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개탄시대, 대한민국 경제는 어디로 : 스타트업]
내년 예산은 확보했지만 ‘창조경제’ 낙인…정책 취지 살려야
‘우리도 죄인입니까’ 힘 빠진 스타트업
(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8일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성공 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꼭 창조경제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12월 2일 열린 ‘창조경제 박람회’가 두 차례의 정전으로 예정보다 30분 일찍 행사를 마치자 현장에 있던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이던 ‘창조경제’가 국정 농단 의혹의 중심에 놓이면서 존폐 논란으로 치닫자 관련 사업의 미래를 암흑에 빗댄 것이다.

창조경제 존폐론은 스타트업 위기론으로도 번졌다. ‘창조경제가 곧 스타트업’이란 인식 때문에 정부의 창업 육성 정책이 축소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과 스타트업 육성 정책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책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정 농단에 추락한 ‘창조경제’

“창조경제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시작은 화려했다.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구현’을 새 정부의 핵심 목표로 잡고 2013~2017년 임기 5년간 나라 살림(135조원 추산)의 25%인 33조9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고용과 복지’ 예산(79조원, 59%)에 이어 둘째로 큰 규모다.

창조경제가 국정 과제로 꼽히면서 지난 4년간 온 나라는 창조경제로 들썩였다. 정부 정책마다 창조경제란 꼬리표가 붙었다. 일선 대학과 기업의 공모전, TV 광고에서까지 창조경제가 핵심 키워드로 도배됐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에는 창업·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가 설립됐다. 정부는 삼성·LG·SK 등 주요 대기업과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유수 기업들을 전국의 혁신센터 18곳과 연계해 일대일 전담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벤처기업은 대기업의 지원을 받고 대기업 또한 스타트업과 상생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서울시에는 콘텐츠 관련 신생 기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문화창조벤처단지(이하 벤처단지)가 건립됐다.

사무 공간과 제작 시설 등을 제공해 창업·벤처기업의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는 계획으로 1인 창업 기업, 4인 이하 스타트업 등 총 93개 기업이 입주했다. 정부는 매년 말 이러한 창조경제 정책의 성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창조경제 박람회’도 개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 국정 농단 사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발발하면서 창조경제의 생태계마저 붕괴되기 시작했다. 관련 사업들이 최순실 일가와 관련 인물인 차은택 광고감독 등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혁신센터와 벤처단지 출범 배경에 최순실과 차은택 감독이 연루됐다는 의혹, 몇몇 입주 기업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등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면서 입주 기업 전체로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혁신센터 입주 기업의 한 관계자는 “혁신센터라고 하면 이미 색안경을 끼고 본다”며 “정당한 기준에 따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의 낙인을 지우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간 특혜 시비에 침묵으로 대응해 온 벤처단지 입주 기업들도 울분을 토했다. 42개 입주 벤처기업은 박 대통령의 탄핵 투표를 앞둔 지난 12월 8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우리는 국정 농단 무리의 부패를 가릴 병풍이자 들러리로, 국민의 분노를 분산시킬 총알받이로 선택됐다”고 공분했다.

이들은 “벤처단지 입주 당시 경쟁률이 13 대 1에 육박했다”며 “이곳에 입주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없는 자랑이자 훈장이었지만 ‘비선 실세’가 등장하면서 하루아침에 수치의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혁신센터와 벤처단지 입주 업체 및 보육 업체들은 ‘창조경제’ 출신 꼬리표가 영원히 따라다닐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교육 기반의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창조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미 무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창조경제 대신 다른 슬로건을 찾아 억울한 스타트업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정부 주도 정책 벗어나야”

전문가들은 창조경제 관련 사업의 수정은 불가피하더라도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스타트업 지원 정책의 큰 줄기는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으로 2년 차에 접어든 혁신센터는 총 1135개의 창업 기업과 1605개의 중소기업을 지원했고 2834억원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 냈다.

혁신센터가 보육한 창업 기업은 약 1605억원의 매출 증가와 1359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했다. 벤처단지 또한 90여 개 기업에 임대료와 관리비를 지원했고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는 평을 얻었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창조경제 관련 사업의 운영 방식은 분명 개선돼야 하지만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정부 지원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며 “정부와 대기업 위주의 관치 경제식 지원이 아니라 신생 스타트업에 실질적으로 지원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도 “스타트업 정책은 흔들리지 말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지나친 정부 주도 정책과 보여주기식 사업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월 3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전국 17개 혁신센터 관련 국비 예산으로 436억5000만원이 반영됐다. 대폭 삭감이 우려된 것과 달리 오히려 작년보다 118억원 늘어났다. 다만 혁신센터 운영비는 국가(60%)와 지방자치단체(40%)가 분담하고 있어 지자체의 예산 절차가 남아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예산안을 일부 삭감한 서울·경기·전남 등 지자체에서도 국비 확보 이후 예산안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입주 기업이 ‘창조경제’로 받는 불이익이 최소한 없어야 할 것”이라며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련 정책을) 다음 정부로 이양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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