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인식이 윤리 문제의 본질}
{인간의 도덕적 성찰을 키우는 계기}
[인문학] 피할 수 없는 ‘윤리적 갈등’
[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누구나 윤리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인지 부조화에 빠지는 것도 그런 부담을 지워내고 싶은 본능적 방어기제 때문이다. 뜻밖에도 윤리적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일상의 도덕적 판단에서야 별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막상 그 속살을 까보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윤리의 문제는 어떠한 결론이나 큰 흐름의 추론으로 확정되는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마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련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껏 고민하고 이론을 쫓아왔는데 고민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고민과 갈등을 더 키우기만 한 꼴이 아니고 뭐냐는 불만일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윤리적 고민 따위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외면한다.

윤리의 문제는 서로 대립되는 논리가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분야에서는 이렇게 대립되면 적당한 타협이나 절충을 시도할 수 있지만 윤리에서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갈등만 더 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갈등을 인식하는 것이 윤리 문제의 본질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윤리적 갈등

우리가 지금까지 윤리적이라거나 도덕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자신이 주체가 돼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성찰과 판단에 의한 것들보다 그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배우고 익히며 따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주로 가정 같은 혈연적 공동체나 학교처럼 비교적 단순한 관계망 속에서 이뤄졌던 것들이다. 하지만 복잡한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성찰하고 판단하면서 행동해야 하는 사회에서의 행위와 그에 대한 고민도 갈등도 없다면 결코 어떠한 능동적이고 주체적 선택이나 행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고민은 그저 우리를 곤혹스럽게만 만드는 갈등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어떤 행위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지 판단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어야 어떤 행위에 대한 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비도 마련할 수 있다.

도덕적 판단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보편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히 자기 자신만의 선택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행동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권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안락사에 대해 법적으로 이러저러한 판단을 내려주었으면 싶기도 할 것이다. 그 어떤 선택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이 문제가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통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하게 되고 도덕적·인격적으로 성숙해지며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이 살아가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과연 어떤 분야가 우리를 그토록 진지하게 고뇌하고 성찰하게 해줄 수 있을까. 윤리적인 문제의식과 갈등의 고통은 무의미한 논쟁이 아니다. 가장 일상적이면서 근원적인 문제를 던지는 화두다.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앞으로 우리는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윤리적 갈등의 문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복제나 뇌사 등과 같이 이전의 사례가 없던 혹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단순히 사법부나 종교적 판단에만 기대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게 아니다. 앞으로 이런 고민과 갈등을 만나게 되면 물러서거나 피하지 말고 삶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여기면 생각이 조금은 변할 것이다.

도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인격적 주체로 살아가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의무를 따르거나 규범의 명령을 준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적법하지만 비인간적인 행위도 있다.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갈등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의무여서 혹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뭔가 미흡하고 개운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적으로 살아가고 행동한다는 것은 때로는 자신의 욕망에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단순히 욕망에 따라 살 수만은 없다. 인간의 인격성과 존엄성은 그 욕망을 스스로 이겨내고 보다 나은 가치로 자신을 상승시킬 수 있는 의지와 실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그저 온순하게 주어진 의무를 따르고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늘 깨어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도덕적 삶인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이 어떠한 어떤 도덕적 이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도덕적 선택 앞에서 고민과 갈등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외면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성찰하고 논의함으로써 보다 나은 자아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윤리적 혹은 도덕적 고민과 갈등은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삶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법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적법성(legality)보다 상위의 가치는 도덕성(morality)이다. 아무리 적법이라고 하더라도 도덕적이지 않으면 삶은 무가치하다. 최소한 그런 자기 성찰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도덕성 위에 있는 가치가 바로 인격(personality)과 인본(humanity)이다. 이들 가치는 따로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 셋이 하나의 인격과 사회 안에서 조화될 때 비로소 우리가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것이고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한 조화의 삶은 윤리적 고민과 갈등을 통해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과 일치의 삶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윤리적 고민과 갈등은 회피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누려야 할 가치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이 시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