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일 때 사자” 올 들어 3389억원 몰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미운 오리가 백조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2015년까지 금·원유 등의 원자재 가격이 단기간에 폭락하며 원자재 투자자들 역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펀드 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3월 28일을 기준으로 국내 52개 원자재 펀드의 5년간 수익률은 마이너스 54.12%다.

원자재 관련 주식은 5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 59.78%에 달한다. 2011년 원자재 가격이 한창 고점일 때 투자를 시작해 저점인 지금에 이르렀다면 그야말로 ‘반 토막’도 건지지 못한 셈이다.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던 원자재가 올 들어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대체 투자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이 소폭 반등세로 돌아선 것도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원자재 가격이 바닥에 다다랐다는 의견이 힘을 받으면서 지금이 바로 ‘저가 매수’의 기회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마음고생 끝’ 금·원자재 펀드만 수익률 ‘두자릿수’
◆블랙록월드골드, 연초 이후 수익률 32.30%

최근 원자재 가격 ‘바닥론’이 힘을 얻으면서 원자재 펀드에 다시금 돈이 흘러들고 있다. 펀드 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3월 28일 기준으로 올 들어 국내 52개 원자재 펀드에 유입된 금액은 3389억원에 달한다. 현재까지 이들 원자재 펀드의 설정액은 2조1545억원이다.

같은 기간 국내 천연자원 펀드 32개에 유입된 금액은 4431억원, 설정액은 1조7359억원 규모다. 금 펀드 11개 설정액 2218억원과 원자재(주식) 펀드 20개 6491억원, 농산물 펀드 10개 2054억원을 더하면 국내 투자자들이 원자재 관련 테마 펀드에 투자한 금액만 4조원대를 넘어선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 1년 사이 이들 펀드에 유입된 금액만 7780억원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원자재 가격의 폭락으로 마이너스 50%에 육박하던 수익률도 올 들어서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원자재 펀드의 수익률이 5.26%, 천연자원 펀드 1.17%로 나타났다. 특히 금 펀드는 19.67%, 원자재(주식) 펀드도 11.17%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격 흐름을 이어 가고 있는 농산물 펀드는 올 들어 수익률이 마이너스 2.1%에 그쳤다. 특히 전체 펀드 중에서도 연초 이후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금 펀드와 원자재(주식) 펀드뿐이다.

개별 상품 중에서 올 들어 가장 많은 투자금이 유입된 원자재 펀드는 삼성자산운용의 ‘삼성WTI원유특별자산투자신탁’으로 788억원이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원유 가격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파생 상품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다.

이어 블랙록자산운용의 ‘블랙록월드에너지증권자투자신탁’과 JP모건자산운용의 ‘JP모건천연자원증권자투자신탁’이 각각 184억원, 15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최근 들어 바닥을 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며 원유나 천연자원 등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별 상품의 수익률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블랙록월드골드증권자투자신탁’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32.30%, ‘IBK골드마이닝증권자투자신탁’ 29.60%, ‘신한BNPP골드증권투자신탁 1’ 31.90% 등 수익률 상위권에 포진해 있는 원자재 펀드들 대부분이 금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이처럼 원자재 관련 펀드의 성적이 좋아지면서 최근에는 원자재 관련 투자를 확대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월 23일 KDB대우증권 글로벌투자전략부는 중·장기 자산 투자의 우선순위를 ‘원자재>채권>주식>리츠’순으로 제시했다.

이승우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시장에 대한 단기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수 전략이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지나친 낙관은 금물

하지만 원자재 투자에서는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황병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변동성이 큰 투자 상품인 만큼 원금 손실의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며 “원자재 투자 비율을 지나치게 높게 가져가는 것보다 주식·채권 등과 함께 자산 배분을 위한 투자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기본적으로 원자재와 같은 대체 투자 상품은 고위험군에 속한다. 만기가 길고 유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원자재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낯선 만큼 투자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것도 한계점으로 꼽힌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등락 폭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변동성이 매우 큰 상품으로 꼽힌다.

실제로 원자재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뼈아픈’ 경험을 적지 않게 안겨 준 투자 상품 중 하나다. 2007~2008년 투자 전략의 대부분은 유가 상승 시나리오에 기반 한 것이었다.

유가가 배럴당 120~150달러에서 움직일 때, 150달러를 돌파했을 때를 대비해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주요 자산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 고민했다. 이른바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국제 유가에 투자 열기 또한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가 찾아온 2008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45달러(7월)에서 30달러(12월)까지 미끄러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폭락에 수많은 투자자들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2013년에도 원자재 펀드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당시 원자재 투자의 인기를 이끌었던 주인공은 금이었다. 당시는 글로벌 경기의 부진으로 국제 금값은 온스당 최저 1179.40달러에서 최고 1697.80까지 43.9% 폭을 오갔다. 하지만 국제 금값은 예상과 달리 더 떨어졌다.

당시 금을 포함한 국내 원자재 펀드 88개 가운데 60개 이상의 상품에서 원금 손실을 봤다.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원자재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데는 저금리의 영향이 크다.

주식·채권과 같은 전통적인 투자 상품들의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대체 투자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국내를 벗어나 해외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원자재 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의 투자 대안으로 관심

주식·채권 등과의 자산을 배분하는 전략에서도 원자재는 유리할 수 있다. 자산 배분의 핵심은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 관련성이 높은 투자 상품에 자산을 배분한다면 그만큼 같은 위험 요소에 노출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주식·채권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경제와 경기 변화라면 원자재는 물가와 달러가 더 중요한 가격 결정 요인이다. 가격 결정 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상관관계가 낮고 주식·채권 등과 함께 투자 자산을 배분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물론 원자재가 경기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식과 비교해 경기에 덜 민감한 품목이 있다.

예를 들어 원유와 산업 금속은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군에 포함될 수 있지만 농산물은 경기 둔감 자산에 속한다. 금과 같은 귀금속은 안전 자산에 가깝다. 위험 자산인 주식과 안전 자산인 국채를 기초로 원자재 자산을 효과적으로 편입한다면 효율성 높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마음고생 끝’ 금·원자재 펀드만 수익률 ‘두자릿수’
vivajh@hankyung.com

[기사 인덱스]
-원자재 슈퍼사이클 오나
-'원자재 바닥론' 새로운 슈퍼사이클의 초입인가
-4번의 원자재 슈퍼사이클, 글로벌 경기와 흐름 일치
-'마음 고생 끝' 금, 워자재 펀드만 수익률 '두 자릿수'
-원자재 투자 ‘기업’보다 ‘지수’에 관심을
-'공급과잉 진운지' 중국, 구조조정 '고삐'
-구리 값, 올 들어 상승 반전
-'옐런 효과' 하루 새 1.3%올라..."안전 자산 잡아라"
-유가 58% '반등'...40달러대 안착 '주목'
-곡물가 약세...조용히 지나간 '슈퍼 엘니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