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트레이딩 기능 뛰어넘어, 금융 위기 대응력은 검증 안 돼}
머신 러닝은 이름 그대로 컴퓨터에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기술이다. 사람은 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머신 러닝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에 데이터를 제공해 성능을 더욱 향상시키는 것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알파고는 머신 러닝의 총아다. 3000만 가지 이상의 수를 입력받은 후 100만 번 이상의 자가 대국과 외부 대국을 진행해 스스로의 성능을 개선했다. 프로 4~5단 수준에 불과했던 기력을 5개월 만에 9단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수많은 경제지표들을 컴퓨터에 학습시켜 이를 기반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활용한다.
▷매크로 지표와 주가지수의 차이를 활용한 전략 ▷역사적 가격 지표를 활용한 투자 가격 변화 패턴의 분석 ▷경제지표에 기반 한 머신 러닝으로 장기 방향성 예측 ▷주요 경제지표와 모멘텀을 활용한 선진 및 신흥 시장의 자산 가격 괴리 분석 ▷시장의 변동성을 활용한 투자 전략 ▷각 지표 및 지수 간의 상관관계 분석 등이 그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 같은 ‘머신 러닝’을 기반으로 서비스 업체마다 투자 전략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고유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이런 알고리즘은 각 업체의 포트폴리오 성과를 결정짓는 주요 경쟁력 요소다.
물론 구체적으로 자사의 알고리즘을 이를 외부에 공개하는 업체는 없다. 포트폴리오 구성 능력이 가장 큰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 확인하기는 힘들다.
손위창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금융시장 환경에 대한 위험 인식 수준, 자산별 기대 수익률 산출, 자산 배분 엔진 등이 달라 똑같은 조건을 넣어도 자산 배분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면서 “결국 성과에 대한 충분한 기록이 쌓인 뒤에야 업체별 알고리즘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운용의 알고리즘은 기업별로 다르지만 로보어드바이저의 투자 프로세스는 대부분이 비슷하다. 쉽게 3가지 단계로 보면 된다. 설문 방식을 통해 먼저 고객 성향과 목표 수익률을 진단한다. 이를 토대로 로보어드바이저에 의해 포트폴리오 구성과 운용 지시가 이뤄진다. 이후 포트폴리오에 대한 모니터링과 리밸런싱이 진행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핵심은 포트폴리오의 구성이다. 포트폴리오의 구성은 주로 상장지수펀드(ETF)가 활용된다. 일례로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베터먼트는 1654개의 대상 ETF 중 30개의 ETF를 골라 13개의 자산군을 구성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방식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대부분이 비슷한 포트폴리오 배분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현대증권이 대표적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인 웰스프런트의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로보어드바이저의 자산 배분 프로세스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타났다.
첫째, 자산군을 선정한다.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한 판단을 통해 주식·채권·대체 투자 등과 같이 투자할 만한 자산을 확정한다. 또 이 단계에서 대체 투자 내에서도 원자재·리츠·인프라 등 유망 자산을 선택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각 자산별로 적절한 ETF를 선정한다. 뱅가드와 같이 자사의 ETF를 가지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는 대체로 자사의 ETF를 선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일반적으로는 ETF를 선정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내놓는다.
2배·3배 ETF 등 레버리지의 유무, 거래 대금의 수준, 트레킹 에러(추적 오차)의 수준, 보수 한도의 수준 등에 대한 필터링을 거쳐 ETF를 선정하게 된다.
◆단순 매매 넘어 자산 관리까지
다음으론 설문을 통해 설정된 고객의 성향을 분석해 절적한 목표 수익률을 도출한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각 ETF를 조합해 자산 배분을 실행한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주기적인 리밸런싱을 통해 성과 향상을 꾀한다.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기존의 ‘시스템 트레이딩’과의 차별성이다. 현재까지의 로보어드바이저는 현재 증권사 등에서 활용하고 있는 ‘시스템 트레이딩’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시스템 트레이딩은 사람의 자의적 판단이나 편견을 배제하고 일정한 매매 규칙을 사용해 일관성 있게 매매를 수행함으로써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매매 방법이다.
