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소식이다. 한국과 멕시코는 국내총생산(GDP) 규모(한국 11위, 멕시코 13위)가 비슷하다는 점 외에도 통상 측면에서 FTA를 적극 추진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지금까지 한국은 52개국과 15건의 FTA를 체결했고 멕시코는 45개국과 15건의 FTA를 체결했다).
또한 한국은 포스트 차이나로 부상한 멕시코를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고자 하고 멕시코는 한국을 동북아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 싶어 한다는 측면에서 전략적 이해관계가 부합한다. (일러스트 김호식)
◆ 8년 만에 다시 논의된 한·멕시코 FTA
하지만 2000년에 시작됐던 양국 간 경제협력 논의는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를 목표로 진행되다가 2008년 6월 중단됐다. 그 후 8년 만에 협의 재개에 합의한 것이다.
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양측 모두 자국의 관심 사항만 관철시키고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에 대해서는 전혀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FTA가 대외 협상이면서 동시에 대내 협상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 대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멕시코가 요구한 농산물 관세 철폐를 수용하기 어려웠고 멕시코는 한국이 요구한 자동차·철강·전자 등의 관세 인하를 수용하기 어려웠다. 또한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피해 산업을 중심으로 FTA 반대 여론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한국과의 FTA를 추진할 의지가 없었다.
지금은 어떨까. 한국은 물론이고 멕시코도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인데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교역량이 감소하면서 양국 모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국 간 FTA 체결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가 더 급할까. 멕시코는 TPP의 원년 멤버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선(先)TPP, 후(後)FTA’ 방침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발 주자로서 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TPP 12개 참여국 가운데 한국과 양자 FTA를 체결하지 않은 두 국가(일본과 멕시코) 중 하나가 멕시코라는 점에서 FTA가 우선적으로 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양측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협상 레버리지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멕시코의 요구 사항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정상회담의 결과가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 없는 협상 재개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이미 경험한 사실이다.
한국의 협상 준비는 결국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멕시코가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를 상당 부분 수용할 대내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둘째, TPP와 연계해 무역과 투자를 포괄하는 ‘윈-윈’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 세계 경기 둔화, 유효수요 부족이 원인
두 가지 모두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2013년 정부가 발표한 ‘신통상 로드맵’에서는 동아시아 지역 경제 통합 논의의 핵심 축(linchpin) 역할 수행, 산업·자원·에너지 협력 등과의 연계를 통한 신흥국, 자원 부국과의 상생형 FTA 추진이라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통상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통상교섭-이행-대책 일원화를 추진하고 민·관 협업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상당히 바람직한 내용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농업을 포함한 국내 산업의 피해 최소화가 예전보다 더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능동적인 시장 개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20년 넘게 지금까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장 개방에 대비한 구조조정과 대책을 마련해 왔지만 결과는 신통하지 않다. 피해 최소화가 아니라 혜택 극대화를 준비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
FTA 체결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 경기가 유효수요 부족으로 인해 추세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FTA의 적극적 활용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TPP를 필두로 메가 FTA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축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둥 중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보호주의 경향이 강화된다. 하지만 보호주의 강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글로벌화를 둔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화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FTA가 일차적으로는 교역의 확대를 의도한 것이지만 단순히 교역의 확대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지식재산권을 포함해 기술 규정, 서비스 등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산해 나가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멕시코와의 FTA 협상 준비가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