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고도성장기 퇴근길 한잔의 대명사…청춘 남녀 몰리는 헌팅 명소로
추억을 파는 일본 뒷골목 상권 ‘요코초’의 부활
일본의 요코초 거리. /전영수 교수 제공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도시는 낯설기 마련이다. 생면부지의 타인이 모여 생활공간을 만들어 낸 결과다. 태어난 원주민보다 들어온 이주민이 압도적인 비율로 도시를 형성한다. 최고 수준의 인구 밀집 지역이건만 스쳐 지나갈 뿐 연결 교류는 드물다. 도시에 마을·이웃이 없는 이유다.

한편 도시 공간에서 제공하기 힘든 부재 항목은 유력한 사업 모델 중 하나다. 원하지만 없거나 달리면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 선두 주자는 복고 트렌드다. 번거롭고 불편하되 정겹고 따뜻한 과거 제품과 서비스가 주목받는다. 일본에선 이 추세가 소매유통을 넘어 외식 영역에까지 퍼진다. 옛날 냄새 물씬 풍기는 곳에서 먹고 마시려는 수요 확인이다.

◆ ‘일본의 피맛골’…복고 회귀 붐붐

대표적인 키워드는 ‘요코초(橫丁:골목길)’다. 트렌드 연구 기관 리크루트연구소는 음식 영역의 새로운 유행 경향으로 ‘요코초 르네상스’를 내놓았다. 최근 요코초에서 먹고 마시는 고객이 증가, 붐업 조짐이 뚜렷하다는 이유다. 특히 청년·여성 및 중·장년 남성의 반복 방문에 주목한다.

요코초는 작은 골목에 형성된 집결 상권을 뜻한다. 주로 역세권·번화가 대로변과 연결된 작지만 아기자기한 골목 상권을 지칭한다. 공식적인 행정 권역은 아니고 과거부터 서민들이 주로 찾는 저렴한 식당·술집이면 으레 요코초로 불린다.

한국으로 치면 종로대로 뒤쪽의 피맛골과 비슷하다. 허름하되 오래된 점포가 다수 있는 골목 상권과 유사하다. 차이는 일본에선 이런 요코초가 곳곳에 산재·영업 중이란 점이다. 전성기였던 1950~1980년대 고도성장 때는 수만 곳에 달했다는 게 정설이다.

도심 권역은 지금도 20~30개 점포가 요코초다. 샐러리맨의 퇴근길 한잔의 빠질 수 없는 상징 공간이다. 독특한 음식·안주 메뉴를 내세운 차별적인 점포거리 중 하나다.

물론 전성기는 애초에 끝났다. 지금도 대세는 내리막이다. 1990년대 불황 이후 내수 소비가 가라앉으면서 상권 침체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목이 좋은 상점가 정면 상권조차 셔터를 내린 판에 이면의 골목 음식점·주점이 건재할 리 없다. 불황 충격이 작은 유력 상권에 자리했거나 재미난 특화 이미지로 유명세를 갖지 못한 요코초는 내수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장시간 점포를 드나들던 단골손님이 아니면 연명조차 힘든 곳이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단골손님은 십중팔구 과거 번성했던 골목 풍경과 과거 추억을 공유하는 중·고령의 남성 손님 위주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령화로 점차 발길이 뜸해진다.

이랬던 요코초에 최근 부활 조짐이 목격된다. 붐업의 최대 기반은 복고 지향적인 소비 트렌드다. 왕년의 인간미 넘치던 때를 떠올리려는 분위기가 뒷골목 점포 상권을 되살린 일등 공신이다. 그 이면엔 잠시나마 현대사회의 피로 압박으로부터 탈출해 보려는 반발 기제가 존재한다.
정책 슬로건도 한몫했다. 강한 일본으로 되돌아가자는 아베 정권의 회귀 지점이 고도성장기 혹은 전전(戰前)시대란 점에서 민간 시장이 관련된 복고 열풍을 조성한 결과다. 여기에 ‘인구 유입→지역 부활’을 지향하는 새로운 균형 발전론의 정책 대상에도 뒷골목 상권이 제격이었다.

상징 단어는 ‘쇼와리바이벌(昭和+Revival)’이다. 쇼와(1925~1989년)시대의 좋았던 기억을 반추함으로써 지갑을 열자는 아이디어다. 2015년 전쟁 이후를 총괄하는 차원에서의 ‘전후 70년 담화’가 발표되고 1억 인구 유지를 위한 ‘1억 총활약 장관’까지 나오면서 주목받은 게 강력한 국가 이미지를 지닌 쇼와시대의 복고 회귀 붐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준비·개발 러시도 과거 번영과 연결된다. 이때 당시 이미지가 가장 잘 남아있고 언제든지 시간 여행자처럼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추억 장소가 요코초다. 쇼와 풍미가 가득한 뒷골목 음식·음주 상권이면 누구든지 쇼와시대로 잠시나마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상권 부활 위해 다양한 특화 노력

이에 따라 열도 각지에서 요코초의 부활 소식이 들려온다. 무엇보다 간만에 불어온 훈풍에 올라타려는 개별 상권의 자구적인 특화 노력이 잇따른다. 모객에 공을 들이는 대상은 젊은 청춘 남녀다. 장기 불황으로 외식과 음주 성향이 저하된 2030세대가 가볍게 방문할 수 있도록 독특한 이벤트를 개최한다.

청년 이탈의 원인으로 꼽히던 어둡고 불안하며 번잡한 저급 문화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다. 내·외장을 바꿔 세련·편리함을 더하고 메뉴 개발 등을 맞춤식으로 제공한다. 이를 통해 청춘 남녀가 이곳에서 쇼와를 음미·관광하도록 열린 공간·관계를 지향한다.

현실적인 대면 경험이 부족한 청년 손님에겐 새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등엔 이들의 방문 후기가 뒤따른다.

기존 단골손님인 중·고령 인구도 반갑기는 매한가지여서 협력적이다. 퀴퀴한 그들만의 분위기가 젊고 발랄함의 가세로 달라지는 세대 소통의 일선 무대인 때문이다. 폐업이 기정사실인 단골 점포가 생존한다는 점도 좋다. 거점 인연이자 과거 기억이 짙게 밴 공간의 지속 기대다.

세대 소통의 교류 확대를 통해 차세대에게 다양한 과거를 전승해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새로운 청년 손님과 기존의 단골손님이 연결된 형태의 합작 방문은 점포와 지역공동체의 중대한 부활 신호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퇴근길 한잔의 대명사였던 고정관념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주말 낮처럼 손님이 없음직한 시간에도 북적북적한 곳이 적지 않다. 다양한 연령층의 첫 대면인데도 옆자리와의 경계가 쉽게 허물어진다.

일부 요코초는 헌팅에 제격이란 소문이 돌면서 연일 문전성시다. 마크로밀 조사에 따르면 방문 경험자의 92%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88%는 옆 사람과 얘기한다는 개방성까지 갖췄다. 즉 가볍고 친근한 음주 공간에서 남녀의 교제 장소로 번지더니 종국엔 헌팅 명소로까지 진화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꼭 방문해야 할 명소를 모아 소개하는 자료도 많다. 선두 주자는 역시 도쿄 등 대도시 역세권역이다. 근접성·경제성·화제성을 두루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