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IR 트렌드]
규제 강화로 ‘기업 탐방’ 줄여…‘정보성 보고서’ 대신 두툼한 ‘산업 분석’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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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국내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10여년간 근무 중인 A 씨는 주 4회 기업 탐방은 물론 10여 건의 IR 담당자 미팅 등으로 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해 가며 바쁘게 생활해 왔다. 이런 부지런함 때문에 여러 언론사에서 수년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에 비해 좀 ‘게을러’졌다. 기업 탐방 횟수가 확 줄어서다. 탐방하려고 해도 기업 담당자가 애널리스트를 ‘따로’ 만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금융 당국이 내부자 거래를 막기 위해 2013년부터 강화한 ‘시장 질서 교란 행위 규제 강화’ 때문이다. 이 제도의 도입 후 애널리스트와 IR 담당자 간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규제의 핵심은 미공개 정보 이용의 범위와 처벌 수위를 강화한 것이다.

전에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는 규제 대상자를 회사 내부자와 1차 정보 수령자만 처벌했지만 이후부터 2차, 3차 정보 수령자까지 처벌을 확대했다. 범위도 회사 내부 정보뿐만 아니라 기업과 관련한 정책·판결·언론·정보까지 모두 규제 대상으로 넓혔다.

이런 규제는 바로 기업과 투자자, 기업과 애널리스트 등의 소통 단절을 만들어 냈다. 먼저 기업은 정보 제공에 따른 법 위반을 우려해 한동안 아예 입을 닫아 왔다. 공식적 IR을 제외하고는 탐방 자체를 받지 않은 것이다. 애널리스트들도 위축됐다. 어렵사리 탐방해 기업의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더라도 이를 보고서에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A 씨는 “최근 들어 늘어나는 기업들의 깜짝 실적 발표는 애널리스트의 능력 부족보다 기업이 금융 당국의 눈치를 보며 실적에 관련된 매출 추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면이 있다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규제의 취지가 ‘정보의 투명성’에 맞춰져 있는 만큼 최근 들어서는 이런 변화에 IR 담당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이 적응하며 긍정적인 측면이 늘어나고 있다.

먼저 애널리스트에 대한 평가가 학연·지연 등으로 이어지는 내부 정보가 아닌 뛰어난 분석 능력으로 판가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 보고서의 트렌드는 1~2쪽 수준의 ‘정보성 보고서’보다 여러 애널리스트들이 협업해 만드는 100쪽짜리 ‘산업 분석 보고서’가 내·외부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추세다.

◆'잠정 실적' 발표 기업 늘어

기업은 공식적인 IR 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일례로 2015년 코스닥시장 상장사가 개최한 투자 홍보(IR) 활동 건수는 564건으로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IR 활동 개최 건수는 2012년 335건에서 2013년 289건으로 줄었지만 2014년 372건을 기록하는 등 점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실적 잠정치를 공개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LG전자는 올해부터 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잠정 실적 발표를 통해 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불필요한 억측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잠정 실적 발표를 이미 많이 도입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 역시 대기업을 중심으로 잠정 실적을 발표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분기마다 잠정 실적을 통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공개한다. 자동차업계는 월별 자동차 판매 실적을 공개하고 있고 조선업계는 월별 매출액과 수주액 등을 공개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IR 활동이 늘어나는 것도 또 다른 추세다. 컨설팅 기업인 IR큐더스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의 IR 유형 조사 결과 IR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IR 활동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 등의 활용이 크게 확대됐다. LG전자 역시 실적 잠정치 공개와 함께 올해부터 온라인 콘퍼런스콜을 도입했다.

실제로 IR큐더스의 집계 결과 2014년 콘퍼런스콜 진행 건수는 유가증권시장에서 365건, 코스닥시장에서 89건으로 집계돼 전년에 비해 각각 168.3%와 270% 정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IR큐더스 관계자는 “콘퍼런스콜의 증가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신속하고 공정한 정보 공유를 견인하고 국내는 물론 글로벌 투자자 시장과 함께 정확한 의견을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의 충고를 경영 일선에 반영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돋보기 = 애널리스트-상장사 갈등 막는다…‘IR·조사 분석 업무 처리 강령’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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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와 기업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증권사의 상장기업 분석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상장사-애널리스트 간 갈등이 종종 발생해 왔다.

일부 상장사는 매도 의견을 밝힌 보고서가 발표되면 기업 탐방을 거절하거나 애널리스트가 분석의 객관성을 준수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의 분석 활동이 위축되는 사례도 자주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8월 23일 건전한 리서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IR·조사 분석 업무 처리 강령’을 제정했다. 이번에 제정된 강령의 주요 내용은 ▷상장사-애널리스트 준수 사항 ▷4자간 협의체를 통한 상호 이해와 협력 도모 ▷갈등조정위원회를 통한 갈등 조정 프로세스 마련이다.

강령에 따르면 상장사는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위해 상장사 IR 수칙을 명확하게 하고 애널리스트를 공정하게 대우하며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했다. 애널리스트는 분석 자료의 기본적 작성 수칙(▷객관적 자료 ▷합리적 분석 ▷분석 결과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안이 확인되는 경우 이를 반영)을 명시해 전문성을 제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상장사와 애널리스트는 정보 취득·제공 과정과 조사 분석 자료의 정정 요구 과정에서 각각 준수해야 할 수칙을 구체화했다.

특히 갈등 발생 시에는 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금융투자협회 본부장 각 1인, 금융감독원 담당국장 1인, 리서치센터장 3인, 상장사 IR 담당 임원 2인, 학계·법조계 종사자 2인 등 총 11인으로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한다. 갈등조정위원회에서는 갈등 당사자의 입장 청취와 위원회 구성원 토론 과정을 거친 뒤 다수결로 갈등 조정안을 결정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번 강령 제정을 통해 자본시장의 투명성·공정성이 제고되고 투자자 보호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서는 강령상의 갈등 조정 프로세스를 통해 갈등조정위원회 위원의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쳐 합리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필요한 경우에는 갈등 조정 결과를 언론 등에 공표함으로써 갈등 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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