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뷰 Leader's View]
중국, 덩치보다 혁신이 더 두렵다
[김도훈 경희대 특임교수] 중국 산업이라고 하면 우선 덩치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 2000년대 초까지 한국이 차지하고 있던 몇몇 산업에서 세계시장 1위 자리를 차례차례 빼앗아 갔으니 중국 산업이라고 하면 우선 그 덩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산업의 덩치를 키워 온 데에는 규모가 큰 국내시장이 큰 몫을 했고 한동안 누려 왔던 저렴한 임금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 산업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각은 ‘그래도 중국 산업은 품질과 기술력 면에서 한국 산업보다 훨씬 뒤떨어진다’고 보는 식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는 이런 시각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 지난 8월 초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개최한 중국 산업 혁신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 발표자들은 중국의 혁신 역량에 큰 자부심을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우선 혁신 자원이라고 분류한 두 가지 지표가 눈에 들어온다.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이미 미국 다음으로 큰 세계 2위 수준으로 올라섰고 미국과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R&D 인력 규모는 10년 가까이 세계 1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R&D 인력을 잠재적 중국 산업의 자원으로 간주한다면 가히 두려운 규모인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중국 산업들은 세계의 탤런트들을 영입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많은 중국 기업들에 한국의 대표 기술 기업들의 임직원들이 스카우트돼 일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질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 논문 인용 색인(SCI) 논문 발표 건수와 국내외 특허 건수 등에서도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으니 괄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혁신 역량 규모나 질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중국 산업의 혁신 전략이다.

먼저, 새로운 산업이 일어나는 데 대해서는 공산주의 국가 중국이 가지고 있는 많은 규제들을 과감히 벗어던져 버린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 등 중국의 정보기술(IT) 분야 대표 기업들은 이미 세계적 혁신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이 창업 기업들과 함께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실리콘밸리의 산업 생태계를 방불케 한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IT 분야의 새로운 산업에 대해 규제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산업 분야에서 공기업들의 사업 영역을 지켜주려고 강한 규제를 운용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새로운 산업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음으로, 이렇게 혁신 역량을 갖춘 중국 기업들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해 내는 중국 유수의 대학들과 이웃하면서 새로운 혁신 공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잘 알려진 베이징의 중관춘, 선전의 화창베이는 물론이고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상하이가 생산자 서비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혁신 공간을 만들어 가는 모습도 새롭게 눈에 띄었다.

이들 혁신 공간들은 새롭게 배출되는 수많은 인재들을 흡수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빠른 혁신을 이뤄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 공간에 세계의 혁신 기업들과 인재들이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모여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 산업은 덩치 자체를 혁신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이른바 로컬 혁신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해 나가는 데 두려움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일시적으로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미 혁신 기업들을 사들여 자신들이 부족한 혁신 역량을 채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원래 혁신 능력이 부족한 중국 기업들이 이들 구미 혁신 기업들의 앞선 혁신 역량을 다 흡수하기에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중국 기업들의 반복된 ‘시도와 실패(try and error)’ 노력이 언제 결실을 얻을지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산업이 향후 혁신 역량을 키워 가려고 하는 분야가 한국 산업이 취약한 분야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생명과학과 신소재 분야가 그것들이다. 이 두 분야는 꾸준히 기술 개발을 추진한 후 그 결실을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빠른 결실을 얻는 데 익숙한 한국 산업들이 혁신 역량을 투입하는 데 인색한 분야인 데 비해 ‘만만디’ 정신의 중국은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