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대기업과 중기 사이, 중견기업의 활로는? : 신발 속 돌멩이②-판로 축소 및 임금 격차]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중견기업에는 조세 부담만큼이나 불편한 신발 속 돌멩이가 또 있다. 바로 막혀버린 판로와 터무니없이 벌어진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다.
적합업종에 꽉 막힌 어느 중견기업의 '눈물'
◆적합업종 법제화 논란

2011년, 70년 발효 명가로 이름을 떨친 샘표식품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2009년 이후 줄곧 회사 연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해 온 장류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면서 사업 확장이 금지되고 정부 조달 시장 진입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직전 해인 2010년 중소기업에서 갓 벗어나 중견기업 반열에 올랐던 샘표식품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로부터 6년 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은 올해 3월 중견기업연합회가 연 ‘적합업종 법제화의 문제와 대안’ 좌담회에 참석해 적합업종에 지정된 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박 사장이 6년 만에 해당 문제에 대해 입을 연 것은 올 초부터 논의가 본격화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과 관련이 있다. 당초 두부 업종을 포함해 고추장과 전통 떡, 순대 등 47개 업종은 최대 6년의 지정 기간이 지나 올해 안에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모두 해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올 초 이러한 생계형 업종만이라도 민간 기구인 동반위의 권고 사항이 아니라 정부가 법적 구속력을 갖고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자는 특별법이 발의되면서 이들 47개 업종의 적합업종 기간 만료가 협의를 통해 한시적으로 연기된 상황이다.

적합업종이 법제화되면 이전과 달리 강제성이 부여돼 이들 업종에 진출한 해당 기업에 철수 명령이 내려지거나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법안 발의 움직임에 대해 박 사장은 “중견기업에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 이슈는 매우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중견기업은 이미 ‘중소기업자 간 경쟁 제품’, ‘사업조정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등의 여러 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무리하게 법제화를 추진하기보다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란 의견을 냈다.

이어 “한 업종에서 견실한 성장을 이어 온 중견기업의 예외를 인정하거나 중견기업을 대기업과 구분해 적용 범위를 세분화하는 등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적합업종에 꽉 막힌 어느 중견기업의 '눈물'
어디 샘표식품뿐일까. 중견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으로의 회귀를 검토한 중견기업 약 71개 회사 중 15.0%는 샘표식품처럼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의 판로 규제 때문에 피터팬 증후군을 겪었다. 이들 기업의 83.8%는 매출액 5000억원에서 1조원 미만의 기업이다.

중견기업계는 “2011년 당초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취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역할 분담에 있었다”며 “그러나 중견기업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면서 중견기업의 판로를 규제하는 중견기업 성장 억제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최근 적합업종의 법제화 움직임으로 중견기업의 피해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법제화 반대에 힘을 싣고 있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생계형 업종의 모호한 정의와 기준 정립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며 “대·중견·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이라는 폭넓은 기반 위에서 적합업종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영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또한 “(시장의) 진입·확장 자제 등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 같은 헌법상 기본권을 상당히 제한할 소지가 있다”며 “사업자 간 합의는 경쟁 제한적 행위로 평가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충분히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동일 업종일지라도 대상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규태 중견기업연합회 전무는 “무분별한 영역 획정으로 매출액 1000억~1500억원 규모의 기업까지 보호의 대상으로 편입하는 등의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간산업은 중견기업을 포함해 육성·발전을 이끄는 산업정책의 대상으로, 전통시장에 기반 한 소상공인의 영역은 보호의 영역으로 구분해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11월 중 여야가 특별법의 전향적인 검토를 위해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관련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법제화 이슈를 신중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적합업종에 꽉 막힌 어느 중견기업의 '눈물'
◆대기업과 임금 격차 심화

중견기업을 옥죄는 돌멩이, 그 마지막은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다. “그들만의 잔치가 반복되고 있어요.” 중견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간 임금 격차가 최대 40% 가까이 벌어졌다며 이같이 일침을 가했다.

중견기업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대·중견·중소기업 간 성과 격차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원사업자인 대기업과 1차 수급사업자(이하 벤더)인 중견기업 간 격차가 매우 컸다.

보고서는 원사업자인 대기업 임금수준에 비해 1차 벤더가 60%, 2차 벤더 30~40%, 3차 벤더는 20~30% 수준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김경아 연구위원은 “이처럼 심각한 성과격차는 우리경제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인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견기업의 노동생산성 역시 대기업과 비교할 때 크게 낮았다. 이는 오히려 중견-중소기업 간 격차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기업 간 성과 격차를 완화하려면 정책 운영과 적용에서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도 충분히 고려하고 시장 공정화 제고를 통해 대·중견·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견기업연합회가 7월 18일 ‘중견기업인의 날’을 기념해 연 간담회에서도 업계의 이러한 우려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일부 노조 집단의 과도한 집단이기주의로 말미암아 1차 분배의 공정성이 왜곡되고 시장 질서가 교란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소득 구조를 합리화하고 분배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대기업과 1차 협력사의 임금 격차가 2배를 넘어서면서 2, 3차 협력사와의 임금 격차 역시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감소 우려

실제 임금 격차가 벌어지면서 중견기업의 인재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견기업연구원이 2016년 실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견기업인들은 대기업 등 타 기업으로의 스카우트(34.4%), 낮은 임금수준(16.7%) 등을 최대 고민거리로 꼽았다.

최저임금 인상안에 따른 우려도 가시화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7월 연 16.4%의 ‘2018년 최저임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사상 최대의 최저임금 인상 폭은 2018년 7580원에서 2020년에는 ‘1만원 시대’를 예고한 것이다.

중소기업·벤처기업·자영업자에 비하면 중견기업의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지만 내부 생각은 또 다르다. 인건비 상승에 따른 영업이익 하락으로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노동집약 산업체를 운영하는 중견기업들은 구조조정과 해외 이전 등 최후의 수단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주 52시간 노동 확립 등의 일자리 질 개선을 위한 일부 원칙과 과제는 오히려 일자리의 양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회적 논란이 큰 만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oof34@hankyung.com

[대기업과 중기 사이, 중견기업의 활로는? 기사 인덱스]
-[중견기업의 고충은] '둘째의 설움' 중견기업에도 볕 들 날 올까
-[신발 속 돌멩이①-조세] 기업상속 조세부담 커지고 일감몰아주기 범위는 확대
-[신발 속 돌멩이②-판로 축소 및 임금 격차] 적합업종에 꽉 막힌 '중견기업의 눈물'
-[중견기업연구원]"양질의 DB 생산으로 정책 뒷받침할 것"
-[해외 진출]"해법은 해외 진출인데" 겉도는 육성책
-[해외 사례]'글로벌 넘버원'... 독일 미텔슈탄트의 힘
-[인터뷰]"중견기업, 성장의욕 북돋는 정책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