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on Your Tax ] 아내에게 보낸 급여 이체는 증여?
부부는 혈연이나 인적관계로 따질 수 없는 무촌(無寸)이다. 하지만 ‘내 돈 네 돈’이 없을 것 같은 부부 사이에도 엄밀하게 따져야 할 세금 문제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내에게 보낸 거액의 급여 이체를 놓고 벌어진 법원의 논쟁이 주목 받는 이유다.

#전업주부 현 모 씨의 남편 박 모 씨는 공인회계사로서 2006년 3월경부터 2008년 10월경까지 총 35회에 걸쳐 자신의 급여 합계 13억3800만 원을 자기앞수표로 입금하거나 계좌이체 하는 방법으로 아내 명의의 A은행, B은행, C은행 계좌로 입금했다. 아내는 입금된 돈을 자신 명의로 된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과세관청은 현 씨가 부동산 임대수익밖에 없는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13억 원에 이르는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점과 남편 박 씨가 아내 명의의 계좌로 이체 및 자기앞수표를 입금한 점을 발견하고 이를 증여로 판단해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처럼 남편이 부인에게 급여 등을 계좌이체 하는 경우 이를 증여로 추정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을 맡은 제1·2심 법원은 “과세관청에 의해 증여자로 인정된 자 명의의 예금이 인출돼 납세자 명의의 예금계좌 등으로 예치된 사실이 밝혀진 이상 그 예금은 납세자에게 증여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와 같은 예금의 인출과 납세자 명의로의 예금 등이 증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이에 대한 입증의 필요는 납세자에게 있다(대법원 2001. 11. 13. 선고 99두4082, 대법원 1997. 02. 11. 선고 96누3272 판결)”고 판단했다.

제1·2심 법원은 남편 박 씨가 아내 현 씨에게 계좌이체를 한 사실과 박 씨가 자신의 통장에서 자기앞수표를 인출해 현 씨의 계좌에 입금한 사실 등을 들어 증여라고 추정하고, 증여가 아님을 입증하지 못한 현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부부간 예금 인출·입금만으로 증여 추정 못해”
하지만 대법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대법원은 “부부 사이에서 일방 배우자 명의의 예금이 인출돼 타방 배우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되는 경우에는 증여 외에도 단순한 공동생활의 편의, 일방 배우자 자금의 위탁 관리, 가족을 위한 생활비 지급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예금의 인출 및 입금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정만으로는 경험칙에 비추어 해당 예금이 타방 배우자에게 증여됐다는 과세 요건 사실이 추정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5. 09. 10. 선고 2015두41937 판결)”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과세관청이 부부간의 계좌이체를 입증하는 것만으로는 증여라고 추정할 수 없으며, 과세관청이 계좌이체 당시 그 돈의 지급 원인이 증여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하면서 제2심 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계좌이체 사실만으로 증여를 추정했다(대법원 2001. 11. 13. 선고 99두4082 판결). 그런데 이 사례에서는 부부간의 금전 계좌이체를 증여로 추정하지 않고, 과세관청이 증여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법에 따르면 부부 사이에는 부양할 의무가 있고, 부부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에 대해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할 의무가 있다. 또 부부간 일상가사 대리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단은 부부가 예금계좌를 공동으로 관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부 사이의 계좌이체 사실만으로는 증여로 추정할 수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최근에 파기 환송심은 현 씨의 손을 들어주며 증여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했다.

그렇다면 예금계좌에 입금된 돈으로 상가를 산 경우에도 똑같은 결론에 이를까. 앞선 사례에서 현 씨는 입금된 돈으로 자신의 명의로 된 금융상품에 투자했는데 현 씨가 자신 명의로 상가건물을 샀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남편이 배우자 통장으로 입금해준 돈으로 배우자가 자신의 명의로 상가건물을 산 경우에는 배우자가 남편으로부터 입금된 돈을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한다(대법원 2008. 09. 25. 선고 2006두8068 판결)”는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동산 등기의 권리추정력을 인정하고, 상가를 부부간 일상가사 범위를 넘어서는 수익용 부동산으로 보는 대법원의 입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 씨가 만약 금융상품에 투자하지 않고 자신 명의로 상가와 같은 수익용 부동산을 샀다면, 다른 결론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법원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이뤄지는 부부간 돈 거래에도 증여세 등 세금 문제가 따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고연기 상무·임준규 변호사 EY한영회계법인 세무본부 상속·증여전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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