쉽게 말해 특정 종목의 매수 가격과 매도 가격 등 다양한 매매 조건을 프로그래밍화해 컴퓨터에 입력한 뒤 매입가를 기준으로 일정 폭 하락하면 매수하고 상승하면 매도한다. 매매 결정은 컴퓨터가 할 수도 있고 투자자가 할 수도 있다.
사전에 투자자가 특정 조건을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컴퓨터가 그에 따라 매매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로보어드바이저와 시스템 트레이딩은 일부 닮았다. 이에 따라 로보어드바이저가 주요 투자 대상인 ETF의 투자 비율을 조절하는 수준에서만 활용된다면 기존 시스템 트레이딩과 큰 차별성이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시스템 트레이딩과 목적·내용 면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단순 매매 결정에 그치지 않고 무궁무진한 퀀트 베이스를 바탕으로 투자자에게 맞는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한다는 점에서 시스템 트레이딩보다 진일보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로보어드바이저와 시스템 트레이딩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며 “시스템 트레이딩이 정해진 법칙에 따라 매매를 결정하는 데 그친다면 로보어드바이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투자자들의 자산을 관리해 주는 자산 관리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의와 명칭은 운용 업체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인간의 개입을 최소로 하며 온라인에서 포트폴리오 관리를 제공하는 재무 상담’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해석하면 된다”며 “고객 투자성향에 따른 포트폴리오 구축과 투자, 관리 등을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자동으로 수행해 주는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로드어드바이저를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미국 온라인 특화 자산 관리 회사들의 유형은 크게 운용형·자문형·하이브리드형으로 나뉜다. 운용형은 알고리즘 기반 소프트웨어를 통해 최적 자산 배분 후 이에 맞춰 고객 자산을 직접 운용한다. 여기에 리밸런싱, 최적 세제 전략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자문형은 알고리즘 기반 소프트웨어를 통해 고객 포트폴리오 모니터와 정기적 투자 자문만 제공하고 하이브리드형은 실제 투자 자문가의 판단으로 자문·운용 업무를 수행하되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다.
전문가들은 부침은 있지만 로보어드바이저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손위창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 세계적 저성장이다. 투자 자산의 목표 수익률 역시 하향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고수익보다 ‘시중금리+α’를 추구하는 투자 수요가 커지면서 전략적 자산 배분을 통한 투자 전략이 자산 관리 시장의 대세가 되고 있다.
둘째, 핀테크의 발전과 스타트업의 진입이다. 최근 핀테크의 발전에 따른 금융 채널이 다양화되고 있다. 또한 빅 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 운용 전략이 성장함에 따라 금융 서비스 분야에도 스타트업의 진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즉 데이터에 대한 분석 능력만 있다면 이 분야에 진입할 수 있어 대규모 투자 금액이 필요한 제조업 등과 비즈니스에 대비해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낮은 수수료다. 기존 자산 관리 서비스는 연 1%가 넘는 운용 수수료를 지불하는 반면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보다 훨씬 낮은 0.5%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자산 관리 100% 대체는 어려워”
물론 로보어드바이저는 아직 한계도 가지고 있다. 우선 로보어드바이저는 대부분이 2008년 이후 등장했다. 이 때문에 다양한 금융 위기 상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낙관적인 전망만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1997년에 한국에서 발생한 외환 위기 사태나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와 같이 불안정적이고 격변하는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 또 사람과 달리 중동 위기 상황이나 북한의 도발과 같이 정치적 및 지정학적 이슈에 반응해 유동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이와 함께 금융사마다 사용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프로그램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정보가 쌓이기 전까지는 같은 고객이라도 증권사마다 다른 포트폴리오를 제공받게 돼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또한 고액 자산가는 비교적 투자하는 상품 종류도 다양하고 이에 따른 종합적인 자산 관리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현 로보어드바이저는 ETF에 국한된 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처럼 투자 전문가와의 상호 소통이 불가하기 때문에 고객이 주어진 포트폴리오에 따라 반응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주어진 데이터와 시장 상황에 기반을 둬 정보를 제공받는 데 그치는 수준을 넘어 점차 투자자가 본인의 자산 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박지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자산 관리 서비스를 100%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향후 로보어드바이저는 기술력과 사람의 지능이 혼합된 사이보그 형태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로 찰스슈왑·뱅가드 등 전통 투자 자문사들은 기존 투자 자문 서비스에 로보어드바이저를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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