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Ⅰ : 현대차 창립 50주년]
-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만들고 정몽구 회장이 세계에 알려
반세기 동안 달려온 현대차그룹 ‘자동차 부국’의 꿈
(사진) 정몽구(오른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현대자동차가 12월 28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기술자 2명을 데리고 시작한 동네 수리점이 50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연간 800만 대 이상 차를 파는 세계 5위 자동차 회사가 됐다.

글로벌 생산 거점 역시 세계 곳곳에 세워 생산능력은 930만 대가 넘는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루지 못했던 ‘자동차 부국(富國)의 꿈’이 아들 정몽구 회장의 손을 거치면서 완성됐다.

하지만 기뻐할 틈이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은 50주년 행사도 생략할 계획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임직원들은 밤낮없이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다. 그래야만 과거의 50년을 넘어선 미래의 50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제대로 된 자동차 도로조차 없던 시절, 정주영 회장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지시로 시작한 현대모타주식회사는 정몽구 회장이 이어받아 현재 53개의 계열사, 총자산 121조원, 임직원 27만7558명이 근무하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정몽구 회장이 본격 경영에 나설 때만 해도 언감생심 비교할 수도 없었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인 메르세데스-벤츠·BMW·폭스바겐·도요타 등이 경쟁권 안에 있다. 글로벌 차 메이커를 통틀어 이렇게 경이적인 성장을 보인 곳은 현대차가 유일하다.

현대차그룹은 1993년 처음으로 누적 판매량이 1000만 대 고지를 넘어섰고 해마다 연간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2008년 5000만 대, 2016년 4월 1억 대 돌파라는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현대·기아차가 판매한 1억 대는 현대차의 대표적 글로벌 베스트 셀링카 ‘아반떼(전장 4570mm, 전폭 1800mm)’를 한 줄로 세우면 약 45만7000km다. 지구(둘레 약 4만km)를 약 11.4바퀴 돌 수 있고 펼쳐 놓으면 약 823㎢로 서울시 면적(605㎢)을 덮고도 남는다.

◆정몽구의 리더십, 글로벌 현대차 만들다
반세기 동안 달려온 현대차그룹 ‘자동차 부국’의 꿈
반세기 동안 달려온 현대차그룹 ‘자동차 부국’의 꿈
현대차그룹의 성장에서 주목할 점은 현대그룹과 결별 이후 가속화됐다는 점이다. 1998년 현대그룹에서 분할된 현대차는 2000년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 출범하면서 내·외형 성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특히 현대차는 전 세계 시장이 요동쳤던 2008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당시 글로벌 판매 1위 자리에 올랐던 도요타가 창립 이후 첫 적자를 맞을 때도 현대차는 1조8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고 2009년 사상 첫 연간 판매 300만 대 고지를 밟으며 저력을 보였다.

2000년 연간 243만 대를 판매, 글로벌 톱10에 첫 진입한 현대차그룹은 2014년, 2015년 2년 연속으로 연간 800만 대 이상 판매하며 3.3배 성장, 세계 5위의 완성차 업체로 올라섰다.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위기 때마다 전 세계 현장을 누비며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1998년 분할과 동시 회장 자리에 오른 정 회장은 초기부터 ‘품질 혁신 경영’을 강조해 왔다. 당시 원화 약세로 미국 수출 단가가 떨어져 큰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정 회장은 가격 인하 대신 ‘10년 10만 마일 품질 보증’이라는 획기적인 마케팅을 활용했다. 정체 상태였던 미국 수출량이 오히려 1999년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전환점이 됐다.

정 회장은 부실했던 기아자동차도 조기에 안정시켰다. 수출을 늘리고 해외 공장을 신설하는 등 글로벌 경영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해마다 경영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성공을 거듭했다. 국내외 경제 불황기인 2003년과 2004년에도 지속적인 ‘품질 개선과 현장 경영’을 통해 놀라운 경영 성과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2004년 총 167만7818대를 판매해 27조4725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창사 이후 최고 실적이었다. 당기순이익만 1조7846억원에 달했다. 2005년에는 순익 2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해외 언론은 정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극찬했다. 2005년 11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42위에 선정했다. 국내 기업인 중 최고의 순위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정 회장을 선정한 이유로 ‘품질 경영’과 ‘글로벌 확대 전략’의 성공을 꼽았다.

