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 판 바뀐 재테크]
“돈은 안 쓰는 것” 김생민부터 2000% 수직 상승의 주인공 비트코인까지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2017년 투자 달력의 첫 장은 암울했다. 2016년 하반기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정치·사회적 측면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당시 한국 경제의 2017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0%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정치적 혼란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경제 주체의 소비 위축과 투자 지연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까. 2월 한국 수출의 발이 됐던 한진해운이 설립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운업계 기준 세계 7위, 국내 1위였던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한국 조선·해운업에 본격적인 불황이 찾아왔다. 투자 시계도 거꾸로 갔다. 2009년 말 2만1300원으로 증시에 발을 내디딘 한진해운의 마지막 주가는 12원으로 고꾸라졌다. 무려 99.94%의 하락이었다. 휴지 조각이 된 주가에 개미들은 울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3월 10일,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주문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자 박스피에 머무르던 주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탄핵으로 증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정치적 혼란이 매듭지어졌다는 점에서 훈풍이 찾아왔다. 코스피지수는 당일부터 연일 상승해 5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달의 코스피지수 상승치는 3.3%였다.

4월, 봄이 찾아왔지만 투자자들의 자산은 여전히 얼어붙었다. 특히 자산가들의 절세 필수품인 저축성 보험이 세법 개정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고소득자의 저축성 보험 세금 감면 혜택이 쪼그라들었다. ‘2016년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에 따라 1인당 매월 150만원 이하, 일시납은 총보험료 합계 1억원 이하로 혜택을 축소하는 내용이었다. 즉 세법 개정 과정에서 월 보험료 150만원 이상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을 고소득층으로 간주해 절세 혜택을 줄인 것이다.
달력으로 보는 ‘2017 투자 시계’
◆불황 딛고, 박스피 뚫다

그럼에도 볕 들 날은 찾아 왔다. 3월부터 시작된 코스피지수의 상승 랠리가 결국 일을 냈다. 3월 3.3%, 4월 2.1%, 5월 6.4% 상승으로 7년 만에 ‘2000~2200’ 박스피를 돌파했다. ‘2241.24.’ 2017년 5월 4일 코스피 역사상 최고치의 기록이었다.

이어 6월에는 글로벌 경기 회복과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대감에 힘입어 ‘코스피 2400’의 시대를 열었다.

7월은 바야흐로 ‘절약의 달’이었다. 인터넷 전문은행 2호인 카카오뱅크의 출현으로 금융 투자자들은 시중은행보다 소폭 높은 예·적금 금리와 시중은행보다 소폭 낮은 대출금리에 열광했다. 출범 한 달 만에 가입자 수 307만 명, 대출 잔액 1조4090억원, 예금 1조9580억원을 유치하며 새 역사를 썼다. 특히 간편한 가입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로 ‘대출 갈아타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터. ‘티끌 재테크’ 전략이 쏟아져 나왔다. 봉투에 한 달 생활비를 나눠 담아 쓰는 ‘봉투 생활비’나 매일 1000원씩 저축하는 ‘캘린더 저축’ 등 ‘짠테크’를 접목한 상품들이 잇달아 출시됐다. 이 무렵 짠돌이 연예인으로 유명한 개그맨 김생민 씨가 ‘짠테크’의 유행과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8월과 9월은 부동산의 달이었다. 새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6·19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 40여 일 만에 ‘8·2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2011년 해제된 투기과열지구가 6년 만에 부활했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역 금융 규제 강화 등 고강도 규제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다음 달에는 8·2 대책의 후속 조치를 담은 ‘9·5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성남 분당구와 대구 수성구가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됐고 민간 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기준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겼다.

◆짠테크·환테크·암호화폐 투자까지

10월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투자 염원이 담긴 행운의 복권, ‘로또’에서 행운이 터졌다. 10월 28일 ‘제778회 나눔 로또’ 추첨 결과 1등 당첨금이 무려 62억6407원으로 올 들어 최고액을 기록했다.

11월에는 한국 경제를 뒤흔들 환율과 금리 등 주요 경제지표에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11월 29일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76.8원으로 마감되는 등 1080원을 밑돌았다. 이는 2015년 4월 29일 이후 2년 7개월 만의 최저치다. 당연히 ‘환테크’의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원화 강세에 따라 상대적으로 싼 달러나 엔화를 사들인 뒤 비싸지면 팔려는 전략이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11월 30일 연 1.25%에서 0.25%포인트 올린 1.50%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한은의 금리 인상은 2011년 6월 이후 6년 5개월 만이다. 상반기 정치 경제 불안으로 눌려 있던 소비 심리가 살아나는 등 경기 회복세를 뒷받침한 것이 인상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투자 달력의 막장이 힘겹게 붙어 있는 가운데 대미를 장식한 주인공은 최근 모두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비트코인, 즉 암호화폐(블록체인 기술에 기반 한 가상화폐)다. 비트코인은 올 11월 사상 최고점인 개당 2400만원을 찍었다. 올 초와 비교하면 2000%가 넘는 수직 상승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투자가 아닌 투기에 가깝다며 이를 비판했다.

결국 정부가 12월 11일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반면 비트코인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암호화폐가 투자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며 정부 제재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코스닥(약 267조원)을 넘어선 317조원대를 기록했다. 나스닥의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에 이은 7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poof34@hankyung.com