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 인터뷰
-엠마누엘 룰랑 로레알그룹 수석부사장이 전하는 ‘글로벌 뷰티 공룡’의 성장 비결
'뷰티공룡' 로레알 “기업 최고의 장기 투자는 ‘윤리 경영’”
(사진)로레알그룹 브랜드 화장품이 전시된 사무실에서 만난 엠마누엘 룰랑 로레알그룹 최고 윤리담당관(수석부사장)/ 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 김영은 기자 ] 최근 뷰티·패션업계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의 화두는 단연 ‘윤리 경영’이다. 기업의 비도덕적 행위가 발각되면 소셜 미디어를 타고 소비자들의 분노가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CEO)의 성추문으로 전 세계에서 비난을 받은 ‘우버’와 직원의 인종차별 논란으로 소셜 미디어를 충격에 빠뜨린 ‘아메리칸항공’의 사례만 보더라도 기업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소비자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많은 명품 기업도 ‘동물 털 사용 중단’을 선언하는가 하면 탄소배출 감소와 인권 보호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입생로랑’, ‘랑콤’ 등 34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뷰티 공룡’ 로레알은 이미 오래전부터 윤리에 대한 논의를 펼쳐 왔다. 옳은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 공생에 참여하는 일이 곧 밀레니얼 세대의 지지를 얻는 행동이자 지속 가능한 경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로레알의 윤리 경영이 다른 기업보다 눈에 띄는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만큼이나 기업 내부의 윤리 의식 증진에도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로레알은 2000년 프랑스 기업 최초로 윤리 지침을 마련했고 2007년에는 최고윤리담당관(Chief Ethics Officer)을 임명해 직원들의 윤리 의식 고취에 앞장서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매년 전 세계 로레알 지사에서 동시에 열리는 ‘윤리의 날(Ethics Day)’이다. 이날은 장 폴 아공 로레알그룹 회장부터 각 지사의 대표, 판매 사원에 이르기까지 임직원 모두가 참여해 익명으로 웹 채팅을 나눈다.

익명이 보장 되는 만큼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다. 연습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답변해야 하는 경영진으로서는 긴장되고 두려울 수 있는 자리지만 벌써 9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행사다. 일례로 한 외국 지사 직원이 아공 회장의 지사 방문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기간에 방문하는 회장님 때문에 가족과 보낼 시간이 없다”고 얘기하자 아공 회장이 사과하고 일정을 미룬 적도 있다.

글로벌 뷰티업계의 독보적인 1위 기업 로레알이 윤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1월 17일 한국을 방문한 엠마누엘 룰랑(Emmanuel Lulin) 로레알그룹 최고 윤리담당관(수석부사장)을 로레알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윤리는 로레알 최고의 장기 투자”라고 강조했다.
'뷰티공룡' 로레알 “기업 최고의 장기 투자는 ‘윤리 경영’”
(사진) 엠마누엘 룰랑 로레알그룹 최고 윤리담당관(수석부사장)은 윤리경영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 서범세 기자

◆최고 윤리담당관이라는 직책이 흥미로운데요. 역할이 궁금합니다.

“최고윤리담당관은 기능을 수행하기보다 미션을 실천하는 역할입니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로레알의 가치와 기준을 확립하고 이를 대표하는 자리죠. 140개국 모든 지사에 가이드라인을 내리고 로레알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윤리 관련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임무 입니다.”

◆많은 기업이 윤리 경영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로레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로레알의 윤리 정신은 ‘윤리가 모든 기업 활동의 기저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입니다. 로레알에서는 이미 약 40년 전부터 고위 경영진 내부에서 윤리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윤리라는 개념을 기업의 모든 활동에 잘 연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업계의 리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로레알에서 경영자들이 실제 현안을 결정할 때 윤리가 어떻게 반영되나요.

“로레알은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할 때 늘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가’, 둘째는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가’입니다. 화장품 산업의 예를 들어 볼까요. 굉장히 마른 톱 모델을 광고에 고용한다고 했을 때 법적으로 어긋나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면 그 답이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미의 기준을 ‘마름’으로 규정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업적인 결정을 내릴 때 단순히 준법적 기준뿐만 아니라 좀 더 폭넓고 장기적인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뷰티공룡' 로레알 “기업 최고의 장기 투자는 ‘윤리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처럼 대외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기업 내부의 윤리 의식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이 클까요.

“물론이죠. 기업 내부의 윤리적 활동은 대외적으로 아주 실제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기업의 성과를 단순히 재무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단기적 사고는 지양해야 해요.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윤리적 성과도 함께 측정해야 합니다. 먼저 재무적인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순이익과 수익성 등의 지표를 보고 현지 환율을 고려하게 되죠. 윤리적 성과 측면에서 환율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가 높아질수록 지속 가능성도 향상되고 지속 가능성이 향상될 때 기업의 전반적인 실적도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 조직의 구성원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대부분은 기업의 손실을 초래할 것이고 최악에는 조직이 소멸할 수도 있죠. 기업과 윤리는 결코 상충하지 않습니다.

또 로레알은 윤리야말로 ‘최고의 장기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시장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신세대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윤리에 대해 그 어느 세대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렇다고 신세대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윤리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인식 내에서 적극적인 양심이 좀 더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성적인 기업이라면 앞으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로레알은 많은 브랜드의 인수·합병(M&A)과 글로벌 진출로 성장해 왔습니다. 해외 진출이나 M&A 전략에 윤리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로레알의 전략적인 목표는 현재 10억 명인 소비자의 수를 가능한 한 신속하게 두 배로 늘리는 것입니다. 그 잠재 소비자들은 대부분이 신흥 개발국에 있습니다. 이런 국가들은 두 가지의 공통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첫째가 인권 문제이고 둘째가 기업 활동에서의 부패입니다. 이 때문에 윤리적인 길을 가는 것이 우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