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바이러스 4종 동시 예방…녹십자·SK케미칼 등 4파전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한 번 접종으로 4종류의 독감 바이러스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4가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으로 관련 시장이 진화하고 있다.
‘4가 독감 백신’은 기존 ‘3가 독감 백신’에 B형 바이러스주 1종이 추가된 백신이다. 한 번 접종으로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2종(H1N1·H3N2)과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2종(야마가타·빅토리아) 등 네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를 모두 예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까지 주로 3가 백신이 접종돼 왔다. 다국적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지난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4가 독감 백신을 판매해 시장을 선점했다. 올해에는 녹십자·SK케미칼·일양약품이 4가 독감 백신을 본격 출시하면서 4파전이 형성됐다.
◆매년 2400명, 독감으로 인해 사망
흔히 독감을 감기의 일종으로 알고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지난해 국가적 재난 사태로 일컬어졌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약 62배에 달하는 사망자를 매년 내고 있는 질환이 독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보건 당국에 따르면 국내에서 독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망자는 연간 2370명에 달한다. 연간 건강보험 지출액은 약 1000억원 수준이다.
예방의학의 발전으로 독감은 예방접종만 잘해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독감 백신의 면역력은 한 번 접종으로 약 6개월 정도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독감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해 12월과 1월에 최고점을 찍는다. 항체 형성에 2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을철에 미리 접종받는 게 좋다.
기존 3가 인플루엔자 백신은 매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유행할 것으로 예상하는 A형 바이러스주 2종과 B형 바이러스주 1종을 조합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WHO가 유행할 것으로 예상한 바이러스주와 실제 유행한 바이러스주가 일치하지 않는 백신 미스매치가 발생해 인플루엔자 확산의 원인이 돼 왔다.
유병욱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는 “국내에서도 B-미스매치로 인한 인플루엔자 유행 사례가 늘고 있고 최근에는 두 가지 B형 바이러스가 동시에 유행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B형 바이러스 감염 시 증상 및 심각성이 A형 바이러스와 유사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은 두 가지 B형 바이러스주를 포함하는 4가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미국·영국·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노인과 임신부, 영·유아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국가 필수 예방접종 사업에 4가 독감 백신을 도입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4가 독감 백신이 필수 예방접종 사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녹십자, 4가 백신 세계시장 공략 시동 (사진) SK케미칼 직원이 독감 백신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SK케미칼 제공
제약업계에 따르면 세계 백신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0억 달러(46조원) 규모였다. 2019년에는 564억 달러(6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 출시된 오리지널 4가 독감 백신 제품은 GSK의 ‘플루아릭스테트라 프리필드시린지(이하 플루아릭스테트라)’, 녹십자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프리필드시린지주(이하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SK케미칼 ‘스카이셀플루4가 프리필드시린지(이하 스카이셀플루4가)’, 일양약품 ‘테라텍트 프리필드시린지주(이하 테라텍트)’ 등 4종류다.
이 중 SK케미칼의 스카이셀플루4가만 세포배양 방식이고 나머지는 유정란 배양 방식을 사용한 백신이다. 세포배양 백신은 개 등 동물세포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배양해 만든다. 제조 과정에서 계란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된다. 균주를 확보한 후 2~3개월이면 백신 생산이 가능해 신종플루 등 변종 독감이 유행할 때 보다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유정란 배양 방식은 약 70여 년 전 개발된 기술로 안전성과 임상적 효과가 충분히 입증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생산 단가 측면에서도 세포배양 방식에 비해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GSK는 지난해 4월 국내 최초로 4가 독감 백신 ‘플루아릭스테트라’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영국·독일·호주 등 34개 국가에서 허가 받은 백신이다. 회사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약 1억 도즈(1도즈=1회 접종 분량) 이상 공급돼 방대한 사용 경험을 축적해 온 제품”이라고 말했다.
녹십자는 지난해 11월 4가 독감 백신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의 품목 허가를 식약처로부터 획득했다. 회사 관계자는 “올 초 수출 주력용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싱글 도즈(1인용)와 멀티 도즈(10인용) 등의 제형으로 4가 독감 백신 허가를 받았다”며 “조만간 아시아 최초로 WHO에 4가 독감 백신의 사전 적격성 평가 인증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12월 식약처로부터 세계 최초 세포배양 4가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4가’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SK케미칼이 올해 국내에 공급할 4가 독감 백신은 약 500만 도즈다. 이는 지난해 3가 독감 백신 대비 약 40% 증가한 물량이다. 회사 관계자는 “스카이셀플루4가는 예방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기존 3가를 넘어서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일양약품도 지난 9월 4가 독감 백신 ‘테라텍트’의 품목 허가를 식약처로부터 획득했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독감 백신 부문에서만 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하태기 SK증권 연구위원은 “독감 백신 시장이 4가 백신으로 옮겨가는 추세”라며 “녹십자 등 국내 제약사들이 4가 독감 백신으로 국내에서 입지를 다진 후 글로벌사가 독점하는 세계 백신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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