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935명에서 1만2526명으로, 자산 29억원에서 257조원으로 성장 (왼쪽) 1961년 설립 당시 종로구 경지동에 소재한 중소기업은행 본점 전경. (오른쪽)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자리한 IBK기업은행 신축 본점. /IBK기업은행
[한경비즈니스 = 정채희 기자] IBK기업은행이 오는 8월로 56주년을 맞는다.
중소기업 전담 금융회사로 창립된 이 회사는 어느덧 산하에 IBK캐피탈·IBK자산운용·IBK시스템·IBK신용정보·IBK투자증권·IBK연금보험 등 자회사를 거느린 IBK기업은행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사이 은행의 직원 수는 935명에서 1만2526명으로, 자산은 29억원에서 257조원으로 늘었다. 대한민국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한 IBK기업은행의 56년 발자취를 좇았다.
◆1960년대, 중소기업 전담 금융회사 창립
1961년 8월 1일. ‘중소기업의, 중소기업을 위한, 중소기업에 의한’ 금융회사가 설립됐다. IBK기업은행의 시초인 중소기업은행의 출발이다.
역사는 무려 1950년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시 상황에서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이 진행되자 남한 정부는 강력한 금융 긴축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중소기업 전담 금융회사를 설립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정부는 이를 위해 1961년 법안을 마련했다.
법안은 △농업은행의 도시 점포를 모체로 지점을 설치하고 △정부와 중소기업자의 공동출자를 원칙으로 삼아 △중소기업금융과 서민금융을 겸하면서 여신에 주력하는 것을 업무 내용으로 하는 것이 골자다.
즉 현재 농협의 전신인 농업은행이 농협과 중소기업으로 분리되면서 오늘날 IBK기업은행이 탄생한 것이다.
시작은 초라했다. 농업은행 경기도 분실 건물을 잠정 임차해 본점으로 사용했고 자본금은 2억원, 총자산 29억원, 전국 31개 지점, 935명의 직원으로 출발했다. 초대 행장에는 박동규 농업은행 전 총재가 임명됐다. (사진) 1978년 4월 14일 서울 영업부와 부산북지점간 온라인 개통식. /IBK기업은행
◆1970~1980년대, 대출금 규모 확대·전산화로 생산성 향상
중소기업을 성장 파트너로 삼아 기업은행도 양적 성장을 거뒀다. 창립 연도인 1961년 말 불과 28억원 수준이었던 총대출금 규모는 1970년 말 500억원, 1980년 말 1조원에 이르는 등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 이에 힘입어 1979년 8월 납입 자본금을 270억6000만원으로 증액했다.
또 이 기간 전산화를 본격화하며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1977년 전용 컴퓨터를 최초로 도입했고 이듬해 영업부와 일부 지점 간 예금의 온라인 처리 시대를 연 것이다.
해외 교두보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80년대 중소기업 수출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외 점포망 확대가 요구됐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1980년 미국 뉴욕에 최초의 사무소를 개설한 뒤 도쿄와 런던에 잇따라 사무소를 지으며 현지 금융회사와 금융 소비자 간 영업 활동을 전개했다.
국내외 성과에 힘입어 1987년에는 신사옥 시대를 열었다. 현재의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 신축하며 본점을 이전했다. 지상 20층, 지하 5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이었다. (사진) IBK기업은행 해외 주요 점포 현황(중국 신규 점포 제외), 현 11개국 27개소. /IBK기업은행
◆1990~2000년대, 해외 진출 본격·구조조정 시련도
1990년대 들어선 다자간 무역 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 논의,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등 국제화 시대가 찾아왔다. 기업은행도 국외 점포망 확충을 본격화했다.
1990년 뉴욕 사무소를 지점으로 개편하며 국책은행 최초의 해외 지점을 열었다. 이듬해에는 룩셈부르크에 이 은행 최초의 현지법인인 유럽기업은행을 개점했다.
이후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뤘다. 도쿄·홍콩·톈진·칭다오지점 등을 개설했고 2000년 후반 들어선 베트남·필리핀·러시아 등 성장이 기대되는 국가에 연결망을 확대했다.
이 시기에는 시련도 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중소기업금융 전담 은행인 기업은행 또한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았고 당시 추진한 국제화 전략에 큰 타격을 입었다.
기업은행은 해외 거점 일부를 일시적으로 폐쇄했고 명예퇴직, 자회사 통폐합 등 창립 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자회사 간 흡수 합병으로 기은캐피탈이 신규 출범했다. 이후 대규모 자본금 확충으로 IMF 위기를 극복한 기업은행은 1999년 수출입 실적 100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엔 자회사 한일신용정보와 2004년 기은SG자산운용, 2008년 IBK투자증권 등을 설립하며 종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금융그룹’의 기틀을 마련했다.
노력의 결과는 경영지표에서도 나타났다. 2006년 말 설립 후 최초로 총자산 100조원, 시가총액 10조원, 당기순이익 1조원을 달성하며 ‘순이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당시 글로벌 은행의 국내 진출로 토종은행들이 생존 위협을 받는 경영 환경에서 인수·합병(M&A) 없이 독자적으로 이뤄낸 성과란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진) 2007년 1월 4일 새로운 기업 이미지(CI) 선포식. /IBK기업은행
◆2010년대, 'IBK' 글로벌 선진 금융을 향해 2007년 기업은행은 새로운 기업 이미지(CI)인 ‘IBK기업은행’을 선보였다. 회사는 ‘글로벌 50대 은행’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같은 해 미국에서 집값 하락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발하면서 IMF에 이은 금융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는 IBK기업은행에 대규모 현물출자·현금출자를 단행하며 중소기업의 신용경색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 글로벌 위기를 넘을 수 있었다.
2010년 12월 29일. 제23대 행장에 ‘공채 출신’ 조준희 씨가 취임하며 창립 50년 만에 ‘민선 행장’의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 5월에는 IBK기업은행 개인 고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2016년 12월에는 기업 고객 수가 130만을 돌파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연결 총자산 257조원, 국내 점포 634개, 해외 점포 27개 등 총 661개, 1만2526명의 직원 수 등 질적 성장과 함께 규모의 성장도 이뤘다.
2016년 12월 말, ‘최초’ 여성 행장인 권선주 전 행장에 이어 제 25대 행장으로 김도진 행장이 취임했다.
김 행장은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서 IBK기업은행이 살아남기 위해선 수익 비율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보고 해외와 자회사 이익 비율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지 M&A와 지점 설립, 지분 투자 등을 확대하고 또 은행과 자회사 간 시너지를 확대할 계획이다.
poof34@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