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에 대한 해석의 이중성…은혜롭거나 혹은 모욕적 (일러스트 전희성)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요즘 항공사가 제 잘못을 고객에게 덮어씌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미국의 모 항공사에서 승무원을 태우려고 정당하게 탑승한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려 빈축을 산 일이 있다.
거꾸로 이른바 ‘진상’ 고객도 많다. 한국 모 기업의 임원이 기내에서 횡포를 부린 ‘라면 상무’ 사건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에는 국적기에서 술에 만취한 승객이 그를 제지하는 승무원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얼굴에 여러 차례 침을 뱉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몹시 긴장되고 초조할 때 우리는 마른침을 삼킨다. 배가 고플 때 앞에 맛있는 음식을 보기만 해도 우리는 군침을 흘린다. 두 살 이하의 어린이들이나 파킨슨병 환자들처럼 근육 활동이 미진해 침을 흘리는 이도 있다.
이런 생리적·병리적 현상으로서의 침을 흘리는 일은 차치하고 위의 진상 고객처럼 다른 사람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은 어떤 심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침’의 의미도 여러 가지
침은 이중적인 상징을 가진다. 하나는 ‘은혜로운 초자연적인 힘’을 상징한다. ‘요한복음’에 예수는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치료할 때 침을 사용한다. 예수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맹인의 눈에 바른다.
심리학자인 안셀름 그륀에 따르면 흙은 비천함과 겸손함을 상징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인류의 조상은 가장 하찮은 흙에서 빚어졌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 진흙에다가 ‘아이의 상처에 침을 발라주는 어머니’를 상기시키는 침을 개어 발라주는 것이다.
여기서 맹인은 날 때부터 눈이 멀어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이고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메마른 사람의 상징이다. 예수는 그런 태생 소경의 눈에 침으로 갠 진흙을 발라줘 겸손과 사랑을 느끼라고 말하면서 그를 치유한다.
한편 침을 뱉는 행위는 ‘모욕’·‘복수’·‘거부’를 나타내기도 한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침을 뱉는 행위로 세례를 대신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맹인을 치료하는 예수의 행동과 달리 사탄과의 절연, 즉 사탄을 ‘거부’하는 것을 가시적인 형태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빌라도 총독의 병사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게 침을 뱉는 행동 역시 항공기 진상 고객이 승무원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은 ‘모욕’과 ‘복수’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이런 유형의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정치인 맹상군의 얘기다. 3000명의 식객을 거느릴 정도로 인심 좋고 능력 있는 정치인이었던 맹상군이 그의 힘이 날로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제나라 왕에 의해 실각한다.
야박한 식객들은 썰물처럼 떠나갔다. 다행히 심복 풍환의 노력으로 맹상군은 재집권한다. 다시 식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맹상군은 치를 떨며 풍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루아침에 나를 버렸던 자들이 무슨 낯짝으로 다시 나타난단 말이요. 내 그들을 만나면 얼굴에 침을 뱉어 모욕할 것이요.” 물론 맹상군은 ‘바닷물은 온갖 하천의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海水容納百川)’라며 간곡히 부탁하는 풍환의 말을 듣고 식객들을 다시 받아들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전에 기자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근대화의 주역으로서의 자부심과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자로서의 오명을 함께 가졌던 박 전 대통령. 그의 이 말은 아마도 자신을 너무 미시적·주관적으로만 보지 말고 사후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공과를 평가해 달라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19대 대통령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아울러 국민 대통합을 선도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견인해 줬으면 좋겠다. 퇴임 후 백성들이 뒤에서 침을 뱉는 군주가 아니라 모두에게 크게 칭송받는 성군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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