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완화’도 ‘경제민주화’도 해답 아니다
(일러스트 김호식)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20대 총선 기간 중 정치권이 내놓은 한국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은 소위 통화량의 양적 완화와 경제민주화로 요약된다.

여당은 이미 선진국 일부에서 시행해 온 양적 완화라는 거의 무제한적 통화 공급 확대 계획을 내놓았고 야당은 그동안 이미 시행해 온 경제 민주화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야당의 경제민주화는 이미 현 정부가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파기한 정책이다. 이 정책은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으로 정착돼 대기업을 단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작기 때문에 무조건 지원함으로써 그동안 한국 기업의 성장 유인을 차단하고 저성장·양극화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었다.

균형이니 평등이니 민주니 하는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만 경제민주화는 경제를 평등하게 운영하겠다는 사회주의적 이념에 다름 아니다. 저성장·양극화의 정책적 원인을 찾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정부의 재분배와 규제로 평등한 결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사회주의식 ‘명령 경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경제는 명령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는 기업의 성장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경제를 정체시키는 근본 원인이다. 다음으로 여당이 하겠다는 통화량의 무제한 양적 완화 또한 선진국들이 하니 나도 따라 해보겠다는 짧은 생각에 다름 아니다.

이를 시행했던 미국은 기업의 투자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워 상대적으로 총공급 체계에 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직접 금융시장이 또한 가장 발달해 양적 완화 정책의 효과가 원활하게 파급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위적 총수요 확대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30여 년간 경제민주화와 같은 이념적 규제로 기업 투자 활동을 억제해 총투자율의 10% 포인트 이상이 해외로 유출돼 국내 총공급에 심대한 장애가 있는 경제다. 고속도로가 잘 정비된 경제에는 기름값을 낮춰 주면 금방 통행 차량이 늘어나지만 고속도로에 장애물이 가득한 경제는 아무리 기름값을 낮춰도 통행 차량이 늘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먼저 고속도로상의 장애 요인인 기업 활동 규제를 과감히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유럽 선진국들도 지난 50여 년간 경제민주화와 유사한 사회민주주의를 한다고 상대적으로 기업 활동에 불리한 재분배 정책이나 조세정책, 노조 우위 정책 등을 지속해 온 결과 저성장·양극화에 직면했고 따라서 양적 완화나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해도 그 효과가 가시적이지 못한 것이다.

물론 미국도 유럽 선진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그동안 수정자본주의 이념에 따라 유사한 정책들을 시행했기 때문에 양적 완화 정책만으로는 항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미 반기업적 제도로 기업의 성장 유인이 약화된 경제는 거시적인 통화 공급 확대만으로 그 성장 잠재력이 살아나기 어려운 것이다.

기업들이 소위 경제민주화니, 경제사회·지역 균형 발전이니, 노사 동등의 경영 민주화니 하는 각종의 이념적 규제로 투자 활동에 제약을 받아 성장의 유인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를 교정할 노력 없이 야당처럼 오히려 지금의 경제문제의 원인인 경제민주화를 더 강력하게 추진한다거나 여당처럼 돈이나 풀어 해결하겠다는 것은 결코 옳은 해법이 아니다.

기업의 투자 의욕이 사라지면 일자리가 늘지 않아 소득이 늘지 않고 양극화가 생기는 법이며 이에 따라 총수요가 정체돼 기업 투자가 더 늘지 않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모든 악순환이 바로 총공급을 정체시키는 기업 투자 활동에 대한 규제에서부터 시작되는데도 오히려 기업 투자를 막는 정책을 더 하겠다는 경제민주화나 총수요를 더 늘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양적 완화 모두 대증요법의 단견으로 보인다.

필자는 자본주의경제는 소위 보이지 않은 손이 이끄는 시장경제라기보다 현대식 주식회사 기업이라는 보이는 손이 이끄는 경제라고 주장한다. 농경사회 시장경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진화는 보통 생각하듯이 시장경제 때문이 아니라 농경사회 대장간 기업에서 창발한 주식회사라는 현대식 기업에 의해 주도됐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속의 우리 모두는 농토를 떠나 주식회사 기업에 생계를 의탁하고 살아가고 있고 선진국이라는 나라는 모두 농업이 대체로 국민총생산의 5% 미만인 나라를 의미하게 됐다. 아무리 선진 경제라고 하더라도 기업을 제거하면 모두 농경사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식 기업을 국유화했던 사회주의 체제는 결국 모두 농경사회로 역주행하면서 몰락했다.

바라건대 총선 후 여야가 힘을 모아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 정체를 가져온 ‘크기·지역·분야’에 따른 기업 투자 활동 규제를 일거에 제거하고 노사 관계를 정상화해 한국을 기업 투자와 일자리 천국으로 변신시켜 한국 경제에 재도약의 초석을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동안 소위 대기업에 대한 문어발 투자 규제가 결국 서로간의 경쟁을 차단해 대기업들의 국내 독점력을 보호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이라고 문어발 투자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끼리 서로의 분야나 새로운 분야에 서로 자유롭게 진출해 경쟁하도록 투자 활동을 자유화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획일적으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성과가 좋은 기업이 더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유도함으로써 기존 대기업들에 새로운 경쟁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 대기업 부문이나 중소기업 부문이나 성장 유인이 극대화되고 국내 기업들 간의 경쟁이 촉진돼야 기업 부문에 새로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이 창출되고 저성장, 일자리, 중산층 복원, 양극화 문제는 물론 그동안 논란이 돼온 대기업의 국내 독점, 골목상권 진출 문제 등도 순리에 따라 풀리게 될 것이다.
‘양적 완화’도 ‘경제민주화’도 해답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