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격 급등…중앙은행, 새 통화지표 개발해 예측력 강화해야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격이 지속적으로 치솟음에 따라 중앙은행의 변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에서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도 새로운 환경에 맞게 중앙은행이 변신해야 한다는 주장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미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고 주목받는 것은 중앙은행의 목표가 정책 여건에 맞게 수정되고 있는 점이다.
팽창하는 가상화폐, 중앙은행 변신 재촉
팽창하는 가상화폐, 중앙은행 변신 재촉
중앙은행의 목표는 전통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천사와의 키스’만 할 것을 주장해 왔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악마와의 키스’라고 할 정도로 금기시해 왔다.



하지만 온라인과 모바일의 발달로 세계경제의 물가는 추세적으로 안정돼 왔다. 대부분 국가의 물가는 중앙은행이 설정한 인플레이션 목표 선을 밑돌고 있다.



그런 만큼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만 고집하기보다 성장·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악마와의 키스’가 ‘천사와의 키스’로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과거 통화정책 유효성 점점 감소


이미 중앙은행은 2012년 12월부터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는 최근에는 오히려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해 왔다.
팽창하는 가상화폐, 중앙은행 변신 재촉
팽창하는 가상화폐, 중앙은행 변신 재촉
옐런 의장의 이런 시각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던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이다. 이 준칙은 Fed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두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정책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용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면 물가가 일시적으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옐런 의장의 이러한 주장은 어떤 경우든 통화정책이 물가 목표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른 준칙과 대조적이다. 통화론자들은 특정 국가가 금리 등을 변경할 때 ‘통화 준칙(monetary rule)’에 따를 것을 주장해 왔다.

이를테면 한국은행의 인플레 목표선이 2%일 때 이보다 물가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통화 준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물가 이외의 고용 등 다른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기준금리를 변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최적통제준칙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 방식이다. 통화론자의 시각에서 보면 ‘악마 중의 악마와의 키스’인 셈이다.


또 하나 중앙은행의 변신을 서두르게 하는 것은 가상화폐다. 최근 들어 가상화폐는 빠른 확산만큼이나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추세다. 포인트·마일리지·쿠폰·지역화폐 등 대안 화폐도 상용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현찰이 필요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개인의 화폐 생활이 변함에 따라 통화정책 여건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종전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가상화폐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중앙은행, 예측력 강화 시급


여러 과제 중 가상화폐에 따른 본질적인 문제와 함께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중앙은행의 예측력을 강화하는 과제가 시급하다.

지금처럼 다른 전망 기관에 비해 예측력이 높지 않고서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거나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 모델 재설정, 시계열 일관성 유지, 정성적 평가 등을 고민해 봐야 한다.


특히 신뢰를 확보하는 과제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를 끌어올리는 데도 중요하다. 가상화폐 확산 등으로 갈수록 불확실하고 길어지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자주 바꾸거나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예측치를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 추진 과정에서 흐트러진 정책 수단과 중간 조작, 최종 목표 간 인과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테면 중앙은행은 성장과 물가 간 우선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금리 조작이냐, 통화량 변경이냐’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추세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서는 중앙은행 목표, 통화정책 관할 범위, 적정 금리 산출 방식, 감독 범위 등도 재설정해야 한다.


가상화폐 확산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맞게 새로운 통화 지표를 개발해 통화유통속도·통화승수 등을 정확히 추정해야 한다. 갈수록 가속이 붙을 가상화폐 발행에 대한 규제와 위조지폐 방지 등을 통해 ‘폐지 혹은 무용론’까지 불고 있는 현금의 위상도 강화해야 할 때다. 각종 가중치와 산출 방식 현실화를 골자로 한 통계 개편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모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돼야 한다. 고유 권한인 금리 결정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발달 등에 따라 우려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 수단을 개발하는 데 밤낮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관행대로 통화정책을 추진했다가는 효과는 고사하고 독립성과 신뢰성에 손상을 받으면서 ‘중앙은행 축소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