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개탄시대, 대한민국 경제는 어디로 : 대기업]
국정조사에 특검까지 불려나가는 총수들…“대외 활동은커녕 내년 전략도 못 짜”
경영 시계 멈춘 기업에 난제만 ‘첩첩산중’
(사진) 지난 12월 6일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에 참석한 재벌 총수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허찬수 전경련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이 재계 경영 시계를 멈춰 세웠다. 당장 연말 인사와 내년도 사업 계획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수습은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이다.

재계 총수 9명(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허창수 GS 회장)이 대거 참석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는 지난 12월 6일 끝났지만 재계는 안도의 한숨보다 앞으로 닥칠 미래를 걱정하기 바쁘다.

◆ 1년 전으로 돌아간 삼성의 경영 시계

실무자들은 손발이 모자랄 지경이다. 할 일이 산더미지만 당장 청문회에서 총수들이 내놓은 ‘약속’의 후속 조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갑갑하기만 하다.

여기에 조만간 대규모로 꾸려지는 ‘최순실 특별검사팀(특검)’ 조사까지 대비해야 한다. 당연히 총수와 기업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총수가 국회에 불려나간 대기업의 한 임원은 “연말 정기 인사는 물론 내년 사업 계획도 제대로 짜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문회 후속 조치와 특검 수사까지 대비해야 한다”며 “지금 뭐부터 해야 할지, 당장 내일 어떤 일이 터질지, 회장께서 어떤 지시를 내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기업들이 경영 활동이 마비되자 중견·중소기업들의 활동도 덩달아 위축되고 있다. 실제로 청문회에 나선 대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검·탄핵이 엉켜 있는 소용돌이 정국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면서 경영 시계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수는 물론 대외적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지금 만사를 제쳐놓고 내년 경영전략을 짜야 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며 “돈도 뜯기고 시간도 뜯기고 미래까지 뜯기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심각성은 더하다. 내년 계획은 고사하고 경영 시계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7월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지분 다툼 속에 어렵게 마무리한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관련 재판을 진행 중인 법원은 특검의 수사 결과를 판단에 참고하겠다며 이미 종료된 변론을 재개하고 선고를 미루기까지 했다.

또한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하겠다”고 말하면서 미전실의 진로에 대한 해법도 찾아야 한다. 당초 미전실에서 주도해야 할 지배 구조 개선 작업이 미전실 해체와 함께 진행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삼성은 통상 12월 초 단행하던 인사를 내년으로 미뤘다. 2008년 특검 이후 처음이다. 삼성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지금쯤 인사를 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며 “(인사가 지연되면서) 내년 사업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 국정조사·특검에 발목 잡힌 총수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기업 및 총수들의 행동반경에도 제동을 걸었다. 현대차그룹은 해외 법인장 회의, 내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등 굵직한 행사가 잇따라 예정돼 있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경영 활동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매년 연말이면 중국 등 해외 공장을 직접 둘러보며 생산 활동을 독려했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행보도 중단됐다. 실제로 정 회장은 국정조사와 특검으로 인해 12월로 예정돼 있던 해외 출장 스케줄을 취소했다. 또한 현대차는 매년 연말에 실시하던 해외 주재원의 국내 교육을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해외 출장에 차질을 빚고 있다. 최 회장은 외부에 공개된 일정 외에도 비공개 방문까지 포함해 한 달에 1~2번은 중국에 들를 정도로 중국 시장에 강한 애착을 보여 왔지만 당분간 해외에 나갈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행동반경도 위축되고 있다. 이는 특검과 별개로 신 회장 등 총수 일가에 대한 횡령·배임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12월 22일 2차 공판이 예정돼 있다.

여기에 신규 면세점 사업권 심사 결과가 12월 17일 발표될 예정이지만 롯데는 최순실 정국으로 인해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국에선 롯데에 대한 현지 조사 당국의 세무조사, 소방·안전점검 등의 소식이 이어졌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에 대한 보복으로 비쳐지면서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 롯데는 내년 초까지 인사를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설립 55년 역사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마저 흔들어 놓았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설립될 때 기업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은 비판 여론의 표적이 되자 4대 그룹인 삼성·현대자동차·SK·LG그룹 총수들이 국정조사에서 줄줄이 탈퇴 의사를 밝혔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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