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개탄시대, 대한민국 경제는 어디로 : 경제정책]
‘최순실 사태’에 성장률 흔들…‘대안’이 없는 게 더 문제
흔들리는 경제, 방향타도 잃었다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정치·사회적 측면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처럼 커져만 가는 정치적 불확실성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꾸만 뒷걸음질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씨티은행 등 해외 투자은행(IB)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은 국책 연구기관까지 ‘성장률 저하’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국내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주요 경제지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3%로 전월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7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지난 8월(70.2%)과 비슷한 수준이다. 공장 10개 중 3개꼴로 가동이 멈췄던 1998년(69.8%) 외환 위기 당시와도 수치상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다.

◆‘정치 불확실성’에 성장률 뚝뚝

제조업의 부진은 고용시장도 악화시키고 있다. 10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11만5000명(-2.5%) 줄어든 443만7000명으로, 지난 7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 감소 폭도 2009년 9월(11만8000명) 이후 최대치다. 청년 실업률은 전년보다 1.1%포인트 상승한 8.5%로, 외환 위기 영향권이었던 1999년(8.6%)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경기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비 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전월보다 6.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 이후 7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월 대비 하락 폭 역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떠들썩했던 지난해 6월(-6.7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도 내리막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수출은 지난해 마이너스 8.0%에 이어 올해도 5.6% 감소한 497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수출을 기록한 것은 1957~1958년 이후 58년 만이다.

당연히 기업들의 체감 경기도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12월 전망치는 91.7을 기록해 기준선인 100을 7개월째 밑돌았다.

2017년에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나라 안팎의 경제 ‘적신호’에 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연이어 낮춰 잡고 있다.

OECD는 지난 11월 28일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2017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OECD는 이례적으로 ‘최순실 사태’를 직접 언급하는 등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하방 요인으로 판단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초래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KDI는 지난 12월 7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 전망’에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4%로 하향 조정하고 정치 혼란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경제 주체의 소비 위축과 투자 지연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가계는 예비적 저축이라고 해서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있고 기업은 의사결정을 지연하고 있다”며 “소비와 투자 모두 내려가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소비와 투자가 내려가면 생산 둔화와 노동시장 노동 공급 및 수요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경기 전반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 투자은행(IB) 역시 ‘최순실 사태’로 올 4분기 경제성장률 둔화 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해외 IB들은 최순실 사태로 빚어진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성장의 하방 위험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2.3%)와 HSBC(2.4%) 등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으로 보고 있다. 특히 씨티그룹은 실물경제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민간 심리가 위축되면서 4분기 성장률 둔화 폭이 커지고 경기 회복세가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흔들리는 경제, 방향타도 잃었다
◆그나마 평가받던 공공 개혁도 올스톱

2017년에는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다양한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물결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파기 가능성,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등 경제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악화돼 가는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선 최순실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가 진행된 데 이어 특별검사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또 국회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면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사실상 멈추게 된 상황이다. 헌재 판결 여부에 따라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 정국 불안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매년 12월 중순에 이듬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한다. 지난해에는 12월 16일 발표했다. 이를 위해 10월 말~11월 초 청와대와의 조율을 통해 기본적인 정책 방향을 확정한 다음 부처별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을 확정한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국정 컨트롤타워가 와해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정책이나 세부적 추진 내용이 면밀하게 검토될지 의문이다. 더욱이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구조 개혁이나 창조경제·신성장동력 창출 등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 새 정책이 나온다고 한들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또 경제부총리 후보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내정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인사 청문회가 물 건너가면서 경제 사령탑 장기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졌던 게 사실이다.

청와대 시스템이 사실상 무너진 가운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의해 유일호 경제 부총리가 유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갈팡질팡하는 경제팀이 제대로 된 정책을 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이 청와대 근무 시절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이 최 차관 집무실까지 압수 수색에 나섰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는 그야말로 비선 실세 농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그동안 IMF·OECD 등은 우리의 구조 개혁이 기대보다 미진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꼭 필요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이러한 개혁 동력이 상실되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했던 규제 개혁 장관 회의부터 문제가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규제는 손톱 밑 가시”라고 비판하며 지난 5월까지 취임 후 다섯 차례에 걸쳐 규제 개혁 회의를 열었지만 앞으로 회의가 열려도 무게감이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회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

공공 개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 정부가 추진한 4대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 중 그나마 진전이 있다고 평가받는 게 공공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공공기관 워크숍을 통해 성과 연봉제를 도입하고 에너지·환경·교육 공기업의 기능 조정을 발표했다. 내년에는 정책금융·산업진흥·보건의료 기능 조정을 예고한 상태지만 실행될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12월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다시 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이와 함께 현행법상 대통령이 주재해야 하는 과학기술 전략 회의(지난 8월 주재)의 중량감도 떨어질 전망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후 34년 만에 부활된 ‘무역투자진흥회의’ 일정도 밀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각별히 신경을 쓰는 회의로, 경제 중·장기 체질을 개선하는 정책을 주로 내놓았다. 당초 이달 중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무기 연기됐다. 국민경제자문회의·국가재정전략회의·문화관광산업 경쟁력강화회의 등의 차질도 예상된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은 “이번 사태로 우리 경제 어딘가에 멍이 들었을 것”이라며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잠재성장률 곡선의 각도가 조금 내려가 중·장기적으로 성장률 곡선의 하락 폭이 더욱 급격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국정 공백으로 이렇다 할 힘도 못 쓰고 저성장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줄줄이 미뤄지는 경제 현안들

당장 눈앞에 산적한 문제에 대한 결정도 줄줄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자고 일어나면 불어나 있는 가계 부채가 발등의 불이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과 별도로 8·25 가계 부채 후속 대책을 연내 내놓을 예정이었다.

개인이 내야 할 총 원리금 상한선을 규제하는 ‘총체적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기준’, 상호금융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 등이 주요 내용인데, 국정 공백으로 시의적절한 방안이 나올지 미지수다.

금융권 고위직 인사 시계가 멈추며 각 기관의 경영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IBK기업은행장(권선주)은 12월 임기가 만료된다. 기술보증기금은 내년 1월, 수출입은행은 3월 수장의 임기가 끝나고 금융감독원 기획·경영지원담당 부원장보는 공석이다.

우리은행 본입찰에서 외국계 투자자들의 이탈도 걱정거리다. 지난 9월 18곳이 투자 의향서를 제출해 일단 흥행에는 성공한 상태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국가 신용 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실제 증시도 악영향을 받고 있어 외국계 투자자들의 참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글로벌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2월 6일 한국의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정책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정치 상황에 따라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 변동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여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경제팀 직원들이 실무를 해야 하는데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hawlling@hankyung.com

[개탄시대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대한민국 경제는 어디로
-[경제정책] 흔들리는 경제, 방향타도 잃었다
-[경제정책] 대통령이 샤머니즘에 빠졌다고 놀란 외신들
-[대기업]경영 시계 멈춘 기업에 난제만 '첩첩산중'
-[스타트업] '우리도 죄인입니까' 힘 빠진 스타트업
-[코스피] '정국'에 발목 잡힌 코스피, 볕 들 날이 없네~
-[국민의 트라우마] '순실증'에 빠진 국민 "치료법은 단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