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소통의 9할은 ‘비언어적 소통’…e메일·문자 메시지보다 ‘대면 접촉’ 중요
‘이해’하고 싶다면 ‘만나라’
(일러스트 전희성)

[한경비즈니스 칼럼=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총명한 두뇌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통찰력에다 강한 추진력까지 갖춘 최고경영자(CEO)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급한 성미의 그에게 보고를 할라치면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중간에 끼어들어 결론까지 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필자가 고안한 방법은 A4 한 장짜리 보고서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그가 보고서를 읽는 동안 필자는 그의 얼굴 표정을 읽는다. 어떤 논평이나 결론이 나올지 짐작할 수 있어 일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인간은 타인의 표정에 민감해

먼 옛날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아프리카 사바나초원에서 생활할 때부터 타인의 표정을 살피는 것은 생존에 큰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자나 검치호(劍齒虎) 등 치명적인 포식자에게 쫓겨 도망가는 동료의 겁에 질린 표정을 봤다고 치자. 일순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뒤따라 도망가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포식자는 가련하게도 가장 뒤처진 한둘을 먹이 삼는 것으로 그날의 사냥을 마무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상위 지배자의 분노한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치 없이 까불었다가는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 침팬지나 고릴라는 물론이고 사람들도 지위가 높은, 예컨대 전제군주의 정서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겁 없이 아무 발언이나 행동을 했다가는 삭탈관직은 기본이고 유배나 사약을 받은 사례는 역사책에 차고 넘친다.

하버드대의 폴 월른 박사팀이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이라는 방법을 만들어 실험했다. 이 방법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사람의 사진을 아주 잠깐(0.01~0.03초) 보여주고 그보다 더 긴 시간(0.167초) 동안 무표정한 얼굴 사진, 즉 ‘가면’ 사진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뇌 혈류량의 변화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뇌를 스캔하는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겁에 질린 표정의 사진을 의식할 수도 없는 매우 짧은 시간만 봤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본 기억을 못하지만 그 사진을 본 순간 두려움을 관장하는 대뇌 편도체로 가는 혈류량이 증가했다.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뇌는 반응을 끝낸다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는 타인의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이 실험은 잘 보여준다.

◆전 대통령의 비대면 보고, 소통 무시한 것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에 따르면 침팬지는 신체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자신이 키우는 침팬지들이 자신보다 자신의 기분을 더 잘 파악한다는 것이다.

유인원이 신체 언어를 통해 상대방의 기분이나 속내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신체 언어가 말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언어적 소통은 채 1할이 되지 않는다. 얼굴 표정, 음성, 신체 언어 등 비언어적 소통이 9할 이상이다. 무미건조한 혹은 화려한 수사로 가득 차 본질을 왜곡하기 십상인 e메일이나 휴대전화 메시지보다 음성 전화가 소통에 더 유리하고 비언어적 신호를 잘 감지할 수 있는 ‘대면 접촉’이 의사소통에 훨씬 유리하다는 소리다.

“타인의 얼굴을 읽을 수 없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현대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의 합리적 추론과 “얼굴빛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것은 소경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는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직관적 통찰이 놀랍도록 일치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그러므로 장관과 수석 비서관들에게 “꼭 대면 보고가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한 전직 대통령의 발언은 스스로가 너무나 소통과 공감에 무지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세종청사에 있는 공무원들이 하루 평균 8000만원, 연간 260억원의 출장비를 쓰는 것은 대면 접촉을 갈구하는 그들의 무의식적 욕망의 눈물겨운 표출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