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운영자와 작가의 끊임없는 도전, 단계적 진화 '계속' (사진)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에 담아 보여주는 크로스오버 콘텐츠 '특근'은 전체 이야기가 웹툰과 웹무비에 나눠 진행된다. 웹툰과 웹무비의 포스터.
[한경비즈니스=길덕 이노션 미디어컨텐츠팀장] 인기 웹툰(webtoon) 작가 조석 씨의 ‘마음의 소리’가 요즘 화제다. 이 만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웹드라마가 지난 11월 초부터 방영돼 조회 수 3000만 회를 넘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KBS 2TV는 이 드라마를 지난 12월 9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편성했다.
하병훈 감독이 연출한 이 시트콤은 웹드라마 버전에 몇 개의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첫 방송 시청률 5.7%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인기 웹툰이 웹드라마로 성공을 거두고 ‘레거시미디어(Legacy Media : 지상파방송 등과 같은 전통 매체)’까지 진출하는 콘텐츠 진화를 단계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에 앞서 드라마 ‘미생’, ‘치즈 인 더 트랩’, ‘우리 집에 사는 남자’, 영화 ‘내부자들’, ‘이끼’,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비롯한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새로운 한류 시장 여는 콘텐츠 비즈니스
웹툰은 다분히 한국적인 콘텐츠다.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cartoon)의 합성어인 웹툰은 2003년 포털 ‘다음’에서 ‘만화 속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PC나 스마트폰 전용 만화인 웹툰은 출판 만화와 달리 세로로 화면을 내려가며 본다. 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미국 등에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현재 국내 웹툰 시장은 유통을 담당하는 플랫폼, 콘텐츠를 공급하는 작가와 에이전시 그리고 이용자들로 구성된다. 플랫폼에는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대형 포털과 레진코믹스·탑툰·코미코 등 웹툰 전문 플랫폼들이 그 중심에 있다.
이런 플랫폼을 기준으로 한쪽에는 웹툰 이용자들이 있다. 이용자들은 PC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언제 어디서나 소비한다. 이들은 댓글과 평점을 통해 웹툰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능동적인 소비자다.
다른 쪽에는 웹툰 작가들과 에이전시들이 있다. 웹툰 작가들은 인쇄 만화 출신과 웹툰에서 시작한 작가들로 구분될 수 있다. ‘미생’, ‘이끼’, ‘내부자들’ 등의 윤태호 작가는 대표적인 인쇄 만화에서 이동한 작가이며 ‘마음의 소리’의 조석, ‘패션왕’의 기안84(김희민) 등은 웹툰에서 시작한 작가들이다.
웹툰 에이전시는 기본적으로 소속된 웹툰 작가들에 대한 매니지먼트, 작품 기획 및 운영, 해외 수출이나 드라마와 영화의 판권 판매 등 부가 판권 관리의 역할을 한다. 와이랩·누룩미디어·재담미디어·드림컴어스 등이 대표적인 웹툰 에이전시들이다.
웹툰 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는 플랫폼 영역에서 특이한 점은 강력한 포털들 사이에서 독립형 플랫폼이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대표 한희성, 이하 ‘레진’)는 지난 6월 IMM 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20%의 지분에 대해 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2015년 매출이 300억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회사의 미래 가치를 매우 높게 본 것이다. 당시 IMM PE 측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내 웹툰 시장의 성장성과 레진의 유료 웹툰 시장의 선도적 위치를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2년 설립된 레진은 2013년 6월 레진코믹스를 선보였다. 현재 85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이 회사는 2013년 10억원도 안됐던 매출이 2014년 103억원, 2015년 318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11월 말 기준으로 레진코믹스에 작품을 연재하거나 완료한 작가는 540여 명이고 레진코믹스를 통해 등단한 신인 작가는 360여 명이다. 2015년 7월에는 일본, 같은 해 12월에는 미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글로벌 웹툰 전문 플랫폼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것이다.
서현철 운영총괄은 직함처럼 레진코믹스는 서비스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즉 연재 웹툰, 디지털 만화(출판 만화를 디지털로 변형한 것), 소설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의 배치와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미국·일본·한국 등 3개 채널의 서비스 정책을 세우고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서 총괄은 “사업 규모가 해외까지 커지고 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가 레진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다”며 “이에 어울리는 서비스와 시스템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적 요구를 종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레진 서비스뿐만 아니라 경쟁 웹툰 서비스나 해외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을 이용하면서 이용자가 가장 원하는 방식이 무엇일지 항상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레진엔터테인먼트 서현철 운영총괄.
◆단순한 만화 아닌 ‘멀티 콘텐츠’ 중심
레진코믹스는 초기 성인물 위주로 시장에 진입한 후 장르를 넓혀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 총괄은 다소 억울해했다. 그는 “레진코믹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성인물 비율이 30% 정도이며 그 성인물은 야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이 좋아할 수 있는 장르와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부 작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귀담아듣고 있다”며 “하지만 문화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시도가 계속돼야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멸균실처럼 바르고 좋은 이야기만으로는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레진이 도를 넘는 자극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정교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전문적인 만화 편집 경험을 가진 CCP(Chief Content Producer)들이 작품에 대한 기획에서부터 연재가 종료될 때까지 작가들과 함께 밀착해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 자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지나친 묘사는 사전에 조율하고 있다.
서 총괄은 웹툰 전문 플랫폼들이 포털 서비스와 다른 면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포털은 광고가 주요 수익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웹툰을 발전시킨 반면 웹툰 전문 서비스는 유료화라는 사업모델을 성공시키기 위해 다른 전략을 구사해 왔다”고 설명했다.
포털 웹툰은 누구나 보기에 편한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공급한다면 레진은 서사 구조가 강해 다음 내용이 궁금한 웹툰들을 주로 연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웹툰에 가장 애정이 가느냐는 질문에 서 총괄은 종이 책으로 나오는 작품들이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특히 레진은 주요 웹툰을 출판할 때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인 텀블벅을 활용하기도 한다. 독자들도 출간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출판된 작품들이 ‘여자 제갈량’, ‘4컷용사’, ‘우리사이느은’, ‘유럽에서 100일’ 등이다. 일본에서도 ‘아만자’라는 웹툰이 일본 대형 출판사인 가도카와와 계약하고 지난 7월 말 출판됐다. 젊은 말기 암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일본 레진코믹스에서 조회 수 1200만 회를 기록한 작품이다.
레진의 오프라인 진출은 출판에서 영상화로 이어지고 있다. ‘조국과 민족’, ‘너의 돈이 보여’, ‘우리사이느은’ 등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웹툰의 영상화가 성행하는 이유에 대해 서 총괄은 “많은 사람들이 웹툰의 스토리와 캐릭터에 익숙하기 때문에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화될 때 팬덤 역할을 해준다”고 설명했다.
최근 콘텐츠를 기획할 때 웹툰·웹드라마·드라마·영화·게임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데, 이때 일반적으로 웹툰이 가장 먼저 시작된다. 그는 “웹툰은 제작비가 다른 콘텐츠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특히 연재 과정에서 독자들과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며 스토리와 캐릭터를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 산업의 변화와 진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웹툰 원작의 영상화나 게임 출시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고 웹툰과 웹소설이 결합된 콘텐츠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해외 웹툰의 국내 진출, 국내 웹툰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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