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국정농단'에 비상 걸린 경제 성장엔진 : '트럼프 쇼크' 파장은]
기존 공약 수위 낮아지고 있지만 ‘변화’는 불가피해
통상·안보 부문 ‘직격탄’…환율도 ‘불똥’ 튈 수 있어
[한경비즈니스=이홍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1월 8일 대선 투표일 전만 해도 연단에 올라 정적들에 대한 거친 언사와 독설, 앞뒤 따져볼 것 없는 강경한 공약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미국의 현실과 기존 정치에 불만이 가득 찼던 지지자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화끈한 연설과 공약에 열광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은 ‘미국을 더 위대하게’로 요약된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자유시장주의 원칙을 내세우며 대기업의 법인세를 크게 낮추는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감세 정책도 내놓았다. 타 국가를 상대로 관세를 인상하고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의 탈세를 막아 재원을 마련한다고 공언했다. 또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해 불법체류를 근절하겠다고 했다.

◆한미 FTA 재협상 피하기 어려울 듯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기간 내에 밝힌 공약이 실현된다면 글로벌 정치·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의 정책 공약은 다양하지만 그대로 시행된다면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무역 및 통상 관련 공약이고 다른 하나는 안보 관련 공약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무역 및 통상 공약은 ‘보호무역주의’로 대변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통상 공약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철회를 비롯한 강력한 무역 협상,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이미 체결한 협정의 재협상 등을 담고 있다.

만약 재협상이 없으면 협정 탈퇴까지 불사할 태도다. 또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불법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계획 중이다. 중국과 멕시코에 각각 45%, 35%를 보복성 관세 부과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공약들이 현실화된다면 당장 한미 FTA 재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전문가들은 백인 노동자층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대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재협상에서 동식물 검역과 쇠고기 연령 제한 해제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현재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과거 한미 간 WTO 분쟁 사건들을 보면 미국이 제소한 분야는 동식물 검역 조치와 유효기간, 주세, 쇠고기 수입 제한 등이었다.

이상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1월 11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무역 장벽으로 언급한 쇠고기 수입 규제와 일부 과일류 수입 금지, 유전자변형식물(GMO) 관련 규정 등을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올해부터 적용하고 있는 한국의 쌀 관세율 513%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환율 제재와 무역 보복 대상은 중국과 멕시코이지만 한국도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 악화뿐만 아니라 중국과 멕시코를 통한 ‘우회 수출’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또 미 재무부는 한국을 환율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이고 수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장기적인 원화 절상이 필요하다”며 “국제통화기금(IMF) 수치를 인용해 구체적으로 원화 가치가 4~12% 절하돼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할 때 예상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TPP다. 미국의 비준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TPP 출범 자체도 상당 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TPP 참여 후발 주자인 한국으로서는 앞서 51개국과 체결한 FTA 선점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주한 미군 분담금 증액 가능

또 다른 하나는 안보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이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주한 미군 주둔 비용 현실화를 주장해 왔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지난 3월 CNN에 출연해 “북한도 파키스탄도 중국도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고 이란도 10년 이내에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면서 “일정 시점에서 일본과 한국이 북한의 ‘미치광이’에 맞서 자신들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면 미국의 형편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그동안 한국의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5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주한 미군의 인적 비용을 100% 부담하는 것이 왜 안 되느냐”고 밝혔다. 이처럼 본인이 ‘신고립주의’를 내세웠던 만큼 한국에 분담금의 일정 부분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방부는 11월 14일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 미군의 기여도에 걸맞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한국군의 자강 노력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선 승리 이후 트럼프 당선인의 목소리는 조금 낮아지고 있다. 대선을 치르는 동안엔 극단적인 보수 이념과 사회적 증오의 바탕을 공약으로 유권자를 그러모았지만 당선 이후에는 기업가 출신답게 현실의 눈높이에 맞춰 실용적인 접근도 양립하려고 한다는 평가다.

한국 관련 공약도 마찬가지다. 먼저 안보와 관련해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11월 13일 트위터에서 “뉴욕타임스는 내가 ‘더 많은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얼마나 부정직한 이들인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상·하원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미국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 당선인의 극단적인 공약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3대 국제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통상 공약을 다 실현한다면 세계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밝혔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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