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Ⅱ : 중부 진출 기업]
롯데그룹·LG생활건강·팬코 등 잇단 진출…효성도 12억달러 규모 투자 추진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적절한 대응과 전략이 필요하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요즘 같은 때에는 남들보다 한 발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기업 투자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다 뛰어든 시장에 후발 주자로 참여하는 것은 결국 뒤처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이 뛰어들지 않은 시장에 한 발 빨리 나서는 것은 ‘한 발+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시장 선점에 대한 보상이다.

이는 패션그룹 한세실업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2001년 국내 패션 기업으로는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세실업은 중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하면서도 인력의 질적 수준이 높아 활용도가 뛰어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곧장 현지법인(한세VN)을 설립했다.

당시 베트남은 미국과 정상 교역 관계가 아니어서 대미 수출 관세율이 다른 국가보다 3~4배 높았지만 한세실업은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렸다.

이후 베트남과 미국이 정상 교역 관계(NTR)를 맺자 관세율이 낮아졌고 한세실업은 베트남 진출 10년 후에 베트남 내 미국 의류 수출 1위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현대미포·두산重 발빠른 투자로 성공
(사진) 베트남 중부 다낭에 있는 두산중공업의 ‘두산비나’./ 두산중공업 제공


◆ 정부 계획하에 추진되는 빠른 개발

요즘 베트남에는 한세실업처럼 남들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는 한국 기업들이 여럿 있다.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언제 시작됐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진출했던 북부(하노이)와 남부(호찌민) 지역이 아닌 중부 지역(다낭을 중심으로 광찌성에서 달랏성) 투자 이야기다.

KOTRA와 베트남 기획투자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기업의 투자는 총 184건이다. 투자 규모만 370억1800만 달러다.

연도별 투자금액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13년 42억9000달러, 2014년 73억2000만 달러, 2015년 67억2000만 달러, 2016년 68억9000만 달러, 올해 상반기 45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00대 초반만 해도 관광지에 불과했던 중부 지역에 투자가 진행된 근본적인 이유는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의 중부 지역 개발에 대한 의지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베트남이 해외 기업 투자 유치를 통해 연 6%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제조업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더 이상 북부와 남부 지역의 투자 유치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을 내렸다.

더욱이 북부와 남부의 줄어드는 땅과 인력의 한계로 발생한 토지 사용료와 인건비의 상승이 해외 기업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다. 그가 결국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해외투자가 거의 없던 중부 지역 개발이었다.

중부 지역의 한 투자 유치 관계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중부 지역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과거 베트남 정부가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펼쳤던 것처럼 투자 기업에 대한 각종 혜택과 저렴한 인건비가 해외 투자 기업들을 그러모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미포·두산重 발빠른 투자로 성공
(사진) 베트남 중부 다낭에 진출한 롯데마트./ 롯데마트 제공


◆ 점점 좋아지는 투자 환경

최근 북부와 남부 지역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투자 유치 자세를 보면 몇 년 전 매우 적극적이었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인 투자가 대폭 증가하며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하노이나 호찌민 인근의 투자 인기 지역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한 편이다. 반면 투자 유치 여건이 열악한 중부 지역은 해외 기업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기업들을 서로 데려가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대도시로부터 멀어도 사업에 큰 지장이 없는 기업들과 건설·부동산 개발 등의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발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값싼 인건비가 사업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집약적 사업군까지 속속 자리 잡고 있다.

중부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주요 사업을 보면 투자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조선 및 중공업 기업이 진출했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 초반에는 건설·부동산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졌다.

2010년 중반부터 섬유·봉제 생산 공장과 대규모 쇼핑몰까지 진출했다. 올해 역시 투자가 이어져 플라스틱 생산 공장을 비롯해 태양광발전소 기업까지 세워졌다.
현대미포·두산重 발빠른 투자로 성공
◆ 2000년대 진출 기업의 성공 가도

중부 지역에 진출한 최초의 국내 기업은 현대미포조선이다. 중부 지역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인 1999년 베트남 국영 조선공사와 7 대 3 비율로 투자를 진행해 중부 콴호아 성의 냐짱에 현대·비나신조선소라는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현대미포조선이 이 지역에 진출한 이유는 동남아의 중요한 해상 항로에 자리해 있고 습도·강수량 등 조선소 건설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리적 여건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또한 저렴한 노동력과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풍부하다는 점이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런 현대미포조선의 판단은 적중했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조선업 불황으로 국내 조선사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대미포조선은 동남아 최대 규모인 현대·비나신조선소의 수주량을 발판 삼아 10분기 이상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내 조선사 6곳 중 유일하다.

