해운대 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무인 이동체 연구개발 진흥법안’이 있다. 배 의원은 2015년 11월 드론이나 자율 주행 자동차 등과 같은 무인 이동체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내 산업이 지니고 있는 강점을 기반으로 무인 이동체 시장을 개척해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다.

배 의원 외 9명의 국회의원들은 “기술 발전과 민간 수요의 급증으로 ‘무인·자율화’와 ‘이동체’의 특성이 결합된 자율 주행 자동차와 무인기, 수중 무인체 등 무인 이동체에 대한 신시장이 태동 중”이라면서 “정보통신 및 유인 이동체 기술 등 국내 산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기반으로 무인 이동체 시장을 개척해 선점하고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법안은 무인 이동체 연구·개발 기본 계획 및 연도별 시행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연구·개발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 장관 소속 하에 국가무인이동체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정했다.

또한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할 연구 기관을 정부가 지정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하며 미래부 장관이 전문 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역량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의 창업을 촉진하도록 명시했다.

◆다양한 융합 신기술이 적용된 무인 이동체

무인 이동체는 기존 제품에 인지·판단·제어 능력을 갖춘 지능화와 네트워크 운용 기술 등 다양한 융합 신기술을 적용한 신개념 제품이다. 대표적인 예로 드론과 자율주행차가 있다. 구글의 자율주행차처럼 일부 제품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진입해 있다. 따라서 혁신 기술과 서비스 개발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핵심 부품 및 장비 기술력 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인 이동체 연구개발 진흥법안’은 현재 국회 소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채 폐기될 전망이다.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19대 국회의원들이 3월 31일부터 본격적인 선거 활동 기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 부처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발목을 잡았다. 배덕광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상 이번 국회에선 통과가 어렵게 됐다”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부처 간 알력 싸움”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발의 법안을) 산업 관점에서 봐 산자부 소관이라고 하는 반면 국토교통부에선 항공법 적용을 받아야 하므로 국토부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또 미래부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관련이 있으므로 미래부 법안이라고 우기는 등 부처 간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진흥법 못지않게 중요한 제도적 규제

업계 전문가들은 산업 진흥법 못지않게 법제도적 규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사람이 아닌 사물로 리스크의 책임 주체가 이동함에 따라 다양한 법 규제 이슈가 파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율주행 자동차·드론·로봇 등 지능 정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에 대한 각국의 정책과 글로벌 ICT 기업의 투자와 연구·개발 등 국가 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드론 해킹 사고, 자율 주행 자동차 법적용 논란 등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 확산에 따른 인간 권리 침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윤리적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 법 제도적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의 등장은 스스로의 판단 하에 움직이는 새로운 개체 또는 주체의 출현을 의미한다”면서 “이러한 로봇이 타인의 생명, 신체 및 재산권 등을 침해했을 때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지 여부를 규범적 차원에서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환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자율주행차는 교통사고 처리 관련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제조사의 책임 강화, 교통 안전 체계 개선, 관련 행정청의 역할 변화 등 수많은 사회적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며 “이러한 변화가 안고 있는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하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많은 연구와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만 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공지능과 로봇을 활용하는 경제·산업정책 연구를 적극 추진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9월 유럽연합(EU)이 내놓은 ‘로보틱스 규제 가이드라인(Guidelines on Regulating Robotics)’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을 포괄하는 로봇 윤리에 관해 논의해 온 EU는 2년에 걸쳐 20억원 정도를 투자해 ‘로봇법(RoboLaw)’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 결과 로봇 규제 가이드라인을 도출해 낸 것이다.

자율 주행차, 수술 로봇, 로봇 인공기관 등 연구 대상의 윤리적·법률적 분석을 통해 규제 정책의 근거를 마련했다. EU는 이 가이드라인을 향후 법적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성하는 데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