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지금은 ‘집단지성’으로 미래 먹거리 창출해야…‘기계 만능’엔 한계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지났다
(일러스트) 전희성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요즘 글쓰기에 대해 관심이 뜨겁다. 좋은 일이다. 누구나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글은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설득할 수도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많은 글쓰기 강좌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가장 큰 덕목은 자신이 직접이건 간접이건 얻은 지식과 경험을 자기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건 그리고 세상 등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주인이 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의미와 가치라고 여긴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꿔 보면 뜻밖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미리 밝힐 것은, 필자가 제안하는 방식이 절대로 옳다거나 다른 여러 글쓰기 강좌나 관련 책들을 폄훼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가치 있는 방식이다. 글쓰기에 대한 그러한 전략적(?) 이해와 접근 방식도 중요하고 쓸모 있다. 그러면 어떤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가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스무 명의 사람들이 모여 글쓰기 강좌를 열었다고 하자. 글쓰기 방법 등을 먼저 학습하지 않고 모두 함께 밖으로 나간다. 조건은 딱 하나. 등속도로 걷는 것뿐이다. 빨리 걸어도 멈춰도 안 된다.

그냥 똑같은 속도로 30분쯤 걷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글을 쓴다. 글감은 아까 갔던 그 길. 어떤 사람은 길 전체에 대해 쓰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나의 소재를 골라 쓰기도 한다.

무엇에 대해 쓸까 고민하다가 아까 자신이 걸었던 길에서 힐끗 봤던 작은 들꽃을 소재로 삼을 수도 있다. 그 순간 자신은 길을 멈춘다.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아까는 분명 힐끗 봤을 뿐인데 그걸 소재로 삼는 순간 그 대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대상은 뜻밖에 많은 이야기를 자신에게 건넨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그려낼 수 있고 느낌도 달라진다. 그게 바로 직관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확장할수록 꽃에 그치지 않고 그 주변의 사물들까지 떠오른다. 시각적 정보마저 확장되고 재해석된다.

요즘 많은 학자들이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10년 전쯤이라면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요즘 과연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예전에는 기계는 ‘직관·상상·명령’ 등의 일을 수행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기계도 직관할 수 있다.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바둑 대결은 그것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직관과 영감도 집단지성화해야

21세기의 미래 가치와 의제에 대해 누구나 말한다. 분명히 새로운 프레임과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기다. 하지만 무조건 새로운 것만 찾으려 드는 것은 에너지만 낭비하고 자칫 우왕좌왕하기 십상이다.

솔직히 말해 교육과정에서 창의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거의 없고 사회도 그런 것을 소화하고 구체적 방식을 요구한 적도 별로 없다. 오히려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며 새로운 사고로 전환하면 뜻밖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저 선언적으로만 되풀이할 게 아니다. 글쓰기 하나에서도 생각과 방법만 바꿔도 엄청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리의 교육은 각 개인의 지적 집산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평가되고 대가가 주어졌다. 한 사람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논리도 그런 점에서 강화됐다. 심지어 21세기에도 우리 교육은 그런 개인적 수월성(excellency)에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는 한 개인의 뛰어난 역량에 따라 결실이 결정되는 시기가 아니다. 한 사람의 많은 지식보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지식이 집단지성의 방식으로 연대하면서 개인의 역량과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더 머뭇거리다가 이대로 주저앉아 붕괴될 수 있다. 그 시기가 머지않았다. 더 늦기 전에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교도 사회도 기업도 모두 변해야 한다. 끊임없이 묻고 캐고 따지며 함께 모여 토론하고 서로 영감을 얻어야 한다. 그러한 집단지성의 방식이 미래 가치와 먹거리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받은 교육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도 적지도 않다. 속도와 효율 시대에 지식마저 압축파일로 학습했다. 요즘의 교육 내용을 보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많다. 문제는 그걸 풀어내거나 입체적으로 재해석하지 못하고 단순히 집적한 것으로는 아무 힘도 경쟁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기왕의 지식을 새롭게 조망하고 해석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감을 주고받으며 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