◆차량 품질 꼴찌가 1등이 되기까지
반세기 동안 달려온 현대차그룹 ‘자동차 부국’의 꿈
현대차그룹의 ‘품질 경영’은 이제 강력한 무기가 됐다. 그룹 초창기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현대·기아차의 품질 평가는 최하위권이었다. 기아차는 37개 브랜드 가운데 37위, 현대차는 34위에 그쳤다. 하지만 정 회장이 품질 경영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인 결과 2004년부터 신차 품질의 성과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한 예로 2004년 4월, 미국 자동차 품질 평가 기관 JD파워가 신차 품질 조사(IQS)를 발표하자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과 언론이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었다. 매년 하위권에 맴돌던 현대자동차가 브랜드 순위에서 선진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를 제치고 전체 38개 업체 중 상위권인 7위를 기록한 것이다.

메이커별 순위에서는 렉서스 브랜드가 포함된 도요타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뉴욕타임스와 오토모티브뉴스 등 해외 언론들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Man Bites Dog)”, “지구는 평평하다(The Earth is Flat)”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대서특필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의 품질은 지속적으로 향상돼 이제는 글로벌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JD파워가 올해 6월 발표한 ‘2017 IQS’에 따르면 기아차는 지난해에 이어 1위에 올랐다.
제네시스는 올해 처음 받은 평가에서 2위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현대차는 BMW·쉐보레와 함께 공동 6위에 올랐다. 현대차는 지난해(3위)보다 다소 순위가 내려갔다.

이 같은 품질 향상은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켰고 이는 곧 판매 대수 증가로 이어졌다. 미국 시장에서 1999년 30만 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140만 대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1976년 처음 미국으로 수출을 시작하며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린 현대차그룹은 이제 당당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 왔던 국내 생산 차량의 해외 수출 시스템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선진 자동차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 실현과 안정적인 생산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는 정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1997년 터키에 10만 대 생산 규모의 해외 공장을 처음 건립했다. 이후 올해 7월 중국 5공장인 충칭공장까지 해외에 총 15곳(현대차 9곳, 기아차 4곳)의 글로벌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외에서 총 600만 대를 생산하고 있고 국내 생산량 338만 대를 합치면 현대차그룹은 총 938만 대를 생산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생산 거점에 대한 투자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특히 올해 중국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이라는 큰 피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시장에 총 20억 달러(약 2조30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연간 생산량 30만 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 공장 건립에 11억 달러, 현지 판매망 구축에 9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밖에 미국 시장에 향후 5년간 약 31억 달러(3조5000억원)의 투자 계획도 세웠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현대차그룹이 지속적으로 해외투자에 적극적인 이유는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어느 한 곳에서 판매가 부진하면 다른 생산 거점을 활용해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중국 시장의 부진을 올해 인도 시장에서 상당 부분 만회했다. 현대차는 11월 말 인도 시장에서 누적 판매량이 500만 대를 돌파하는 등 분위기가 좋다.

현대차는 인도 승용차 시장에서 마루티 스즈키에 이어 수년째 점유율 2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는 인도 내수 시장에서 50만537대를 판매해 처음으로 판매량 50만 대를 넘어섰고 올해는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국내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2월 2200억원을 투자해 공사를 완료한 울산 1공장과 3분기 중 울산 2공장 개선을 위해 3000억원을 집행했다.

현대차그룹의 성장은 한국 경제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현재 내수 점유율 65%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인데다 수출에서도 현대·기아차의 몫이 가장 크다.

2016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 산업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종사자는 183만 명에 이른다. 전라북도 전체 인구 180만 명보다 3만 명 정도 많다. 이는 한국의 총고용 인원 2507만 명의 7.3%에 해당한다. 2001년과 비교해 보면 고용 인원이 15년 새 경기도 광명시 인구와 비슷한 35만6000명 증가했다.

