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연 “과도한 기업 경영 간섭 법안, 시장경제 원칙 훼손 법안 많아” (사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지난 8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경제활성화’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지난 5월 대장정의 막을 올린 20대 국회가 개원 이후 기업을 옥죄는 규제 강화 법안을 규제 완화 법안보다 더 많이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월 30일부터 9월 21일까지 20대 국회의원이 발의한 전체 법안들 중 신설·강화 규제 조문은 폐지·완화 규제 조문보다 5배 정도 더 많은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20대 국회 초기 114일간 발의된 법안 총 2277개를 분석한 ‘19·20대 국회 신설·강화 규제의 입법 현황 및 정책 과제’ 보고서를 지난 9월 27일 발간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20대 국회 개원 후 발의된 규제 법률안은 전체 규제 법안 871개 중 813개로 집계돼 93.3%를 차지했다. 규제 조문은 1278건으로 전체 1407건 규제 조문의 90.8%였다. 이 중 국회의원이 발의한 신설·강화 규제 조문은 총 1074건으로 204건의 폐지·완화 규제 조문보다 5.3배 더 많았다. 이는 정부가 제출한 신설·강화 규제 조문의 12.9배에 달한다.
정부는 총 83건의 신설·강화 규제 조문을 제출했고 정당별로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당 측 3당 의원들이 발의한 신설·강화 규제 조문이 총 820건으로 전체 규제 조문의 70.9%를 차지했다.
◆야 3당, 경제민주화 법안의 90% 차지 20대 국회는 개원 초기 114일 만에 17건의 공정거래법, 8건의 유통산업발전법, 6건의 상법 및 대·중소기업상생법 등 38개 법률에 걸쳐 총 109건의 경제민주화 관련 규제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민주화’를 외친 더민주당이 60건을 기록해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각각 33건, 5건씩 제출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불과 8개의 법안만 제출해 야당 측 3당이 10건 중 9건 정도를 발의, 전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90%를 냈다.
17건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일감 몰아 주기 규제 강화,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금지 등의 위반으로 피해 발생 시 3배 손해배상책임 신설, 특수 관계인 공익법인의 동일인 지배회사의 국내 계열사 주식에 의결권 행사 금지 등이 있었다.
8건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대규모 점포 등의 소재지로부터 2km 이내의 범위 일부가 인접 지방자치단체에 속한 경우 상권영향평가서 및 지역협력계획서에 인접 지자체와 관련한 합의 내용을 포함하고 일반 물류 단지 시설에서 대규모 점포를 제외하는 등 대기업 규제를 강화했다.
또한 법인 등이 소속 임원·근로자에 최저임금의 30배 이상을 지급 금지하는 법안도 상정됐다.
6건의 상법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2인 이상 이사 선임 시 소수 주주권으로 집중투표제 청구, 임원보수상한제, 특정 목적 취득 자기 주식은 일정 기간 내 처분 의무 등이 포함됐고, 같은 건수를 기록한 대·중소기업상생법 개정안에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법제화, 협력(초과) 이익 공유제 도입 등 동반성장위원회 초기에 이슈화된 입법안의 다수가 발의됐다.
특히 이번 국회에 발의된 규제 법안 가운데 ▷중복·과잉 법안, 과도한 기업 경영 간섭 법안 ▷시장경제의 근본 원칙을 훼손하는 법안 ▷지역구 민원 해결이나 특정 업종의 과잉 보호 법안 ▷비상식적·비정상적인 발의 사례가 많았다고 한경연은 설명했다.
한경연은 이어 회사 사정과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외부 사외이사 등이 개별 회사의 임원 보수를 산정하고 공개하는 상법 개정안은 기업 경영이나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부당한 간섭 행위라고 비판했다.
◆‘규제 심사 전담 기구’ 상설화 필요 한편 이번 보고서는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의 개원 후 114일 동안 발의된 법안 수도 비교했다.
비교 결과 20대 국회가 2277개 법률안(1일 평균 20개)을 발의해 19대 국회의 1805개 법률안(1일 평균 15.8개)보다 26.1%(의원 발의는 28.8% 증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속도라면 20대 국회 4년 동안 약 2만9000건 정도의 법률안이 제출될 것으로 한경연은 추정했다.
한경연은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의원입법의 발의 및 심의 과정을 선진화·효율화해 ‘좋은 법안’이 만들어지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회 안에 ‘규제 심사 전담 기구’를 상설화하거나 행정부와 의회 등 중립적인 전담 조직에서 의원 발의 규제 법안 가운데 중요 규제에 대해서만이라도 규제영향평가를 필수화하는 등 의원입법 신설·강화 규제에 대한 체계적 심사·관리 제도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양금승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의원 발의와 가결 건수 증가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자 의무로서 다원화된 현대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여론 환기와 사회적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순기능적 측면이 있다”면서 “하지만 신설·강화 규제 관련 의원입법의 급증은 경제 활성화와 기업 경쟁력을 저해할 소지가 크고 부실 입법이나 졸속 심의 가능성도 많으므로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되고 국민 활동에 불편을 주는 불량 규제를 최소화하고 옥석을 가리기 위한 입법 검증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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