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위한 독서가 전부는 아니다
다시 읽으며 새롭게 만나는 것도 즐겁다
(사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

[한경비즈니스 칼럼=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처음 읽었던 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조금은 짜릿하고 조금은 두려웠으며 한편으로는 흥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역겹기도 했다. 그럴 나이였을 것이다. 사춘기 소년에게는 흥미와 불편함이 공존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 불편함의 원인을 채 모르는 나이였다. 그 소설은 사춘기 소년에게 묘한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도덕을 강요받고 이성적 사고를 강화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학습됐기에 반항과 욕망의 꿈틀거림에 그 소설만큼 강렬하게 자극하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지킬 박사는 이성적이고 존경받는 인물이다. 누구나 그런 삶을 꿈꾼다. 하지만 욕망을 감출 수는 있지만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우연하게 손에 넣은 약을 먹으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그는 욕망을 그대로 발산하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루커 경을 죽였고 어린 여자아이도 잔인하게 짓밟는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서슴지 않았고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그 약을 마시면 착하고 이성적인 지킬 박사로 변모하는 모습은 짜릿함과 동시에 도덕적 안도감을 동시에 주는 묘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다시 읽으면 생각도 달라진다

하지만 거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약을 먹지 않아도 저절로 하이드로 변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것은 이미 욕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원초적 문제를 상징한다. 다만 그때는 욕망을 이겨내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르는 나이였다. 그 나이에 인간의 이중인격적인 면모를 알게 된 것만으로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던 것도 기억에 새롭다.

대학생 때 다시 그 소설을 읽었다. 서양사 시간에 산업혁명을 설명하면서 교수가 그 소설을 읽어 보라고 추천했다. 그게 산업혁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내심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소설이 1886년에 출간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느꼈다.

당시는 산업혁명의 절정기였다. 기존의 낡은 세상과 결별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스티븐슨은 욕망이 발화되려고 하지만 사회적 인식과 의식은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시대정신을 읽어 냈다. 그는 ‘욕망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아직은 감당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스티븐슨은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과 타락을 은연중 비판하면서 겉으로는 점잖지만 속으로는 욕정 가득한, 위선이 가득한 당시 주류 사회를 고발하는 의도를 소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성과 욕망은 서로 모순되고 갈등하는 것이다. 그 한계를 소설이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이 지킬 박사의 자살에서 상징된다. 그것은 그 시대의 한계이며 절망의 모습이지만 또한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에 대한 예언이기도 했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욕망의 주체성은 인식했지만 그것을 현실화하기에도 버겁고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시기의 산물이었던 것은 그가 시대정신을 읽어 내기는 했지만 실천적 현재로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지킬과 하이드가 한 존재 내에 존재하면 자아분열이나 다중인격의 나락에 빠진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다.

그는 의식의 세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이 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의식의 세계와 욕망의 세계가 한 인물에게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결국 프로이트는 스티븐슨이 던진 19세기 한계의 문제를 20세기의 문을 열면서 해결한 것이다. 드디어 인간은 정치(프랑스혁명)와 경제(산업혁명)의 해방과 함께 인식의 해방을 누리게 된 것이다.

스티븐슨의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이 프로이트에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소설 한 편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소한 듯한 묘사와 서술이 단순히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그려낸 것에 그치지 않고 매우 섬세한 상징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읽어 낼 수 있는 안목이 성장하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 가끔은 읽었던 책을 다시 차분히 읽어보는 것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위한 새로운 책을 읽는 것과 다른, 매우 깊은 울림과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