한국 인구 5000만 명을 4인 가족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7가구당 1가구는 자동차 관련 산업에 종사 중인 셈이다. 또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다. 한국 전체 제조업 중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생산액과 부가가치액 비율은 각각 12.7%, 12%에 달한다.
반세기 동안 달려온 현대차그룹 ‘자동차 부국’의 꿈
◆전면에 나서는 3세 정의선 부회장

50주년을 맞은 현대차그룹은 올해 중국·미국 시장의 부진 속에서도 미래 50년을 내다보며 제2의 도약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아버지의 뒤를 이을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활발한 현장 경영과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부진을 탈피하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며 ‘3세 경영’ 시대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정 부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장손이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1999년 현대차에 입사했고 2009년 현대차그룹 총괄 부회장직에 올랐다. 정몽구 회장이 굳건하게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정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보이면서 현장 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 들어 34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올해 초 2017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참석 차 방문한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해 유럽과 중국 출장길에 수차례 올랐다. 특히 포스트차이나로 꼽히는 인도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베트남을 첫 방문하는 등 신흥 시장 개척에도 앞장서는 모습이다.

6월 현대차의 첫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가 출시될 때에는 처음으로 청바지를 입고 신차를 발표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 부회장은 미래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투자에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SK텔레콤·한화자산운용과 함께 인공지능(AI) 투자동맹을 맺고 약 500억원 규모의 AI얼라이언스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 펀드는 내년 초 출범돼 AI와 스마트 모빌리티, 핀테크 등의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앞서 미국의 미래 모빌리티 연구 기관 ACM에 약 56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실리콘밸리에는 해외 오픈이노베이션센터의 거점이 될 ‘현대크래들’을 출범시켰고 내년 초에는 이스라엘에도 오픈이노베이션센터를 설립, 현지 스타트업과 협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이스라엘에 투자하는 비용이 최소 수천억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공 방정식’ 바꿔 미래 50년 준비한다

현대차그룹은 올 들어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 부진을 겪고 있어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러시아·인도·동남아 등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신시장을 개척해 중국 등 기존 시장의 의존도를 낮춘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2020년까지 인도에 500억 루피(약 8780억원)를 투자해 8개의 신차를 개발할 계획이다. 러시아에도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이에 맞춰 아시아 자동차 시장 전문가로 꼽히는 정방선 현대차 아중아(아시아·중동·아프리카) 실장을 중심으로 아세안 태스크포스(TF)팀을 신설했다.

중국 시장 또한 9월을 기점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사드 여파로 판매가 급감했던 상반기에 비해 판매 감소 폭이 줄어들고 있다. 8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이 35%에 달했지만 9월 18%, 10월 11%로 낮아졌다.

최근에는 중국 현지 전략 모델 SUV인 ix35를 출시하고 엔시노(코나)를 공개하는 등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SUV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시장 또한 내년부터 코나와 싼타페 등 SUV 라인업을 늘려 올해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50년 동안 현대차가 끝없이 성장해 온 만큼 다가오는 50년을 잘 이끌어 가기 위한 조직 구조 개편과 글로벌 거점의 부분 인사도 단행됐다.

정 부회장은 전략기술연구소와 제네시스 전담사업부, 국내 영업전략실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시행했다. 글로벌 조직 운영은 자율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를 강화했다.

또 사이먼 로스비 현대차 중국디자인담당 상무와 피에르 르클레어 기아스타일링담당 상무, 알렉산더 셀리파노브 제네시스 유럽디자인팀 디렉터, 이진우 지능형안전기술센터장 상무와 올렉손 기아차 중국디자인담당 상무 등 5명의 글로벌 인재를 영입했다. 다가오는 50년을 준비하는 현대차의 움직임이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기술자 2명을 데리고 시작한 동네 수리점이 50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연간 800만 대 이상 차를 파는 세계 5위 자동차 회사가 됐다.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