2006년 베트남 중부 지역에 진출한 두산중공업 역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당시 베트남 진출 외국 투자 기업 중에서는 최대 규모인 3억 달러를 투자하며 중부의 다낭에 ‘두산비나’를 설립한 두산중공업은 최근 몇 년간 굵직한 수주 계약을 연이어 체결했다.

2010년 몽중2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 2013년 빈탄4 화력발전소, 2014년 응이손2 화력발전소, 2015년 송하우1 화력발전소, 2016년 빈탄4 익스텐션 화력발전소 등 최근 5년간 7조원 규모의 수주를 달성했다.

2012년 베트남 중부 지역에 진출한 썬라이즈그룹은 현재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투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푸엔성 신도시 건설 사업으로 투자금만 1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보다 베트남에서 더 잘 알려진 중견 건설업체 대원 역시 베트남 다낭시에서 2억5000만 달러에 이르는 ‘다푸 국제 신도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0년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이후 하노이와 호찌민 등 대도시의 상가와 아파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데 이어 중부 지역까지 진출했다.
현대미포·두산重 발빠른 투자로 성공
◆ 점점 발전하며 다양한 산업군 진출

조선·건설 이외 업종으로 중부 지역에 진출 기업 중 눈에 띄는 기업은 단연 롯데그룹이다.

2008년 국내 유통 업체 최초로 남호찌민점을 오픈하며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롯데는 2010년 7월 호찌민시 푸토점, 2012년 11월 비엔화시에 동나이점, 2012년 12월 다낭시 다낭점 등을 비롯해 꾸준히 진출해 총 13개 점포가 문을 열었다.

롯데마트는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서부터 중부 다낭을 거쳐 하노이 등 북부 지역까지 이어지는 망을 구축했다. 롯데마트 베트남의 매출은 2011년 620억원에서 2016년 263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롯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해 5월 다낭 공항에 롯데면세점을 입점시켰다.

화장품업계도 중부 지역 진출을 시작했다. 2005년 처음 베트남에 진출한 이후 6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LG생활건강의 브랜드 더페이스샵은 지난해 중부 지역 주요 도시인 다낭에 3개 매장을 오픈했다.

그런가 하면 유니클로를 포함한 세계의 유명 의류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담당하는 한국 팬코는 2015년 1억 달러를 투자해 중부 꽝남성에 공장을 세웠다.

팬코 관계자는 “의류 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인건비 부담”이라며 “베트남의 북부나 남부보다 인건비와 토지 사용료가 싼 중부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이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중부 지역에는 팬코 외에도 최근 공장을 완공한 문창·원우 등을 포함해 하네스·덕산 등의 수많은 의류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기업 중 일부는 중국에서 철수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인건비가 5년 만에 2배로 뛰었다”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이 문제가 아니라 인건비에 치여 중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 현대차까지 진출 검토했던 중부

베트남 현지에서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효성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효성은 베트남 정부와 화학공장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올해 2월부터 베트남 바리아붕따우성 까이멥 공단에 총 12억 달러 규모의 프로판 탈수소 공장(PDH)과 폴리프로필렌(PP) 생산 공장, 액화석유가스(LPG) 저장소, LPG·석유화학제품 부두 프로젝트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바리아붕따우성의 위치는 남부 지역에 가깝지만 협력사들이 중부 지역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베트남에서 효성의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 진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진출 10년 동안 엄청난 규모를 키워 왔다.

2007년 호찌민 인근에 베트남법인을 설립한 효성은 스판덱스, 섬유 타이어코드, 스틸코드 등 주력 제품들의 생산 라인을 설치했다. 2015년에는 베트남법인 인근 부지에 동나이법인을 설립하면서 생산 라인을 증설했다.

또 같은 해 8월 전동기 공장을 완공하고 이어 스판덱스 크레올라의 원료가 되는 폴리테트라메틸렌글리콜(PTMG) 생산 시설도 추가했다. 효성의 베트남법인은 2009년부터 지속적으로 흑자를 이어 오고 있다.

특히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는 각각 연산 5만 톤, 연산 10만 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해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이러한 호조 속에 2014년 베트남법인의 매출은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도 베트남법인이 1조1313억원, 동나이법인이 157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효성의 주요 해외법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대자동차의 중부 지역 진출 여부도 현지에서는 한동안 화제가 됐다. 사드 배치 갈등으로 중국에서 고전하는 현대자동차가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중부 지역으로 들어올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중부 꽝남성에 자리한 현지 자동차 업체 타코와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논의까지 이뤄졌지만 견해 차이로 백지화되면서 중부 지역 정부 관계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현대차는 닌빈성에 자리한 자동차 업체 타인꽁과 절반씩 총 900억원을 출자해 상용차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내년 말까지 2.5톤 이상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를 연간 2만~3만 대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현대미포·두산重 발빠른 투자로 성공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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