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난 폐쇄적이요. 당신이랑 대화는 이미 끝났소!”
검찰 출석한 우병우의 ‘팔짱 끼기’ 심리학
[한경비즈니스=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할리우드 영화 ‘킹콩’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아무래도 주인공 고릴라가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자신의 가슴을 팍팍 치며 위세를 과시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수컷 침팬지의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동기는 권력이다. 권력을 얻으면 크나큰 혜택을 얻지만 잃으면 엄청난 좌절을 맛보기 때문에 권력은 그들 사이에서 하나의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의 말이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만 그런 게 아니다. 권력의 획득과 그에 따른 지배 서열에 민감한 것은 거의 모든 동물의 본능에 가깝다. 연구에 따르면 귀뚜라미는 다른 귀뚜라미와 싸워 이기고 진 역사를 기억한다. 또 가재는 누가 우두머리인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같은 영역에 두 마리 이상이 공존할 수 없다고 한다.

◆우병우의 행동은 ‘우두머리의 행동’

가재나 귀뚜라미도 이러하거늘 영장류의 최고봉인 사람들은 오죽하랴.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에 따르면 사람들 간의 지위와 지배 서열이 형성되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서로 모르는 사람 3명씩으로 이뤄진 집단 5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집단의 절반이 단 1분 안에, 나머지 절반은 5분 안에 뚜렷하게 서열이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단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을 그저 보기만 하고 말을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도 새로운 집단 내에서 자신의 장래 지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이 연장선상에서 검찰로 소환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검찰 출두 장면과 조사 장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은 안종범 전 정책수석이나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던 청와대 비서관들이 소환되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사죄를 구하는 듯한 모습과 확연하게 다르다.

정권의 실세 중 실세로 ‘황제수석’으로 불리던 사람답게 그는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인양 ‘황제 소환’, ‘황제 조사’를 받고 있다.

신체언어(body language)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나 전직 미국연방수사국(FBI) 수사관 등 비언어적 소통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체언어가 실제 언어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지위와 지배 서열을 나타낸다.

검찰에 출두하면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정면을 주시하면서 성큼성큼 걷던 우 전 수석의 모습은 영화 ‘킹콩’의 고릴라처럼 영장류 사회의 우두머리 수컷이 보여주는 과시 행동을 연상시킨다. 의혹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를 사나운 눈초리로 똑바로 응시하는 행동은 전형적으로 하위 서열에 대한 ‘위협’과 ‘증오’의 표현 방식이다.

옛날 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 중에 일반에게도 많이 알려진 말이 하나 있다. ‘경찰은 때려서 조지고, 검찰은 불러서 조진다. 교도관은 줄 세워서 조지고, 판사는 판결로 조지고, 집에서는 팔아서 조진다.’ 이른바 가난한 흙수저의 비애를 소재로 한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검찰과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받았던 고문을 포함한 각종 고통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하지만 ‘황제수석’은 달랐다. 특히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것은 검찰에 출두한 우 전 수석의 자세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한 언론사 기자의 사진이었다. 우 전 수석은 조사관 앞에서 팔짱을 끼고(대화를 거부하는 불편한 내심) 시선을 제 맘대로 허공에 두고(하위 서열 무시) 있다.

오히려 조사관들이 공손하게 양손을 모으고 시선은 우 전 수석을 향한 채 우 전 수석 앞에 도열(복종 자세)해 있다. 출두할 때 입었던 양복 상의 대신 어느새 편한 점퍼로 갈아입었다.

조사관들은 양복차림 그대로다. 더욱이 변호사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뭔가 숨기면서 대화 거부하는 폐쇄적인 자세) 파안대소(상위 서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경희대 교수에 따르면 인류학자 리처드 슈베더는 도덕에 3가지 차원이 있다고 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차원, 공동체의 통합과 질서를 중시하는 차원, 영혼의 깨끗함과 신성을 중시하는 차원 등이다.

우 전 수석의 지위 서열은 명성과 존경에 입각해 얻어진 것이 아니다. 완력과 폭력에 따른 두려움으로 얻은 침팬지의 그것에 가깝다. 명백하게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고 공동체의 통합과 질서를 깨뜨리는 부도덕한 행동이다.

국정을 농단한 자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일벌백계를 통해 우리가 침팬지보다 못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목하 가장 중요한 국민적 소망일 것이다.

(일러스트 =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