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고릴라의 ‘털 골라주기’는 바로 ‘소통’...아재에게도 소통이 필요하다
아직까진 ‘효자손’이 싫다고 전해라


(사진)일러스트 전희성

[한경비즈니스=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한때 ‘386세대’란 말이 유행했다. 처음에는 30대 나이로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대학 시절 전두환 독재 정권에 맞서 비판의식·저항의식을 키운 이 세대들이 자신들의 위아래 연배보다 상대적으로 사회의식이 좀 더 개혁적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다가 이들이 차츰 나이가 들면서 486·586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소위 386들의 나이가 명실상부한 기성세대가 되면서 ‘구태의연한 기득권 세력’이란 부정적인 의미까지 풍기게 됐다.

최근 한 저널리스트가 386세대를 가리켜 ‘68세대’라고 칭하는 것을 봤다. 아마도 프랑스 68세대를 연상해 한 말 같다. 프랑스에서 68세대는 1968년 5월 드골 정권의 실정에 맞서 들고일어난 68혁명 혹은 5월 혁명 당시의 주도 세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65년에 태어나 80년대 전두환 정권하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소위 운동권 서클에서 의식화 학습도 받아봤고 ‘짱돌’에 ‘꽃병’도 던졌고 대학신문에서 학생기자 노릇도 해봤으니 나야말로 전형적인 68세대일 것이다.

◆‘손자의 손=노인의 즐거움’이 뭘까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내게 뭔가를 불쑥 내민다. ‘효자손’이다. 영어로는 ‘등긁개(back-scratcher)’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노인의 즐거움(老頭樂)’ 혹은 ‘사람이 필요 없음(不求人)’이라고도 한다. 일본인들은 ‘손자의 손(孫の手)’이라고 한다.

하여간 효자손을 넘겨받은 나는 어리둥절하다가 “푸하하”하고 폭소를 터뜨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이유를 짐작하고 따라 웃었다. 최근에 내가 아내더러 자주 등을 긁어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아내는 “영감도 아니고 무슨 등을 긁어 달라고 그래”라며 싫은 기색을 내비쳤다.

샤워 전이면 “샤워도 안 하고 지저분하게”라면서 버티고 샤워하고 오면 “보디로션을 바르든가, 오일을 바르든가 해”라며 내뺐다. 하지만 나는 화장품이라고는 스킨로션 하나만 겨우 바르고 다니는 사람이다. 다른 뭔가를 몸에 바르는 건 딱 질색인 사람이다.

사반세기 넘게 함께 살아 내 스타일을 뻔히 아는 아내가 효자손을 내밀었다. 매일 저녁도 아니고 어쩌다 등 한번 긁어 달라는 게 그렇게 싫단 말인가. 솔직히 나는 아내가 부드러운 손으로 등을 긁어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 상쾌한 기분을 효자손이라는 도구가 어찌 대신할 수 있으랴.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영장류들이 서로 털을 골라 주는 행동을 ‘그루밍(grooming)’이라고 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언어가 이런 그루밍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비교적 소수가 배타적인 집단을 이루고 사는 영장류들이 서로 털을 골라주는 과정에서 친밀감이 싹튼다.

집단에서 추방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영장류 사회에서 집단 구성원 간의 상호 협력을 위한 친밀감 형성은 생존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집단의 수가 일정한 수를 넘어서면 일대일로 공평한 그루밍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계속적으로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이용한 감정의 주고받기로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데, 이것이 언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루밍의 일환으로서의 등 긁기는 인류학적·심리학적으로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루밍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친밀함을 유지하고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서로’가 몸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역사적인 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그루밍의 한 방편인 서로 간의 등 긁어주기를 거부하는 아내의 행태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거부하는 반인류학적·반심리학적인 폭거가 아닐 수 없다.

너무 거창하게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런 논리로 반박하면 아내는 코웃음을 치고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내 등을 긁어 주면 나도 당신 등을 긁어줄게!” “흥! 됐거든. 난 가렵지도 않고 꼭 필요하면 효자손으로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