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불황 탈출 게이트'를 찾아라 : IT·전자]
삼성·LG전자 가전 영업이익, 작년의 2배…스마트폰에도 가성비 경쟁
‘프리미엄·보급형 가전’ 투 트랙 전략
(사진) 삼성전자의 88인치 '퀀텀닷 TV'. 초(超) 프리미엄 시장을 노리고 출시한 제품으로 출고가는 3300만원이다. /삼성전자 제공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사전 예약 완판’, ‘역대 최대 매출’…. 최근 대내외 악재로 ‘한국의 성장 엔진이 꺼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가전·전자 시장은 고속 성장을 달리고 있다.

쌈짓돈을 노리는 보급형 제품부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초(超)프리미엄 시장까지, 수요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가전업계의 불황 탈출 전략도 다양하다.

◆‘세단’ 값으로 TV 장만해 볼까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에서 TV 생산을 담당하는 이모(30·남) 씨는 최근 가족 및 친구와의 여행 일정을 모두 내년 2월 이후로 미뤘다. 3월 신제품 양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주말도 반납하고 일에 매달리기로 한 것이다.

이 씨는 “이곳에선 불황을 체감하기 어렵다”며 “올해도 보급형·프리미엄 TV 모두 큰 성과를 보이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수요에 맞추기 위해 지금 제일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씨뿐만이 아니다. 최근 정국을 뒤덮은 ‘최순실 게이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으로 국내 소비 심리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수준까지 추락했지만 국내외 가전업계에선 ‘즐거운 비명’이다. 중저가와 고가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이른바 ‘투 트랙 전략’으로 가전 분야에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12월 2일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내 최대 가전 업체 삼성전자의 TV·모니터·냉장고·세탁기·에어컨·프린터·의료기기 등 ‘백색가전’을 담당하는 CE 부문은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으로 2조316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년의 영업이익(1조2542억원)을 두 배 가까이 뛰어넘은 것이다.

회사 측은 2세대 퀀텀닷 기술을 적용한 SUHD TV, 셰프컬렉션 냉장고, 무풍 에어컨, 애드워시 세탁기 등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 호조로 지난해 3분기보다 실적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 중 삼성전자가 지난 5월 선보인 '퀀텀닷 디스플레이 SUHD TV’ 88인치형(223㎝)은 제품 출고가가 3300만원으로 웬만한 승용차 가격을 웃돈다.

경쟁사 LG전자 또한 올 3월 발표한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시그니처’가 소위 대박을 치면서 상승 가도를 달렸다. ‘시그니처’ 브랜드 제품이 포함된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 홈엔터테인먼트(HE)부문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2조2577억원으로 지난해 영업이익(1조390억원)을 배 이상 앞질렀다.

회사 측은 300만원대 세탁기, 800만원대 냉장고, 1000만원이 넘는 올레드 TV 등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가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보인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시그니처’ 제품의 판매 실적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목표치를 크게 웃돈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해당 브랜드의 제품 판매를 본격화하기 위해 체험 존을 늘리고 제품군도 확대할 계획이다.

◆‘초소형·최대효율’ 부르는 1인 가구

‘초대형’과 ‘최고가’ 바람에 맞선 ‘초소형’과 ‘최저가’도 불황 타개 전략의 한 축이다. 동부대우전자는 최근 급증하는 1인 가구를 겨냥해 출시한 15리터짜리 전자레인지, 최소형 콤비 냉장고 등 소형 가전제품의 올해 누적 판매량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200만 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 회사 내수 매출의 25% 수준이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는 “지속된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1인 가전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초소형 가전 라인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지난 10월 말 진행된 북미 최대의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미국의 추수감사절 다음 날)를 시작으로 연말 할인 판매까지 가전업계에 대목이 찾아오는 4분기에 이들 업체의 판매 실적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소비 현상은 스마트폰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0월 14일 국내 예약판매를 시작한 애플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아이폰7’은 예약판매 시작과 동시에 가입 희망자가 몰려 1차 판매 20분 만에, 2차 판매 1시간 만에 이통사가 보유한 예약 물량이 동났다.

이 제품의 출고가는 최대 115만원으로 이동통신사의 지원금을 받아도 최대 100만원이 넘는다. 전량 리콜을 실시한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7’ 또한 발화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가격 대비 성능을 앞세운 보급형 스마트폰의 공급도 눈에 띄게 급증했다. 기존에는 어르신을 위한 ‘효도 폰’ 정도로 보급형 스마트폰을 인식하는 경향이 짙었지만 샤오미·화웨이 등 중국산 스마트폰과의 경쟁이 확산하면서 국내 스마트폰 업체들 또한 프리미엄 모델과 보급형 모델 등 다양한 제품 출시로 매출을 다변화하고 있다.

올 연말에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온(On)7’과 LG전자의 ‘유(U)’ 등 30만원대 보급형 스마트폰이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이 같은 ‘투 트랙’ 전략이 보다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가전 시장의 신제품 출시 주기와 교체 주기가 단축되면서 불경기에도 가격보다 가치 지향적 소비로 나아갈 것이란 분석이다.

박성수 KB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상품의 가격보다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주관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면서 소비성향의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도 심화할 것”이라며 “이러한 소비경향은 산업 전반에 확산되고 있고 기업들은 투 트랙 전략을 통해 생존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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