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에 뒤늦게 자신의 에고를 긍정하는 영화 ‘해어화’ 속 소율}
[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내 안의 부끄러운 ‘그림자’와 화해하라
(일러스트 김호식)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박흥식 감독의 영화 ‘해어화’는 언뜻 보기에는 전형적인 치정극이다. 때는 1944년 광복 직전이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허랑방탕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자처하는 작곡가 최치림(유연석 분). 대성권번이라는 기생 양성학교 교장의 딸로서 역시 기생으로 키워진 정소율(한효주 분). 인력거를 모는 노름꾼 아비의 빚 때문에 어린 나이에 억지로 권번에 맡겨져 기생으로 자란 서연희(천우희 분).

영화는 삼각관계에 있는 3남녀의 시기와 질투, 사랑과 배신을 그린다.

◆사랑과 노래를 한꺼번에 잃은 여인

최치림과 연인 관계인 정소율은 판소리와는 또 다른 계열의 조선 정통 클래식 장르인 정가(正歌)에 능통한 예인이다. 하지만 최치림은 대중음악인 유행가를 작곡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치림은 소율의 절친인 연희가 유행가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이 작사·작곡한 ‘조선의 마음’이라는 곡을 사랑하는 연인 소율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연희에게 준다. 소율을 향한 마음도 서서히 연희에게로 옮겨 간다.

사랑과 노래를 한꺼번에 잃은 여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모든 것을 깨끗이 단념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둘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적에게 복수하고 옛사랑을 되찾아 오는 길이 있다.

소율은 후자를 택한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실력자인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히라타 기요시(박성웅 분)의 첩이 된다.

소율은 히라타를 조종해 치림이 연희에게 곡을 주어 만든 레코드판 ‘조선의 마음’을 총독부의 심사 과정에서 ‘불가(不可)’ 판정을 내리게 만든다. 유행가 판의 신데렐라 연희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울분에 찬 치림은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우발적으로 일본인 헌병을 죽이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다. 치림과 연희 두 남녀의 운명은 이제 소율의 손바닥 안에 있다. 소율은 ‘미치도록 노래가 부르고 싶다!’는 연희를 ‘총독부 특별 촉탁가수’가 되게 해준다.

문제는 이 특별 촉탁가수가 그냥 가수가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였다는 점이다. 연희는 자신의 몸을 강제로 범하려는 일본 군인을 죽이고 대성권번으로 숨어든다. 연희는 이 모든 것이 소율의 짓이라는 것을 알고 분개해 권번을 나서다가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숨진다.

소율은 감옥에 있는 치림에게도 ‘감옥에서 빼내어 줄 터이니 나를 위해 노래를 작곡해 주세요!’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연희의 죽음을 포함한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치림은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는 사랑도 빼앗기고 노래도 빼앗긴 소율이라는 한 여성의 비극적인 일생을 그린 신파조의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영화를 소율이라는 한 사람의 ‘내적인 심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모든 심리 치료는 자신과의 화해

정통 가곡인 정가를 좋아하고 또 잘 부르는 소율은 우리 마음속의 의식적 영역인 자아(ego)를 상징한다. 자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기초다. 비록 그 자체로는 많이 부족해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고 시대 상황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개성과 고유성을 살려 온전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리는 에고를 따뜻한 마음으로 긍정하고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자신의 에고를 긍정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가와 상반되게 흘러(流) 가는(行) 노래(歌)인 유행가를 부르는 서연희는 우리 마음속 내면에서 다소 부족해 남에게 인정 받지 못하거나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측면을 상징한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를 그림자(shadow)라고 한다. 그런데 그림자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여 친구처럼 지내야 할 존재이지 자기 마음속의 적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최치림은 정소율로 상징되는 우리 마음속의 에고가 서연희로 상징되는 그림자와 화해하고 그림자와 친구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또 다른 심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정소율은 자신이 정가를 좋아하고 정가에 적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굳이 이를 거부하고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유행가에 목숨을 걸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서연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나중에는 자신이 죽은 서연희라고 주장하며 무대에서 연희의 노래를 부르기까지 한다. 자신의 에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자신의 그림자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적으로 돌리는가 하면 그림자가 자기 자신인 양 행세한 것이다.

융 심리학자인 안셀름 그륀에 따르면 모든 심리 치료의 목적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삶의 역사와 자신의 특성을 긍정하고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과 화해하는 것’이다.

다행히 정소율은 서연희와 최치림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포함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70대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에고를 긍정하고 그림자와도 화해한다. 방송국 PD가 자신의 노래를 ‘지존 중의 지존’이라고 극찬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말이다.

참으로 소중한 나. 자기 자신을 잘 대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마침내 정소율은 깨닫는다. “그렇게 좋은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정소율의 마지막 대사는 ‘자기 자신을 잘 대하라!’라고 그녀가 우리에게 던지는 피맺힌 절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