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도우미가 청소는 물론 연애 상담도
'프리미엄 가치' 내건 특화형 인기

일본 '셰어 하우스'의 진화…'엄마' 손길까지 덤으로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최근 일본에서는 셰어 하우스가 유행이다. 성공 사례가 부쩍 많아진 덕분이다.

특정 테마에 주목한 ‘특화형 셰어 하우스’가 특히 돋보인다. 1인 가구에게 가족 효용을 제공해 주는 셰어 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애초 연령·성별 등을 한정, 입주 장벽이 높았지만 지금은 옅어졌다. 성별·취미·국적조차 무관하다.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공통적인 것은 가족 변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 배경을 가진 독신 증가로 시장 전망이 밝다는 점이다. 대체적인 진화 방향은 ‘저가→가치’로의 이동이다. 단순한 저가 대신 사람과의 관계와 환경 의식이 높은 입주 희망자가 늘었다. 입주자의 연령·경제력은 높아진다. 독립·도회적인 생활보다 관계·대화 수요가 강조된다.

◆음악 스튜디오·텃밭 갖춘 곳도

소에이건설은 불가근불가원의 거리감을 제공하는 직장인 대상의 셰어 하우스로 유명하다. 입주 조건이 까다롭다면 까다롭다. 직장인, 장기 입주 희망자, 2030세대 등이다. 이를 토대로 파리의 다락방을 테마로 한 여성 한정 물건 등을 운영한다.

최근 주목받는 것은 ‘셰어라운지 도쿄’다. 특화 키워드는 60대 아줌마의 가사 서비스다. 앞치마를 두른 전형적인 아줌마의 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줌마는 수건 등 공용품 세탁은 물론 전용 공간을 뺀 건물 전체를 청소한다. 국과 반찬(2찬)의 가정식도 제공된다.

식사는 방별로 밀폐 용기에 나눠 냉장고에 넣는데 귀가 후 각자 꺼내 먹으면 된다. 식재료비는 실비 부담이지만 건강하고 다양한 식사를 원하기에 갈등이 없다. 엄마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분위기의 서비스를 통해 건강한 거주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입주민은 2030세대의 남녀 6명이다. 아줌마는 월·화·목 주3일 가사를 전담한다. 명칭도 친근한 아줌마다. 아줌마로서도 좋다. 일자리 없이 소일하기 십상인 60대 잉여 근로에 주목한 게 고무적이다.

전문 분야(?)인 가사 업무를 통해 소액이나마 돈을 벌 수 있고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이 좋다. 아줌마의 존재는 셰어 하우스가 갖는 편견과 오해를 깨준다. 통상 청년 전용의 셰어 하우스는 동네 주민에게 민폐로 알려진다. 늦게까지 떠들거나 동네 공동체에서 빠진 이방인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줌마가 집을 관리하고 이웃과의 커뮤니티에도 참가해 중개 역할을 한다. 입주자가 쉬는 날이나 공휴일에는 요리를 가르치거나 연애 상담도 해준다. 월세는 6만 엔. 별도로 공통 경비(1만2000엔)와 서비스 비용(8800엔)이 붙지만 입주 희망자가 10명을 웃돈다.

또 다른 셰어 하우스 ‘린오모리’는 건강에 꽂힌 청년 세대 위주로 새로운 가족 재구성을 실현했다. 도쿄의 고급 주택가에 피트니스를 특화로 내건 것이다. 지하에 밝고 널찍한 전면 거울이 붙은 전용 공간(스테이지)을 운동 시설로 제공한다.

다양한 요가 장비와 운동 설비 등을 구비, 건강과 미용에 민감한 22~42세의 남녀 21명이 거주한다. 24시간 개방되는 스테이지는 밤낮없이 일하는 전문 직업을 가진 입주자에게 특히 호평이다. 원할 때 얼마든지 운동할 수 있다. 운동 취미를 공유한 입주자들이기에 다이어트 등 특정 목적에 맞춰 서클을 결성해 함께 운동하기도 한다. 커플까지 생겨났다.

일부지만 계약 종료 후 이곳의 특화 테마에 관심을 옮겨 건너온 마니아도 있다. 스튜디오 등 음악 공간을 제공, 클래식 음악을 테마로 내건 곳에서 건강·운동을 위해 이곳으로 이사해 왔다. 원하는 공간이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청년 특유의 거주 욕구가 실현된 셈이다.

월세는 6만3000~8만6000엔이다. 회사는 현재 40개 동의 셰어 하우스를 운영한다. 허브 정원, 칵테일 바 등을 붙여 특화한 물건이 적지 않다. 하나같이 가동률은 평균 이상이며 그 덕분에 6개월에 1개 동씩 셰어 하우스를 늘리고 있다.

‘일본토지건물’이 기업용 연수 시설을 개축·오픈한 대형 셰어 하우스는 ‘음악 스튜디오’가 특화 무기다. 음악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추구 테마다. 85개의 방을 갖춘 물건인데 고급감이 최고 수준이다. 호텔처럼 융단을 깐 입구가 좌중을 압도한다.

공유 공간인 거실·부엌은 크기가 상상 이상이다. 스카이라운지라고 불리는 공유 공간은 쉬면서 별까지 볼 수 있다. 화려함의 극치다. 그 덕분에 디자인 관련 대회에서 많이 수상했다. 테마인 음악 스튜디오는 지하에 3개 시설을 갖췄다.

전문 회사가 시공한 완전 방음 공간에 음악 장비가 완비됐다. 믹서·스피커·앰프는 물론 드럼 세트 등도 갖췄다. 녹음 공간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이 때문에 입주민 중에는 관악기 주자, 작곡가 등 프로 직업인도 있다. 월 6만5000엔(관리비 1만8000엔 별도)이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답게 자급자족이 테마인 셰어 하우스도 있다. 식품 안전을 위한 가정 농원 흐름에 주목한 ‘아르덴마쓰도’가 대표적이다. 입주민은 기본적으로 텃밭에 채소를 길러 자급자족을 실현한다.

이를 위해 채소 재배가 취미인 관리인을 두고 넓은 정원을 밭으로 활용, 입주민의 재배 욕구를 해소한다. 수확이 가능한 여름이면 테라스에서 파티를 연다. 혼자 살면 경험하기 힘든 농업 경험의 공유는 단순한 재배뿐만 아니라 관계 돈독으로 연결, 만족감을 높인다.

셰어 하우스의 인기 비결은 달라진 소비 욕구를 정확히 읽어낸 틈새 공략에 있다. 혼자 살지만 가족을 원하는 현대사회의 이중적인 수요 지점을 발굴해 낸 것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소량·근린적인 유통 혁신이 먹혀드는 반면 고독·소외를 치유해 줄 일상적인 대안 본능까지 한데 엮어낸 셈이다.

이에 따라 평소에는 절약하되 가치 지향과 맞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심리도 확인해 냈다. 저가 실속도 좋지만 프리미엄 가치 실현 혹은 가족 사랑의 대체 수요라면 얼마든지 지갑을 연다는 의미다. 이처럼 가족 변화는 시장 판세와 소비 유형을 뒤바꾼다. 주도면밀한 고객 관찰과 욕구 변화를 읽어 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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